잘 나가던 핵심 상권조차 공실로…짙어지는 부동산 시장 ‘불황의 그늘’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16일 17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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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거리 안쪽의 한 골목. 다닥다닥 붙어있는 1층 점포 10곳 중 3곳이 비어 있었다. 한 곳은 큼지막하게 ‘임대’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다음 블록의 1층 점포 4곳 중 1곳에도 ‘임대’ 안내가 붙어있었다. 인근 M중개업소의 이모 씨는 “명동도 대로를 제외한 안쪽 골목에는 1, 2년 넘게 비어있는 가게들이 많다. 몇 년 전까지 권리금 1, 2억 원을 줘야 들어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권리금이 없어도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경기 침체의 여파로 상가나 오피스 등 부동산시장에도 불황의 그늘이 짙어지고 있다. 서울에서 소위 ‘잘 나가던’ 핵심 상권조차 공실이 급증하면서 권리금이 실종되고 있다. 서울 오피스시장도 오랫동안 비어있는 사무실이 많아 세입자 구하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늘어나는 빈 상가에 사라지는 권리금

서울 시내 주요 상권에서 빈 상가가 많아졌다는 건 수천만 원 가량의 권리금을 주고 들어온 상인들이 권리금을 포기한 채 장사를 접을 만큼 경기가 나빠졌다는 걸 보여준다. 서울의 대표상권인 명동까지 장기 공실이 늘면서 이 일대 임대료도 일부 조정되고 있다. 중개업자 이 씨는 “오래 비어있던 1층짜리 점포(약 40㎡)를 지난달 보증금 5000만 원, 월세 500만 원에 계약했다. 직전 세입자가 보증금 2억5000만 원, 월세 1200만 원에 옷가게를 운영했던 곳”이라고 했다. 인근 D중개업소 대표는 “명동 일대 전체적으로 권리금이 50% 이상 빠졌다. 중요한 건 그럼에도 거래가 안 된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런 현상은 용산구 이태원 경리단길처럼 단기간에 ‘뜬’ 상권일수록 심하다. 같은 날 경리단길 일대 중개업소들에 붙어있는 상가 임차매물 안내문에는 대부분 ‘무권리 점포’라고 써있었다. 이미 비어있거나 전 세입자가 권리금을 포기하고라도 나가겠다는 뜻이다. A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공실이 아닌 곳 중에도 권리금 500만 원이라도 건지고 싶어서 문 닫아놓고 버티는 가게들이 많다”고 했다.

다섯 달 전 문을 연 경리단길의 한 식당은 직전 세입자보다 월 임대료를 50만 원 낮춰 계약했다. 권리금도 없었다. 2년 전 권리금 7000만 원을 주고 들어온 카페 주인이 권리금을 포기한 채 장사를 그만둬서다.

●오피스 시장도 ‘무료 임대’ 내세워 세입자 모시기
공유오피스 열풍 덕에 지난해 강남 등의 대형오피스 시장은 공실이 일부 해소됐지만 장기간 빈 사무실이 여전히 많다. 지하철 2호선 역삼역 3번 출구에서 강남역까지 테헤란로를 따라 걷다보면 대형 빌딩 입구에 붙어있는 ‘임대’ 안내문을 쉽게 볼 수 있다. 대형 빌딩은 주로 소유주가 연기금이나 펀드라서 임대료를 내려주는 대신 1년 계약하면 몇 달치 임대를 무료로 제공하는 ‘렌트 프리(무료 임대)’가 보편화돼있다.

신축 대형빌딩이 많은 종로 일대는 세입자 찾기가 더 어려운 형편이다. 종로구 관훈동의 지상 12층짜리 한 빌딩은 현재 2개 층이 비어있다. 이 빌딩 관리사무소 부장은 “올 3월이면 한 층이 더 빈다. 원래 계약만료 두 달 전에는 세입자를 찾는데 요즘은 사업규모를 줄이거나 아예 접는 사람들이 많아져 문의조차 없다”고 했다. 개인이 소유한 중소형 빌딩은 임대료를 깎아주기도 한다. 종로구 공평동의 D중개업소 관계자는 “공평동 사거리에 있는 6층짜리 빌딩의 한 세입자가 1년 전 직전보다 30만 원 깎은 월세로 계약했는데 계약이 끝나 나가려고 하니까 건물주가 더 내려줄 테니 나가지만 말라고 붙잡고 있다”고 전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올해 경기 악화가 심해지면 상가나 오피스시장의 침체도 더 깊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권강수 창업부동산정보원 이사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부담 등으로 상업용 부동산 전반적으로 지난해보다 더 상황이 좋지 않다”고 내다봤다.

주애진기자 jaj@donga.com·조윤경기자 yuniqu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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