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 팬티 입으면 性관계 예스라고?… 아일랜드법원 판결에 분노한 여성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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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 여성 성폭행 사건 재판, 피고인측 “동의 증거”… 무죄 받아
여성들 팬티 흔들며 항의 시위… 전세계 “이것은 동의 아니다” 공분

‘이것은 동의가 아니다.’ 아일랜드의 성폭행 재판 과정에서 피해 여성의 끈 팬티가 성관계에 동의했다는 ‘정황 증거’로 제시되고 
기소된 남성이 무죄를 받은 사실이 알려지자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14일(현지 시간) 아일랜드 더블린과 코크 등에선 수백 명이 
참가한 가운데 항의 시위가 열렸다. ‘아이리시 인디펜던트’ 유튜브 캡처
‘이것은 동의가 아니다.’ 아일랜드의 성폭행 재판 과정에서 피해 여성의 끈 팬티가 성관계에 동의했다는 ‘정황 증거’로 제시되고 기소된 남성이 무죄를 받은 사실이 알려지자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14일(현지 시간) 아일랜드 더블린과 코크 등에선 수백 명이 참가한 가운데 항의 시위가 열렸다. ‘아이리시 인디펜던트’ 유튜브 캡처
14일(현지 시간) 더블린과 코크 등 아일랜드의 주요 도시에서 수백 명의 여성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 한 집회에 다양한 레이스 끈 팬티가 등장했다.

‘이것은 동의가 아니다(This is not consent)’, ‘끈 팬티는 말을 하지 못한다(Thongs can‘t talk)’ 같은 문구가 적힌 피켓과 함께 여러 개의 끈 팬티가 거리에 진열됐다. 팬티를 들고 흔드는 시위 참가자들도 있었다. 이들은 거리행진에서 “우리가 뭘 입든 어딜 가든 ‘예스 민스 예스, 노 민스 노(Yes means yes, no means no·동의하지 않은 관계는 성폭력)’”라고 외쳤다.

이날 시위는 5일 아일랜드 코크 중앙형사법원에서 열린 성폭행 사건 재판 결과에 항의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이리시 이그재미너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17세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27세 남성은 5일 재판에서 ‘합의에 의한 성관계였다’고 주장했다. 이 남성의 변호인인 엘리자베스 오코넬은 이에 대한 ‘정황 증거’로 피해 여성의 속옷을 제시했다. 그는 남성 8명과 여성 4명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이 지켜보는 가운데 최후 변론에서 피해 여성이 남성에게 매력을 느꼈을 가능성 등을 언급하며 “그녀(피해 여성)가 어떤 차림이었는지 봐야 한다. 앞이 레이스로 된 끈 팬티를 입고 있었다”고 말했다. 배심원단은 90분간의 논의 끝에 만장일치 평결을 내렸고, 기소된 이 남성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현지 언론 보도를 통해 이 같은 재판 과정과 결과가 알려지자 아일랜드는 물론이고 세계 곳곳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아일랜드 더블린 성폭행위기센터의 노엘린 블랙웰 대표는 인터뷰에서 “(성폭력 재판에서) 피해자가 어떤 차림인지,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곤경에 처했을 때 왜 비명을 지르지 않았는지에 대한 얘기가 빈번하게 나온다”고 비판했다. 루스 코핀저 아일랜드 하원의원은 13일 의회에 출석해 끈 팬티 하나를 꺼내 들어 보이며 재판 결과에 항의했다. 코핀저 의원은 “여기서 끈 팬티를 보여주는 게 당황스러울 수 있다. 성폭행 피해자나 여성들이 법정에서 자신의 속옷이 증거로 제시되는 이상한 상황을 어떻게 느꼈을 것 같나”라고 말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세계 여러 나라 여성들이 ‘#ThisIsNotConsent’ 같은 해시태그와 함께 자신의 팬티 사진 등을 올리며 “21세기 아일랜드의 법원에서 이런 변론이 이뤄지고 있다는 데 좌절감을 느낀다”, “성폭행을 덜 당하는 속옷이 뭔지 알려 달라” 같은 항의 글을 적었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아일랜드법원 판결#여성 성폭행 사건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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