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에 찍히면 달러 결제망 축출… 이란核도 무너뜨린 ‘절대 제재’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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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더리 보이콧’ 얼마나 강력한가

“미국이 무슨 조치를 할지 모르는데 우리 정부는 해결 못 해줄 것 같고…. 문제가 되면 정말 큰일 난다고 하니 조심스럽죠.”

최근 남북관계 흐름을 지켜봐온 한 휴대전화 부품업체 관계자는 미국 재무부가 한국 시중은행들에 직접 대북 제재 준수를 요청한 데 이어 사실상 ‘세컨더리 제재’까지 경고하고 나선 것을 놓고 15일 이렇게 말했다. 대북사업에 발을 잘못 들였다가는 호된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경계심이 기업들 사이에서 확 높아졌다는 게 이 관계자의 전언이다.

‘세컨더리 보이콧’으로도 불리는 제3자 처벌 조항은 미국의 독자적인 대북 제재 중에서도 가장 무시무시한 조항으로 꼽힌다. 이는 제재 리스트에 오른 개인이나 단체, 기관은 물론 이들과 합법적으로 거래하는 제3자까지 제재하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제재 대상이 아닌 제3국의 은행이 제재 대상인 북한 기업에 돈을 빌려줬다면 그 이유만으로 미국의 제재를 받게 되는 식이다.

수출입 결제를 위해 수조 원대 대규모 자금이 오가는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기축통화인 달러를 사용하지 않고는 거래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달러 환전 및 송금을 하려면 국제 금융결제 시스템을 통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미국 은행을 거칠 수밖에 없는 것. 이런 상황에서 세컨더리 보이콧을 당해 미국 내 자산동결 및 거래 중단 조치가 이뤄지면 뱅크런(예금 대량인출) 사태가 벌어져 파산까지 이를 수 있다.

미국이 세컨더리 제재를 적용했던 대표적인 대상은 이란이었다. 이란이 핵개발을 포기하도록 하기 위해 단행한 이 조치로 당시 ABN암로와 ING, 바클레이, 스탠다드차타드 등 글로벌 금융기관들은 각각 1억 달러가 넘는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이 조치로 이란은 석유 수출길이 막혔고, 결국 이란의 핵포기 선언 및 핵협상 타결로 이어졌다. 북한 입에서 “고통스럽다”는 비명이 나왔던 방코델타아시아(BDA) 제재도 마찬가지. 이 은행 계좌에 김정일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2500만 달러의 북한 돈이 있었는데, 미국이 북한과 거래했다며 은행 자체를 제재해버린 것. BDA는 결국 파산했다.

미국의 독자제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의 전원합의가 이뤄져야 하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와 달리 대통령의 행정명령만으로 집행이 가능하다. 그 대상도 광범위하고 포괄적이어서 “미국이 걸려고 하면 다 걸린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파장과 위력이 너무 큰 만큼 역대 미 행정부도 대북 제재에는 세컨더리 보이콧을 적용하지 않았다. 북한의 주교역국인 중국과 무역 전쟁을 각오해야 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2005년부터 2016년까지 11년간 모두 6개의 대북 제재 관련 행정명령을 발표했지만 세컨더리 제재 규정은 넣지 않았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이런 세컨더리 제재를 거침없이 단행할 태세다. 미국은 지난해 9월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감행한 이후 7번째인 ‘행정명령 13810’에 세컨더리 제재 근거가 되는 규정을 포함시켰고, 올해 10월 4일엔 466개 대북제재 대상에 ‘세컨더리 제재 위험’을 일일이 명시했다.

일각에선 북한이 BDA 사태 이후 미국의 제재망을 피하려고 달러 대신 중국 위안화, 러시아 루블화 등으로 사용 화폐를 바꾸고 지방의 소규모 은행으로 계좌를 분리 이체하는 만큼 세컨더리 보이콧 적용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중국과 러시아의 지방 은행은 워낙 수가 많아 적발이 쉽지 않다는 점도 한계로 거론된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세컨더리 보이콧#미국#대북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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