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호의 과학 에세이]냉장고 문은 왜 왼쪽에서만 열리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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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김재호 과학평론가
김재호 과학평론가
고민 끝에 냉장고를 바꿨다. 그런데 새 냉장고를 찾다 보니 냉장고 문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만 열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냉장고가 자리하는 쪽은 싱크대 반대편이라 문이 멀리에서 열린다. 그래서 혹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열리는 냉장고가 있는지 찾아봤다. 하지만 양문형 냉장고조차 냉장실 문을 열 때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만 열게끔 되어 있다. 왜 그런지 갑자기 호기심이 생겼다.

아마 가장 큰 이유는 오른손잡이가 많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약 12%는 왼손잡이고 양손잡이는 1% 정도다. 네덜란드 미국 벨기에 등은 왼손잡이가 13%대 수준이다. 반면 멕시코 한국은 2% 정도다. 그러니 굳이 한국에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열리는 냉장고를 만들지 않는다고 추측할 수 있다. 왼손잡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한국에서 냉장고를 썼다면 불편했을 것이다.

해외에선 고객의 요청에 따라 문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 냉장고 판매 사이트에선 문을 고정하는 경첩의 위치를 다르게 할 수 있다고 안내한다. 또 어떤 제품은 직접 문의 여닫는 방향을 바꿀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단, 정수기나 얼음 만드는 제빙기가 설치돼 있지 않은 경우에 한해서다.

손글씨를 쓸 때도, 지금 타자를 치는 순간에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 오락실 게임을 생각해보면 진행 방향이 언제나 왼쪽에서 오른쪽이다. 동물 그림을 그릴 때 머리는 왼쪽, 꼬리는 오른쪽으로 향하기 마련이다. 일식집 초밥의 흐름 역시 왼쪽에서 오른쪽이다. 그게 오른손잡이들에게 편하기 때문이다.

오른손잡이가 오른손잡이와 악수를 하면 내 입장에선 상대방의 왼쪽으로 먼저 손이 간다. 거울에 비친 나의 오른손은 좌우가 바뀌어 있기 때문에 왼손이 된다. 오른손잡이가 많은 세상에선 왼쪽에 먼저 호감이 가는 게 자연스럽다. 일종의 거울 효과다. 승합차의 슬라이딩 도어는 운전석과 조수석 쪽에서 미는 방향이 서로 반대다. 운전석 쪽에서 문을 밀 때 덜 어색하다.

그런데 집에 있는 전자레인지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열린다. 희한하다. 아무 이유 없이 그렇게 만들었을 리 없다. 냉장고 문과 전자레인지 문의 차이는 여는 힘이다. 오른손잡이의 경우 오른손이 왼손에 비해 힘이 더 세다. 냉장고 문은 힘을 줘야 하는 반면 전자레인지 문은 쉽게 열린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냉장고 공간은 크기 때문에 무거운 물건이 많다. 즉, 오른손으로 문을 열고 왼손으로 무거운 물건들을 꺼내는 경향이 있다. 전자레인지는 왼손으로 문을 열고 오른손으로 음식을 넣거나 빼거나 한다. 뭔가 반대로 돼 있는 것 같다.

문을 여는 힘과 물건을 드는 힘을 비교해보자. 냉장고는 특성상 밀폐가 핵심이다. 전자레인지 역시 음식을 데우거나 끓이는 데 밀폐가 중요하나 냄새가 새어 나오는 걸 보면 냉장고에 비해 덜하다. 여름날 냉장고의 음식들이 안전하게 오랫동안 보관되려면 바깥과의 완벽한 차단이 필수다. 그렇기 때문에 냉장고 문 열기가 전자레인지에 비해 더욱 힘들다. 크기도 크기이지만 가전제품의 용도가 관건이다. 문의 마찰력이 물건의 중력을 압도하는 셈이다.

인간은 은연중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지구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자전한다. 물론 자전축이 조금 기울어져 있다. 큰 지구의 작은 인간은 지구의 자전을 느끼지 못하지만 서쪽에서 동쪽으로 계속 돌다 보니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향하는 걸 당연하게 간주하고 있는 건 아닐까. 지구에 있는 모든 것이 한 방향으로 돌다 보니 그 방향에 맞춰 뇌가 순응했을 수 있다.

좌뇌는 이성적이고 논리적, 수리적 사고의 능력을 관할한다. 언어는 좌뇌에서 비롯된다. 우뇌는 감성적이고 예술적이며 상황과 맥락을 이해하는 능력과 결부된다. 또 좌뇌는 음식을 찾는 등 일상적인 일들을 수행하도록 진화했다. 반면 우뇌는 환경에 처한 위험 등을 감지하고 즉각 대응하도록 조치한다. 이성에서 감성으로, 일상에서 위기로가 자연스럽다. 오른손을 관할하는 좌뇌의 활성화가 세상의 모든 걸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향하도록 유도한 건 아닐까.

숫자를 쓸 때도 큰 수인 맨 왼쪽에서부터 기록한다. 생각해보니 이상하다. 작은 숫자부터 차례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기입해야 자연스러울 텐데 말이다. 가끔 왼손잡이들이 작은 수부터 쓰는 걸 본 적 있다. 특히 모든 악보는 왼쪽에서부터 음계가 그려진다. 시작과 끝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향한다. 그렇다면 냉장고 문이 왼쪽에서 열리는 건 단지 오른손잡이의 문제가 아니라 좀 더 근원적인 어떤 이유가 작용했을 수 있다.
 
김재호 과학평론가
#냉장고#오른손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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