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법의 재발견]〈78〉[니] 것은 ‘네’ 것, [네] 것도 ‘네’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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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대중가요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가끔 자막의 가사와 실제 발음이 다른 경우를 발견하기도 한다. 2014년에 나온 가요 ‘썸’의 가사를 보자.

● 요즘 따라 내 것인 듯 내 것 아닌 내 것 같은 너,
네 것인 듯 네 것 아닌 네 것 같은 나
→ [요즘 따라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
니꺼인 듯 니꺼 아닌 니꺼 같은 나]


자막의 ‘네’와 달리 이를 [니]라 부른다. ‘썸’의 가사 속 ‘네’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대중가요 속의 수많은 ‘네’는 [니]로 불린다. 우리말에서 ‘ㅔ[e]’와 ‘ㅐ[ε]’의 구분이 점점 어렵다는 말을 했었다. 두 모음이 점점 가까워지는 변화가 진행 중이어서다.

젊은 세대일수록 이 둘의 구분을 어려워하는 경향이 심하다. ‘서류의 결재(決裁)’와 ‘대금의 결제(決濟)’ 같은 단어를 잘못 표기하는 일도 자주 생긴다. 그런데 ‘ㅔ’, ‘ㅐ’의 구분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기만 한가? 쉬운 예로 확인해보자.

● 새(新) : 세(三)    ● 내(吾) : 네(四)

‘세, 네’를 ‘시(×), 니(×)’로 발음하는 일은 없다. 적는 일은 더더욱 없다. 이런 쉬운 예들만 그런 것도 아니다. 실제로 혼동되지 않는 ‘ㅔ’, ‘ㅐ’를 가진 단어가 훨씬 더 많다. 두 가지 의문이 생긴다. 발음 구분이 어려운데도 ‘ㅔ’, ‘ㅐ’ 구분이 생각보다 쉬운 이유는 무엇일까? 둘째, 앞서 본 예에서는 ‘네’가 ‘니’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의 머릿속에는 ‘머릿속사전’이 있다 했다. 우리의 머릿속사전에는 ‘세, 새, 네, 내’가 들었다. ‘머릿속사전’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한국어를 모어로 하는 사람들은 이들을 그렇게 인식한다. 머릿속에서부터 이 모음들을 구분하는 것이다.

표준발음법이나 맞춤법에는 그 인식이 반영된다. 인식하는 대로 말하고 인식하는 대로 적어야 그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니까. 그렇다면 ‘내 : 네’의 ‘네’가 [니]로 발음된 이유는 뭘까? 국어의 음운현상과 관련이 있다. 지역 방언 중에는 ‘게’를 [기]라고 하거나, ‘베다’를 [비다], ‘세상에’를 [시상에]라 발음하기도 한다. ‘ㅔ’와 ‘ㅐ’의 구분이 어려워지면서 이를 구분하기 위해 ‘ㅔ’가 ‘ㅣ’로 바뀌는 현상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지역 방언에서도 모든 ‘ㅔ’가 ‘ㅣ’가 되는 것은 아니다. 소수의 몇몇 단어에서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표준어의 기준이 되는 서울 방언에는 생기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서울지역에서조차 유독 ‘네’가 [니]로 발음되는 일이 잦고 간혹 표기에 반영되기도 하는 이유는 뭘까? 쉽게 생각해 보자. 앞선 대중가요의 가사를 보자. 하나의 문장 안에 빈번히 ‘네’와 ‘내’가 등장한다. 같은 맥락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이 둘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보다 분명한 발음 차이가 필요하다. 그래야 의미 전달이 더 분명해진다. 이것이 우리가 때로 ‘네’를 [니]라 발음하는 이유다.

더 중요한 것은 현재 우리의 머릿속에 이 단어는 언제나 ‘네’라는 사실이다. 맥락 안에서 의미 전달을 위해 [니]라 발음한다고 할지라도 ‘네’라고 적어야 한다는 의미다.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맞춤법#표준발음법#음운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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