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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임희윤]토르와 단군왕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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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임희윤]토르와 단군왕검

임희윤 문화부 기자 입력 2018-12-12 03:00수정 2018-12-1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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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윤 문화부 기자
탁자에는 짐승의 두개골, 벽에는 시체 같은 얼굴을 찍은 사진 액자들….

지난여름, 스웨덴 스톡홀름 시내 외곽의 고풍스러운 건물 5층에 위치한 이카 요하네손 씨 집 거실에 들어서며 소름이 돋았다. 요하네손 씨가 환한 미소로 악수를 건네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 얼어붙을 뻔했다. 그는 스웨덴 TV에 출연하고 각종 매체에 기고하는 20년 경력의 음악 전문기자다.

요하네손 씨의 스웨덴어 저서가 최근 영어로 번역돼 전 세계에 출간됐다. ‘피, 불, 죽음… 스웨덴 메탈 이야기’다. 바이킹 전설과 북유럽 신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이 지역 헤비메탈 역사를 다룬 책이다. 표지 사진을 장식한 것은 징 박힌 전투복과 피로 분장한 무시무시한 가수의 모습. 요하네손 씨는 귀여운 바이킹이 그려진 신화 그림책을 자기 책과 나란히 들어 보였다.

“1990년대 초반 스웨덴과 노르웨이에서 블랙메탈이란 장르가 생겨났어요. 그 태동기에 젊은 음악가들이 무시무시한 북구의 신과 바이킹 전사들의 이야기, 이미지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죠. 그들 대부분이 이런 그림책으로 시작했을 거예요. 저희 스웨덴 사람들은 유치원 때부터 북유럽 신화와 바이킹 이야기를 배우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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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궁금해졌다. 그들에게 북유럽 신화라면 우리에겐 단군신화 격이다. 기억을 아무리 짚어 봐도 단군신화에 흥미를 들여 록이나 헤비메탈에 차용했다는 팀을 본 기억은 없었다. 요하네손 씨에게 물었다. “아이나 젊은이들은 대체로 먼 이국의 이야기에 더 끌리는 법 아닌가요? 우리로 치면 유럽 신화나 동화, 미국의 디즈니에 더 끌렸지 단군이라는 우리 신에 매혹돼본 적은 없거든요.”

요하네손 씨가 더 놀란 눈치였다.

“아, 그래요? 하긴 스웨덴 사람 중에도 바이킹 이야기를 따분해하는 사람들이 있긴 할 거예요. 하지만 오딘, 토르, 로키 같은 신들을 보세요. 정말 독특하고 호전적이에요. 어디든 갖다 쓰고 싶은 캐릭터죠.”

신과 거인의 끊임없는 반목과 무력 충돌이 결국 최후의 전쟁 ‘라그나뢰크’까지 이어지는 비장한 전개의 북구 신화는 과연 그 자체로 헤비메탈스럽다. 바이킹 전설은 또 어떤가. 도끼와 망치를 들고 잔인한 약탈과 전쟁을 일삼으며 오직 상상 속 약속의 땅 ‘발할라’에 닿기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투사들은 할리우드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도 차용됐다.

가장 기억에 남은 단군신화의 장면을 돌아봤다. 곰과 호랑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쑥과 마늘을 갖고 동굴로 들어간다. 마냥 버틴다. ‘먹방’ 대결이다. 이래서 우리나라에 먹방이 발달했나?

단군신화를 활용한 콘텐츠가 없는 건 아니다. 만화가 몇 편 있었다.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가 역사 왜곡과 선정성 논란에 휩싸였다면, 웹툰 ‘OH, MY GOD!’에서 단군은 시바, 오딘 같은 다른 나라 신들과 직장 동료로 어울리며 출장도 다니는 유쾌한 캐릭터다.

한 신화학자가 말했다. “신화의 원형은 어느 나라든 어렵고 무거운 서사시죠. 후배들이 개발하기 나름이에요. 경직된 잣대를 풀고 이리저리 활용할수록 단군도 속세로 내려와 재미난 캐릭터로 변신할 거예요.”
 
임희윤 문화부 기자 imi@donga.com
#토르#단군왕검#블랙메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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