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아 단독]“한수원 영어 부족·일탈 물의…수십조 계약 탈락설 무성”

  • 신동아
  • 입력 2018년 12월 18일 10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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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원 ‘UAE원전’ 60년 장기정비계약 충격 증언&문건

● “토익 700점 미만 파견직원 수두룩”
● “UAE ‘의사소통 불편’ 호소”
● “음주운전·폭언·주류 반입·성추행…징계 또는 조사 중”
● “UAE, 文정부 탈원전에 배신감”
● “장기정비계약 탈락 시 한국 원전산업 참극”
● 한수원 “영어 우려 겸허히 수용”
● 한수원 “기본적 의사소통 문제없고 계약 잘될 것”
“한국수력원자력이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자력발전소 현지에서 영어 실력 부족으로 물의를 빚고 있고, 3조~40조 원대 이 원전 장기정비계약 입찰에 탈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영어 실력 부족과 음주운전 같은 일부 파견 직원들의 일탈은 한수원 자체 문건을 통해 확인된다.

원전 전문가들은 “이 계약을 성사시키지 못하면 한국 원전산업의 참극이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2009년 12월 27일 한국전력공사와 아랍에미리트원자력공사는 1400MWe급 한국형원전 4기를 건설하기로 계약했다. 2018년 3월 1호기가 준공됐다. 2019년 초 UAE 측은 원전 4기의 60년 운영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장기정비계약 입찰을 실시한다.

전직 한전 고위 인사 A씨는 최근 기자에게 “UAE에 파견된 한수원 직원들 중 상당수가 영어 실력이 부족하다. 원전 보수를 맡은 한전KPS 파견직원들도 영어 실력이 달린다. 이로 인해 UAE 측이 의사소통에 불편을 겪고 있다. UAE 측은 회의석상에서 ‘파견직원의 영어 능력을 강화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 파견직원들의 어학 성적을 기록한 한국수력원자력 문건. 기준선인 ‘토익 700점’ 미만이 즐비하다(왼쪽). 2018년 바라카 원전파견직원 사건, 사고, 징계를 보여주는 한수원 문건(아래).
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 파견직원들의 어학 성적을 기록한 한국수력원자력 문건. 기준선인 ‘토익 700점’ 미만이 즐비하다(왼쪽). 2018년 바라카 원전파견직원 사건, 사고, 징계를 보여주는 한수원 문건(아래).

○ 사태의 심각성

한수원이 해외에서 원전을 운영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전 정부에서 대사(大使)를 지낸 B씨는 기자에게 “한수원은 원전의 설계·제작·시공·시운전을 직접 하는 회사는 아니다. 몇몇 UAE 측 원전 전문가들에게 한수원은 어학능력·국제경험·조직관리·열정이 다소 미흡하고 법률·계약에 두루 능통하진 않은 것으로 비치고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정책도 UAE의 냉랭한 분위기를 이끌고 있다고 한다. A씨는 “문재인 정부가 결정하고 정재훈 한수원 사장이 실행하는 탈원전에 대해 한국형원전을 구매한 UAE의 고위층은 내부적으로 불쾌함과 배신감을 토로한다. ‘수십 조원짜리 물건 팔아놓고 문 닫겠다는 것’으로 여기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나아가 A씨는 “‘한수원이 2019년 초 UAE원전 장기정비계약 입찰에서 탈락할 것’이라는 설이 국제 원전 시장에서 퍼지고 있다”고 전했다. A씨는 ‘사태의 심각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바라카에 한국형원전을 지은 한국이 이 원전의 장기정비계약을 따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금 이 상식이 깨지고 있다. UAE 원전기관에 속한 서방 원전 전문가 200~300명은 이 한국형원전을 충분히 분석했다. 이들은 한수원이 말도 잘 안 통하고 국제 경험도 부족한 것으로 비치자 한수원을 제치고 바라카 한국형원전 정비를 자신의 모국 업체에 맡겨도 되겠다고 여기기 시작했다. 여기에다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한국이 60년 동안 바라카 원전을 안정적으로 운영-보수하기 힘들 것’이라는 예상까지 나온다. ‘한수원 입찰 탈락’ 시나리오가 점점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언어 능력과 관련해, ‘바라카 원전 직원 파견 기준’이라는 한수원 문건은 “운영지원용역(OSS)” 분야와 “운영지원계약(OSSA)” 분야의 “직원 파견기준”을 “토익 700점 이상”으로 자체적으로 정했고 “한전 건설파견” 분야에 대해선 “한전 자체 기준 적용”이라고 했다.

그러나 파견직원 상당수의 토익 점수는 이 기준에 미달했다. ‘바라카 파견직원 현황’이라는 한수원 문건에 따르면, 바라카 원전에 파견된 운영지원용역(OSS) 분야 직원 중 76명이, 운영지원계약(OSSA) 분야 직원 중 34명이, 한전 건설파견 분야 직원 중 36명이 토익 700점에 미달했다. 100점대(2명), 200점대(6명) 직원들도 있었다.

“수십 개 원전업체 이미 도산”

이 자료를 건넨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실 관계자는 “적지 않은 파견직원이 영어 구사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A씨는 “기준을 넘긴 파견직원들 중에서도 UAE 측과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직원들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일부 파견직원들이 2018년 UAE 현지에서 저지른 일탈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바라카 파견직원 사건, 사고, 징계 관련’이라는 한수원 문건에 따르면, 파견직원 C씨는 음주운전을, 파견직원 D씨는 직원 폭언을, 파견직원 E씨는 주류 반입을 각각 저질러 감봉 징계를 받았다. 문건은 F씨에 대해선 “성추행, 징계계류 중”이라고 썼다. 이에 대해 한수원 관계자는 “다른 건은 처리가 됐고 성추행 건은 현재 조사 진행 상태”라고 설명했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신동아’에 “탈원전과 영어 소통 문제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원전 부품공급업체들이 큰 어려움에 처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원전 부품은 2년 반, 5년, 혹은 10년 이상 간다. 웬만한 원전 부품공급업체는 신규 수주 없인 5년을 버티기 힘들다. 수십 개 업체가 이미 도산했다.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 두산중공업이 어려워진 것도 탈원전 정책 때문인가?

“당연하다. 국내 물량이 없으면 외국에서 오는 주문도 줄어든다.”

전직 ‘원자력안전위원회’ 고위인사인 G씨는 “신규 원전 건설 백지화를 계기로 국내 원전산업은 붕괴가 시작했다”고 했다. A씨는 “탈원전 정책하에서 한국은 10년 내 신규 원전 수출을 한 건도 못 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서 교수는 ‘국내에서 탈원전 하면서 해외에 원전을 수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원전은 40~80년을 책임지는 형태로 수출된다. 탈원전으로 2019년부터 일감이 거의 고갈된다. 고급인력이 떨어져 나갈 것이다. 부품업체들도 도산할 것이다. 외국에선 한국산 원전을 사지 않을 것 같다. 한국형 원전을 구매한 UAE조차 이 원전의 ‘장기지원서비스계약’을 프랑스 업체에 맡겼다. 한국을 안 믿는다는 것이다. 수주경쟁이 치열한 원전 시장에선 이런 불신이 빨리 퍼진다.”

○ “한수원의 아픈 부분”

- 한수원이 해외에서 원전을 처음 운영하면서 ‘영어 실력이 달리고 국제 경험이 부족하다’는 평을 듣는다고 한다. 탈원전까지 더해져 UAE의 불신이 깊어진다는데.

“나도 전직 한전 사장을 통해 들었다. 한수원 측의 영어 실력이 많이 부족하다 한다. ‘UAE에 주는 영어 문건도 좀 무성의하게 작성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UAE원전은 신형인데 가끔 그 이전 영문을 갖고 온다는 것이다. 언어와 관련해 UAE는 우리 기술자들을 천시한다고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국 대통령은 탈원전을 선언했다.”

서 교수는 “영어는 한수원의 아픈 부분”이라고 재차 말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한 관료는 ‘통역사를 데리고 다니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더라. 수시로 만나는데 UAE 측은 영어로 하고 우리는 한국말로 하고 통역한다? 가능하지 않다. 프랑스 원전업체 사람들은 영어를 잘한다. UAE 측엔 영어권 원전 기술자들이 포진해 있다.”

- 2019년 초 장기정비입찰이 UAE 원전 운영권 향방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가?

“그렇다. 놓치면 안 된다.”

- 일부 언론은 ‘3조 규모’라고 한다.

“선점효과까지 고려하면 원전 건설비보다 더 큰 규모라고 봐야 한다. 60년짜리 계약이다. 40조 원 정도로 추산된다.”

- 한수원이 탈락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지금이라도 반전을 일으켜야 한다. 탈락하면 한국은 해외에서 신규 원전을 수주하기 어렵다. 한국 원전산업의 참극이 된다. 원전 발주자는 원전 건설-운영-보수 역량을 모두 요구하기 때문이다.”

“기본적 의사소통은 충분히 돼”

한수원은 공식 답변에서 ‘파견직원 영어 능력 부족’ 지적에 대해 “이런 우려는 저희가 겸허하게 받아들여 잘해야 한다. 저희에게 채찍질하는 건 좋다”고 밝혔다. 이어 “UAE 측과 소통하는 데엔 문제가 없다”고 했다. 한수원 홍보팀의 설명이다.

- UAE가 회의석상에서 ‘파견직원의 영어 능력 강화’를 요구했나?

“밝히기 힘들다. 그들이 한국 언론도 꼼꼼히 모니터링한다.”

- 영어 기준에 미달된 직원들을 파견한 이유는?

“언어 능력이 좀 떨어지지만 기술 측면에서 꼭 필요하다고 하면 보냈다. 지금 몇몇 국가와 장기정비계약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 ‘한수원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떨어진다’는 보도가 나오면 경쟁 상대국이 ‘말도 안 통하는 사람들이 무슨 정비를 하겠어?’라면서 활용할 것이다. 경쟁국에 도움이 되는 보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 언론에 책임을 미루는 것인가? 입찰에서 떨어지면 언론보도 때문이라고 할 예정인가?

“그건 아니다.”

- 한수원과 한국KPS가 영어 의사소통 능력이 떨어지고 국제 경험이 부족한 것으로 UAE에 비쳤다는데.

“기본적으로 저희는 의사소통 능력이 있다. 현장에서 기본적 의사소통은 충분히 된다. 한전KPS도 같은 반열이다. 정밀한 의사소통이 필요할 땐 누구든 통역사를 쓴다.”

- UAE 측은 탈원전 정책에 불쾌함·배신감을 느낀다고 하는데.

“추측이야 할 수 있지만, 저희가 확인할 수 없다.”

“정 사장은 탈원전 정책과 무관“

- 월성 1호기 폐쇄와 신규 원전 건설 백지화 때 일각에선 ‘정재훈 한수원 사장이 탈원전 정책에 적극 호응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정 사장은 결정된 정책을 집행하는 기관의 장이니까. 정 사장은 탈원전 정책과 무관하다.”

- 한수원은 회사명에서 ‘원자력’을 빼는 방안도 검토 중인가?

“예전에도 두 차례 사명 변경을 시도했다. 정 사장은 ‘직원, 한전, 정부의 생각이 모아져 어우러질 때 사명 변경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 탈원전이 원전 부품공급업체의 고사로 이어질 것이라고 한다.

“탈원전 한다고 모든 원전이 멈추는 건 아니다. 운영되는 동안 유지-보수-정비가 이뤄진다. 부품업체도 그에 맞춰 생산하게 된다. 원자력업계가 갑자기 붕괴하는 건 아니다. 정부는 ‘탈’은 아니라고 하고 ‘에너지전환정책’이라고 한다.”

- 장기정비계약 입찰에서 탈락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장기정비계약 협상 열심히 하고 있다. 저희에게 올 가능성이 많다. 잘될 거라 본다.”

- 탈원전과 원전 수출은 병행이 어렵다는 의견에 대한 한수원의 입장은?

“그런 예측을 뛰어넘는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회사도 산업계도 유지, 발전된다. 정 사장은 국내에서 안 짓지만 해외 수출에 주력하고 있다. 한전은 영국과 사우디에 집중하고 저희는 체코 같은 동구권에 집중한다. 수출만 하나 뚫으면 원전 생태계 유지에 도움이 된다.”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2019년 1월 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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