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하준경]사립유치원들의 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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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지원받는 유치원은 공공성 강한데 총연합회는 ‘영리사업자’ 지위도 요구
이익집단화해 정치적 영향력까지 행사
세금 내는 국민이 이익집단 견제하고 집단 간 경쟁 촉진해야 투명성 높아져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잘나가던 사업가가 몇 년 전 갑자기 유치원을 차렸다. 친구들이 웬일이냐고 묻자, 그는 “첫째, 유치원 용도의 땅을 분양받으면 땅값이 오르고 둘째, 자녀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데 큰 도움이 되며 셋째, 진입장벽이 높은 데다 정부 지원금까지 나오니 안정적 현금 흐름이 보장된다”고 했다.

그럴 수도 있겠으나 유치원 설립자들 중엔 영리엔 관심 없이 사재를 털어서라도 아이들을 잘 키우려 애쓰는 교육자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작금의 유치원 비리 사태에 대한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의 대응을 보면 사립유치원을 이젠 영리사업자로 봐 달라고 하는 것만 같아 씁쓸하다. 이런 시각을 세금 내는 국민들이 지지할 수 있을까.

예컨대 국가 회계시스템을 받아들일 테니 유치원 건물 이용료 명목으로 세금을 추가 지원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납득이 잘 되지 않는다. 그 논리대로라면 임대료가 비싼 서울에 있는 사립학교에는 국가가 거액의 건물 이용료를 챙겨줘야 할 것이고, 강남에 있는 병원에 대해서는 건강보험 수가도 더 쳐줘야 할 것이다. 많은 이가 사유재산, 즉 자기 땅과 건물에서 공익적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데 유치원만 특별대우를 해달라는 것 같아 의아하다.

따지고 보면 사립유치원도 ‘유아교육법’에 의해 설립된 ‘학교’이고, 학교는 ‘교육기본법’에 따라 ‘공공성’을 갖는다. 학원들과는 법적 지위가 다르고, 그 때문에 다양한 지원을 받고 교육감의 지도·감독도 받는다. 이를 잘 아는 이들이 굳이 무리한 요구사항을 내거는 이유는 뭘까.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게리 베커의 이론에 따르면 이런 상황은 이익집단이 정치적 힘을 갖고 있을 때 벌어진다. 정치적으로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집단은 무리해 보일지라도 자신의 힘에 걸맞은 대우를 요구하기 마련이다. 압력집단은 다른 압력집단들, 특히 납세자 그룹과 세금-보조금을 놓고 줄다리기 경쟁을 벌이는데, 정치권력은 이들 중 더 효율적으로 정치적 압력을 만들어 내는 그룹의 주장에 이끌린다. ‘압력’은 로비, 위협, 불복종, 선거에서의 영향력 등을 말한다. 집단 간 경쟁의 결과는 보조금, 진입장벽, 느슨한 감독 등 여러 항목으로 구성된 지원 패키지에 반영된다.

주목해야 할 것은, 대규모 그룹보다는 비교적 소규모의 동질적 그룹이 정치적 압력을 더 잘 만들어 낸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연간 유치원 지원금 2조 원은 납세자 한 명에겐 5만 원 정도의 문제지만 유치원 한 곳에는 5억 원이 걸린 일이다. 회비를 걷고, 회원들이 다른 회원들의 노력에 무임승차하지 못하게 통제하는 일을 어느 그룹이 더 잘하겠는가. 교육감 선거 등 각종 선거에서 누가 더 효과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지도 명약관화하다. 이런 정치적 힘이 상존하는 한, 정부가 기존 지원 패키지에서 한 항목을 뺀다고 할 때 대신 다른 항목을 넣어 기득권의 총 수준을 유지시켜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된다.

그러나 압력집단의 정치적 힘은 상대적일 뿐이라는 게 베커의 지적이다. 어떤 집단이 아무리 강고해도 반대쪽에 있는 납세자 그룹의 정치적 힘이 커지면 그 집단의 영향력은 그만큼 줄어든다. 세금 지원의 규모가 커지고 이에 따라 유용될지 모르는 돈의 규모도 커지면 납세자들의 집단적 힘이 강해져 감시와 견제가 제도화되는데, 이는 선진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반적 현상이다. 이번 사립유치원 사태의 전개 과정에서도 납세자 입장에서 정치적 압력을 행사한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의 역할을 간과할 수 없다.

압력집단 사이의 경쟁은 세금을 더 효율적으로 쓰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세금을 지원받는 집단은, 역학관계의 시대적 변화에 적응해 세금이 더 잘 쓰이는 데 기여하는 방향으로 자신의 힘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것이 신뢰와 지원을 얻는 길이다. 유치원뿐 아니라 어린이집, 요양병원 등 세금이 투입되는 많은 부문에서 납세자들의 감시와 견제 요구는 강해지고 있다. 선진국들이 복지지출을 많이 하면서도 생산성이 높은 것은 민주적 통제장치를 발전시켜 왔기 때문이다. 정부도 이 흐름에 맞춰 다양한 집단들 사이의 견제와 경쟁을 촉진하고, 세금 사용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인프라도 조속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사립유치원#영리사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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