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동정민]文대통령 칭찬하던 유럽,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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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민 파리 특파원
동정민 파리 특파원
지난해 2월 유럽연합(EU)은 북한의 핵개발에 따른 대북 제재를 발표했다. 당시 유럽에 파견된 한국 외교관들은 북한과 수교를 맺고 있는 국가들에 수교 단절까지 권하기도 했다. 북한의 외교적 고립은 당시 박근혜 정부의 핵심 전략이었기 때문이다.

영국과 독일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갈등이 커질수록 대화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게 한결같은 유럽 국가들의 생각이었다.

1년 만에 상전벽해가 일어났다.

이제 한국 외교관들은 유럽 정부 관료를 만나 대북 제재 해제를 요청하고 다닌다. 문재인 대통령은 유럽 주요국 중 유일하게 북한과 수교를 맺지 않은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만나 수교 체결을 권유하기도 했다.

정권이 바뀌어도 큰 틀의 외교 방향은 건드리지 않는 유럽으로선 낯선 일이지만 어쨌든 북한과 대화를 시작한 문재인 정부에 유럽 국가들은 큰 박수를 보내 왔다.

그러나 칭찬 일색이던 문 정부의 대북 정책에 최근 들어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외교관과 전문가를 만나면 한결같이 “트로 비트(trop vite)”를 외친다. ‘너무 급하다’는 뜻이다.

문 대통령은 최근 순방에서 프랑스에 북한과의 수교 체결과 대북 제재 완화, 두 가지를 요구했지만 마크롱 대통령은 명확하게 거절했다.

정상 간 이견을 노출했다는 언론 지적에 청와대는 “마크롱 대통령 역시 CVID(완벽한 비핵화) 이후에는 제재를 해제하겠다는 것이니 두 정상이 같은 말을 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두 정상의 이해가 일치했다”고 쓴 프랑스 언론을 필자는 찾지 못했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진정성을 강조했고, 마크롱 대통령은 북한의 구체적 행동을 요구했다”는 게 프랑스 언론들의 전반적 기조였다.

유럽 입장에서는 CVID는 시작도 안 했는데, CVID 논의 대신 그 이후 제재부터 논의하자는 건 김칫국부터 마시자는 꼴이다.

김 위원장을 비핵화의 길로 유인하기 위한 문 대통령의 진정성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순방을 다니며 대북 제재 해제를 외치고 다니지만 유럽 등 국제사회의 호응이 기대 같지 않다. 오히려 문 대통령 순방 이후 프랑스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북한 선박 제재 확대를 환영하는 논평을 냈고, 유엔에서 핵 문제를 놓고 북한과 설전을 벌였다. 북한 인권 문제도 유엔과 미국, 유럽에서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평소 북한과의 대화를 강조해온 바르텔레미 쿠르몽 프랑스 국제전략관계연구소 디렉터는 문 대통령 순방 평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문 대통령은 과거 몇 달 동안의 노력과 선한 의도를 지지받길 원했지만 서방 국가들은 본질적으론 달라진 게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과거 (북핵 관련) 합의 때마다 경험한 북한에 대한 실망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가 순방에서 원하는 성과를 얻지 못한 이유다.”

한국 정권은 바뀌었고 마침 김 위원장도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한다. 그런데 국제사회는 그대로 그 자리에 있다. 그들은 불과 1년 전만 해도 미사일을 쏘아대던 북한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후로 따진다면 대북 제재를 풀어 달라고 국제사회를 설득하는 것보다 국제사회를 설득하기 위해 진정성을 입증할 행동이 필요하다고 북한을 설득하는 게 먼저라는 생각이 든다.
 
동정민 파리 특파원 ditto@donga.com
#문재인 대통령#대북 제재#유럽 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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