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한의 전쟁史]〈33〉일본군 잡아먹은 ‘물귀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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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폭탄의 충격이 모든 것을 가렸지만 제2차 세계대전은 세상을 놀라게 한 전술과 첨단무기를 무수히 선보였다. 전략폭격과 상륙작전, 전격전은 현재 시각에서 보면 신기할 것이 없는 전술이고 중폭격기와 제트 전투기, 레이더, 항공모함, 상륙함정 등은 부실투성이다. 하지만 당시엔 하나같이 충격적이고 화제를 쏟아낸 새로운 전술과 장비였다.

바다를 장악한 뉴 히어로는 잠수함이었다. ‘바다의 늑대’로 불린 독일의 유보트는 잠수함전의 대명사가 됐고 태평양에서는 미군 잠수함도 맹활약을 했다. 개전 초기 해상과 항공 모두에서 일본군에 크게 밀렸던 미군은 태평양을 일본에 내주다시피 할 수밖에 없었지만 미군 잠수함은 일본의 전투함과 수송선을 격침시키며 활약했다.

일본군은 해상에서 우위를 점하던 시기에도 심각한 약점을 지녔다. 수송선과 수송능력이 부족했다. 전쟁에서 수송능력은 간과되기 쉽지만 매우 중요하다. 전쟁 전에 일본군이 확보한 선박은 300만 t이었다. 이 가운데 유조선은 1%에 불과했다. 일본군 내부에서도 이 문제가 심각한 약점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군 수뇌부는 이를 무시했다. 전쟁이 시작되자 미군 잠수함은 일본군 수송선을 집중 공격해서 무수한 전과를 올렸다. 1200척과 500만 t의 화물을 수장시켰다.

미군 잠수함의 희생은 적었다. 일본군이 침몰시킨 잠수함은 42척에 불과했다. 일본군은 미군 잠수함의 잠수능력을 잘못 측정해서 폭뢰의 폭발심도를 얕게 잡았다. 미군 잠수함은 심도 아래서 안전하게 움직였다. 이상하게도 일본군은 자신들의 오판을 깨닫지 못했는데, 1943년 미국의 어느 하원의원이 이런 사실을 언론에 떠벌렸다. 미 해군이 항의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정치인은 연예인 못지않게 인기를 먹고 사는 직업이다. 정치인들의 과욕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애꿎은 국민의 희생으로 돌아온다. 그럼 어떠하랴. 그럴수록 정치인들은 더 강력한 쇼를 해서 다시 당선된다.
 
임용한 역사학자
#제2차 세계대전#잠수함#유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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