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철도 연결, 기대 속 우려도…러·中이 이권 내세워 뛰어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9일 14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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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이 철도·도로 연결과 현대화를 위한 착공식을 11월 말~12월 초 갖기로 합의하면서 경제협력의 기관차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없지 않다. 건설업체와 철도 차량 제작 업체 등 관련 업계는 남북경협 특수(特需)가 나타날 것이라는 희망 섞인 분석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도 많고 갈 길도 멀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난관은 남북한 철도를 잇는 기술적인 어려움 뿐만 아니라 북한내 철도 부설을 둘러싼 관련 당사국간 이해도 복잡하다. 더욱이 철도 도로 연결은 북한의 비핵화 및 제재 완화가 순조롭게 진행된다는 점을 전제로 한 것이어서 관련 협상 진행의 추이도 중요하다.

남북 철도 연결? 도처에 도사린 기술적 걸림돌

북한 철도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선로 폭이 1435㎜인 표준궤를 쓴다. 일본이 강점기에 표준궤를 채택했기 때문이다. 남북 철도를 연결하는 데 있어 선로를 바꿀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전력공급 시스템은 다르다. 한국이 2만5000V 교류를 쓰는 반면 북한은 3000V 직류를 사용한다. 호환 장치를 달지 않으면 남북 철도 연결은 불가능하다. 물론 디젤 기관차를 활용하면 기존 선로를 이용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전철의 효율이 높은 만큼 장기적으로 전력공급시스템은 통일시켜야한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북한은 전력 사정이 좋지 않아 발전소와 변전소를 확충해야 하는 것도 추가적인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신호 체계 통일도 필요하다. 아날로그 방식인 북한 신호 체계를 한국과 같은 디지털로 전환해야 장기적으로 고속철도를 부설할 때 혼란을 막을 수 있다.

박정준 한국철도기술연구원 미래혁신전략실장은 “남북 모두 일제 강점기에 채택한 표준궤를 사용하고 있어 (하드웨어) 연결에는 큰 문제점은 없다”며 “하지만 전력공급시스템이나 설계 기준, 신호 체계, 각종 기술 용어 등은 차이가 많아 남북 간 협의를 통해 통일을 해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관련국들 ‘동상이몽(同床異夢)’

남북 철도 연결이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유라시아 철도의 완성이라는 점에서 남북한은 물론 중국이나 러시아 등 주변 국가들까지 이권을 위해 뛰어들면 국제적인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과 러시아는 2014년 10월 ‘북한 철도 현대화 사업(일명 포베다 프로젝트)’ 계약을 체결했다. 향후 20년 간 노후화된 북한 철도 3500㎞(북한 전체 철도 노선의 70%)의 레일과 터널, 교량을 현대화하는 사업이다. 총 사업비만 250억 달러(약 27조5000억 원)에 이른다. 러시아는 철도 현대화를 해주는 조건으로 희토류 채굴을 허가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공사는 러시아 건설업체인 모스토빅이 맡고 있다. 계약 체결 당시 관련 업계에서는 러시아가 유럽과 극동을 잇는 시베리아횡단철도(TSR)과의 연결을 염두에 두고 사전 정지 작업에 들어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남북 철도가 연결될 때를 대비해 북측 노선에 대한 기득권을 주장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얘기다.

TSR이 남북을 잇는 철도망과 연결되면 한국은 물론 일본의 물동량까지 흡수할 수 있어 수익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으로서는 자칫 잘못하면 남북 철도 연결 비용만 부담하고 사업 주도권은 러시아에게 빼앗길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남북이 경의선 고속철도를 건설하면 중국횡단철도(TCR)와 연결시키는 조건으로 중국형 고속철도 모델을 고집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 차관 제공을 빌미로 북한을 움직이면 ‘재주는 한국이 넘고, 실리는 중국 왕서방이 챙기는’ 상황도 나올 수 있다.

남북 간에도 철도 현대화에 대한 ‘온도 차이’가 있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경제성이 높은 경의선 고속철도 건설에 관심이 높다. 반면 북한은 경의선 뿐 아니라 전국의 철도 노선 및 도로 현대화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구체적인 협상이 진행되면 디테일에서 이견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진장원 한국교통대 교통정책학과 교수는 “러시아나 중국은 남북 철도가 연결되면 TSR이나 TCR 수익성이 좋아진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향후 수익 배분 구조에서 한국 측에 가중치를 두게 하는 등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협상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남북 철도 연결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유라시아 대륙으로 이어지는 물류 동맥이 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도로는 약간 다르다. 북한 도로 현대화는 한국이 누릴 수 있는 경제적 효과가 크지 않아 사업비 확보가 쉽지 않은데다 일부에서는 유사시 북한군이 대규모로 이동할 수 있게 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없지 않다.

사업비용 조달은 어떻게?

남북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사업의 또 다른 쟁점은 사업비용 조달 문제다.

2012년 국토교통부가 잠정 집계한 남북 통합교통망 구축 비용은 사업 방식에 따라 22조~33조 원에 달했다. 수년이 흘러 인건비나 각종 건자재 비용 상승을 고려하면 이 보다 더 늘어난다. 일부 도로 및 철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철도를 고속철도로 건설하면 비용은 100조 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예측도 내놓고 있다.

비용이 큰 것 못지 않게 사업 비용을 어떻게 조달할 지에 대한 방안들은 뚜렷하지 않다. 북한의 경제 사정을 감안할 때 북한이 부담할 몫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결국 외부에서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이 북한에 경협 차관을 제공하는 방식도 거론된다. 다만 북한은 현재 9억3294만 달러에 이르는 기존 차관도 갚지 않고 있어 추가 차관 제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금융권이나 건설업계에서는 남북이 공동으로 해외에서 차관을 들여올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횡단철도(TCR), 시베리아횡단철도(TSR) 등 유라시아 철도망과 경의선을 연결시키는 데 관심이 많은 중국이나 러시아는 공동 개발을 조건으로 차관을 제공할 가능성도 있다. 국내외 금융권에서는 경의선 고속철도화 사업의 경우 사업성이 좋아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국제 금융기관이 투자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물론 이는 북한의 비핵화 협상이 원만히 진행돼 유엔 제재가 풀리는 등 ‘정치적 리스크’가 해소됐을 때를 전제로 한 시나리오다.

일각에서는 한국이 북한의 지하자원 개발권을 넘겨받는 조건으로 사업 자금을 지원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북한이 러시아에 희토류 채굴권을 주는 조건으로 철도 현대화를 추진하는 ‘포베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려고 한 것과 비슷한 유형이다.

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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