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차진아]집단폭행 방관하는 공권력, 국민의 인권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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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기업 폭행 방관 경찰 충격적… 경찰, 조폭 편 들면 경찰을 더 비난
본분 망각하고 할 일 안 했기 때문
피 흘리는 국민 내버려둔 공권력…인권 보장 민주국가라 할 수 있나

차진아 객원논설위원·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차진아 객원논설위원·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 3요소 설에 따라 영토, 국민과 주권으로 이루어진 단체라는 설명은 국가의 본질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국가는 무엇이며, 우리 삶에서 국가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적어도 민주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국가다. 말로만 국민을 주권자라고 불러주는 것이 아니라 실제 주권자로 대접하는 것이 민주국가다.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고 헌법 개정의 최종 단계에서 국민투표를 거치게 하면, 그것이 국민을 주권자로 대접하는 것인가. 만일 그렇다면 오래전 장자크 루소가 말했듯 국민은 선거 때만 주권자가 되고 선거 후에는 자신이 뽑은 대표자들의 압제를 받게 된다.

진정한 민주국가란 언제나 국민의 인권에 무엇보다 우선하는 가치를 두는 국가다. 국가 안보를 강조하더라도 그 궁극적인 목적은 국민의 인권 보장에 있는 것이며, 민주주의나 법치주의도 자기 목적이 아니라 국민의 인권 보장을 위해 필요한 것일 뿐이다. 때로는 인권을 제한하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더 많은 사람의, 또는 더 중요한 인권의 보장을 위해서만 정당성이 인정된다.

그러므로 국가공권력의 제1과제는 국민의 인권 보장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최근 노조원들에 의한 유성기업 상무 집단폭행 사건에서 경찰이 보여준 태도는 매우 충격적이다. 이 사건이 어떻게 발생한 것인지에 대해 논란이 있지만, 적어도 경찰의 방관은 국민들이 납득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매우 공포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노조원의 집단폭행은 매우 심각한 불법이다. 그런데 그보다 이를 방관하고 있었던 경찰들에게 국민들이 더 경악하는 것은 경찰이야말로―민중의 지팡이라는 진부한 표현은 접어두더라도―범죄로부터 국민의 인권을 보장해야 하는 공권력의 대명사이기 때문이다.

조폭에게 폭행당한 시민이 경찰에 호소했을 때 경찰이 이를 무시하거나 조폭의 편을 든다면 국민은 조폭을 더 원망할까, 경찰을 더 비난할까. 대부분의 국민은 조폭보다 경찰을 더 비난할 것이다. 조폭이 폭행하는 것은―정당한 것은 아니지만―있을 수 있는 일로 받아들이는 반면에 경찰이 이를 방관하거나 오히려 조폭을 비호하는 것은 경찰의 본분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경찰을 믿고 수사권 조정을 통해 경찰에게 더 큰 권력을 줄 수 있겠는가.

물론 경찰만의 문제는 아니다. 국민들이 최순실 사태에서 분노했던 것도, 최근의 사법농단 의혹에 대해 분개하는 것도 대통령이 또는 대법원장이 본분을 망각하고 국민을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 되기 때문이다.

경찰은 일반 서민에게 공권력을 상징하는 존재다. 그 조직과 인력, 담당하는 업무의 특성으로 말미암아 한편으로는 국민을 범죄로부터 보호하는 일이, 다른 한편으로는 그 과정에서 국민들에게 강제력을 행사하는 일이 가장 피부로 와닿는 공권력 담당자이기 때문이다. 그런 경찰이 범죄를 방관하고 피 흘리는 국민을 나 몰라라 한다면 누가 공권력을 신뢰하고 어떻게 그 나라를 인권이 보장되는 민주국가라 부를 수 있겠는가.

우연한 기회에 벌어진 일회적 사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국민은 비슷한 일이 나에게도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을 두려워한다. 노조원 수십 명에게 폭행당하는 상무를 경찰이 인원수 부족을 핑계로 40분 넘게 방관했다면, 경찰 수보다 많은 사람에게 폭행당하는 사람을 보호하는 것은 경찰의 임무 밖인가. 그러면 폭력 집회에서 시위대보다 적은 인원의 경찰은 그 불법과 폭력을 방관하는 것이 옳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도대체 그런 경찰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더욱 분노케 하는 것은 이 사태에 대해 정부 여당은 국민이 납득할 만한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으며, 야당 또한 이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만일 회사 임원들이 노조원을 집단폭행했어도 그랬을까. 아니, 노조원들이 국회의원이나 고위공무원을 집단폭행했어도 같은 반응이었을까.

정부 여당이나 야당조차도 힘없는 국민을, 그들의 인권을 가볍게 여긴다면 진정한 민주주의는 아직도 멀기만 한 것이다. 국민의 분노가 계속 쌓이면 어느 순간 화산처럼 폭발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깊이 우려한다.
 
차진아 객원논설위원·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민주국가#국가공권력#헌법 개정#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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