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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하정민]‘배 아픔’과 ‘부당함’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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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하정민]‘배 아픔’과 ‘부당함’ 사이

하정민 디지털뉴스팀 차장 입력 2018-11-19 03:00수정 2018-11-19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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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쉐론 콘스탄틴 시계(위)와 임스라운지체어 의자. 출처: 바쉐론 콘스탄틴 및 허먼 밀러 웹사이트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지만 한국 사회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말이 ‘서민 코스프레’의 동의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소위 지도층의 소탈하고 검소한 면모를 부각한 천편일률적 보도가 그렇다.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는 ○○○, 대형 관용차 대신 소형차를 타는 ◇◇◇, 칸막이 없는 사무실에서 직원들과 똑같은 책상을 쓰는 △△△….

정치인, 기업가, 고위 관료 누구의 이름을 써도 무방한 기사들이다. 당사자야 좋은 의도에서 그랬겠지만 밥값과 교통비를 조금 아끼는 일이 해당 인사의 핵심 업무와 얼마나 큰 관련이 있으며 그 휘하에 있는 이들과 사회 전체에 어떤 이익이 되는지는 의문이다. 외려 계급 격차를 더 도드라져 보이게 하는 보도가 되풀이되는 이유는 뭘까. 소구하는 대중이 있기 때문이다. 식상해도 팔리는 이야기란 뜻이다.

최근 동아일보가 보도한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짝퉁 명품시계 논란을 보자. 얼마냐, 진짜냐 가짜냐, 지식재산권을 왜 가볍게 여기느냐는 말은 부수적 사안에 불과하다. 핵심은 최 위원장이 왜 자신의 수입과 자산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을 사지 않았느냐다. 세계 11위 경제대국의 금융 수장인 그는 36년간 공직에 몸담았고 공시지가 기준 14억7459만 원의 재산도 있다. 공무원 월급이 적다지만 일국의 장관에 오를 만큼 성공한 60대 남성이 몇천만 원짜리 시계를 ‘못’ 살까. 그런데 ‘안’ 샀다.

문재인 대통령도 비슷하다. 대선 후보 시절 일각에서 문제 삼았던 미국 허먼밀러의 임스 라운지 체어(의자)와 이탈리아의 조르조 아르마니 양말, 지난해까지 썼던 덴마크 모르텐 안경테를 보자. 전자는 대통령 부인이 각각 50만 원짜리 중고, 짝퉁이라 밝히고 안경테는 취임 후 국산으로 바꾸자 뒷말이 사라졌다. 수십 년간 변호사로 활동하고 18억8018만 원의 재산을 지닌 최고 권력자가 800만 원 의자와 60만 원 안경테를 쓰면 안 되는 걸까.

제작: 채한솔 디지털뉴스팀 인턴
몸 사리기를 할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이 좀 짠하기까지 하다. 헌법 위에 있다는 국민정서법의 요체는 ‘배 아픔’을 ‘부당함’으로 착각하는 심리다. 베스트셀러 ‘정의와 질투의 경제학’으로 유명한 일본 경제학자 고(故) 다케우치 야스오(竹內靖雄)는 “질투는 때로 정의의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고 했다. 진짜 배고픈 사람들은 배 아픔을 느낄 여유조차 없는데도 배 아픔을 불공정이라고 주장하는 이들 때문에 공직자로서의 처신, 위화감 논란을 의식하는 상황이 비상식적이다. 지도층은 고가품을 사면 안 된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샀다면 위화감과 무슨 관계란 말인가.

하정민 디지털뉴스팀 차장
흉년에 쌀밥과 고깃국 대신 꽁보리밥을 먹는 임금은 선량한 개인이지만 무능한 군주이기도 하다. 백성들이 잠시 반기겠지만 진짜 원하는 건 흉년을 극복할 방법이지 하향평준화가 아니다. 정당한 돈으로 샀다면 숫자에 0을 하나 더 붙인 6억 원짜리 시계도 8000만 원짜리 의자도 문제가 없다. 중요한 것은 한때 세계경제포럼(WEF) 금융경쟁력 순위에서 우간다에 뒤졌던 한국 금융을 발전시키고 성장 둔화에 빠진 한국 경제를 살려낼 대책이다.
 
하정민 디지털뉴스팀 차장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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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위화감 논란#고가품#한국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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