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동정민]‘노란 조끼’에 담긴 아우성… “정부는 배고픔을 아느냐”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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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동정민]

동정민 파리 특파원
동정민 파리 특파원
“친환경 좋다. 그런데 나는 먹을 게 없다. 너희들이 배고픔을 아느냐.”

이달 초 프랑스 TV의 노란 조끼 시위 관련 토론 프로그램.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를 대변하는 한 패널이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서는 디젤을 적게 써야 하고, 유류세로 세금을 거둬야 그 돈으로 친환경 정책을 펼 수 있다”는 논리를 펴자 한 시청자가 전화를 걸어 이런 호소를 했다. 패널 중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그만큼 강력한 반격이었다.

미세먼지에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등 세계는 기후 변화와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 전쟁의 딜레마는 가장 큰 피해와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중산층 이하 저소득층이라는 점이다. 당초 마크롱 대통령은 내년 1월부터 대기 오염의 주범으로 불리는 디젤에 한해 ‘원인자 부담’ 원칙에 따라 유류세를 대폭 올리기로 했었다. 그렇게 걷은 세금은 환경에 좋은 재생에너지나 전기차 개발 등에 쓰겠다는 ‘착한 구상’이었다. 그런 선의(善意)의 정책을 펴는 데 ‘L당 7.6센트(약 97원) 세금 인상’은 작은 부담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그 ‘7.6센트’ 때문에 시골에 사는 저소득층 수만 명은 매주 토요일 파리 샹젤리제 거리로 몰려나왔다.

프랑스 통계청에 따르면 프랑스 직장인의 1인당 평균 월급은 1710유로(약 220만 원). 프랑스 북부에 사는 제빵사 뱅상 피카르 씨의 월급은 그보다 적은 1280유로(약 165만 원)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기차역이 차로 35분이나 걸리는 시골에 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매일 차로 출퇴근한다. 그는 “나 같은 사람에게 L당 7, 8센트가 얼마나 큰 돈인지 전혀 모르는 것 같다”며 분노했다. “차를 타지 말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라”는 정부 논리에 “시골엔 대중교통이 없다. 배부른 도시민이나 하는 소리”라고 반박했다.

디젤 비용이 생계와 직결되는 직업은 택시, 트럭 운전사, 농기계를 써야 하는 농부 등 서민들이다. “보조금을 줄 테니 디젤차를 다른 차로 바꿔라”라는 정부를 향해 농부들은 “트랙터 등 농기계에는 친환경 전기차나 하이브리드차가 아예 없다는 사실도 모르나”라고 항변한다. 택시 운전사들도 “당장 하루 벌어먹기도 바쁜데 보조금 몇 푼으로 차를 어떻게 바꾸느냐”고 하소연한다.

프랑스 ‘노란 조끼’처럼 유류세 인상 반대 시위가 한창인 불가리아에서는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이 많은 차량일수록 세금을 더 물리겠다는 정부 방침이 시위의 도화선이었다. 오래된 차를 모는 이들은 대부분 차를 바꿀 경제적 능력이 없는 저소득층이기 때문이다.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정치인들은 이런 시위들을 교묘하게 정치적으로 이용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참에 자신의 파리 기후변화협약 탈퇴 결정을 자랑하며 기후보다는 세금이 중요하다는 주장을 폈다. 현재에는 인기 없는 미래(친환경) 정책보다 당장 임기 중에 표(票)를 얻을 수 있는 감세(減稅) 정책에 올인(다걸기)하겠다는 심산이다.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것이나 양극화에 대응하는 것이나 둘 다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가치다. 두 정책이 충돌하는 상황이라면 정부는 더 세밀한 정책을 마련하고, 그 내용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정부가 나의 배고픔을 아느냐”는 외침으로 마크롱 대통령을 무릎 꿇게 한 ‘노란 조끼’ 시위는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동정민 파리 특파원 ditto@donga.com
#프랑스#마크롱#노란 조끼#유류세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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