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융프라우 걷go, 타go, 날go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3일 03시 00분


코멘트

[조성하 여행 전문기자의 休]

융프라우에선 톱오브유럽 외에도 즐길거리가 많다. 피르스트의 글라이더(위 사진)와 탠덤패러글라이딩 및 플라이어(아래 좌우 사진), 클라이네샤이데크의 아이거워크 하이킹 장면.
융프라우에선 톱오브유럽 외에도 즐길거리가 많다. 피르스트의 글라이더(위 사진)와 탠덤패러글라이딩 및 플라이어(아래 좌우 사진), 클라이네샤이데크의 아이거워크 하이킹 장면.
스위스 알프스의 여름과 가을은 확연히 다르다. 가장 큰 차이라면 ‘뎅그렁 뎅그렁’ 방울 소리다. 출처는 젖소. 한여름엔 좀처럼 듣기 힘든 이 소리, 요즘엔 도처에서 들린다. 여름엔 보이지 않던 소가 이 가을 산기슭 농가 목초지에 모습을 드러내서다. 그건 알프스 산지의 일상. 한여름 이곳 농부는 모든 소를 해발 2000m 이상 고지대로 보낸다. 그리고 집 앞 목장의 풀은 베어내 건초로 저장한다. 한겨울 소에게 먹일 식량이다. 그 소가 목장에 돌아오는 건 9월 중순. 그래서 가을엔 소의 방울 소리가 다시 들리는 것이다. 요즘은 소를 트럭에 싣고 오기도 하는데 전통적으로는 한꺼번에 수십 마리를 몰고 내려온다. 그때 선두 소의 목엔 화한이 걸리거나 머리와 소뿔이 들꽃으로 장식된다. 가족의 귀가를 환영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주 찾은 베르너오버란트(고원)의 융프라우 지역 산악에서 새로운 변화를 목도했다. 통상 시월은 비수기라 관광객이 줄어 호텔도 거의 문을 닫는다. 그래서 10여 년 전 이맘때엔 아주 한산했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한여름과 진배없었다. 예전 가을 비수기의 원인은 궂은 날씨. 계절이 바뀌는 시기엔 비도 잦고 바람도 차가웠다. 그런데 지난주엔 내내 맑고 청명했다. 이것도 온난화 영향인 듯했다. 소가 계절에 따라 산을 오르내리는 풍경엔 변함이 없어도 융프라우산악철도로 톱오브유럽(Top of Europe·해발 3454m 유럽에서 가장 높은 철도역)을 찾는 관광객 모습엔 큰 변화가 일고 있다. 이젠 여행도 변화의 흐름을 주시하며 떠나야 한다.

빙하골프: 지난 4일 오전 11시. 톱오브유럽 역 바깥 융프라우요흐(묀히 융프라우 두 봉 사이의 낮은 지대)의 알레치 빙하 설원에 헬리콥터 한 대가 내려앉았다. 그리고 거기서 PGA 메이저 대회에서 네 번 우승한 로리 매킬로이가 부인 에리카와 함께 내렸다. 이들을 융프라우철도 우르스 케슬러 대표가 맞아 매킬로이의 스폰서인 명품시계 오메가가 눈밭에 가설한 무대로 안내했다. 그는 갤러리의 환호를 받으며 거기 올랐고 드라이버와 아이언으로 10여 개 샷을 날렸다.

융프라우철도는 매년 이런 특별한 이벤트를 여기서 펼친다. 그간 초대된 이는 모두 세계최고 스포츠 스타. NBA 스타 토니 파커, 스위스 출신 윔블던 챔피언 로저 페더러, 스위스 국가대표축구팀 등등. 모두 이 빙하설원에 설치한 코트와 필드에서 특별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그러다 보니 매년 올해 초대 인물은 누구인지가 관심사. 매킬로이는 오메가의 홍보대사다. 유럽 최고(最高) 철도역 톱오브유럽에서 유럽 최장 알레치 빙하(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향해 세계 최고 시계 브랜드가 최정상 골프선수를 불러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이벤트를 무료로 펼치는 이 ‘세계 최고의 무대’. 이날 여길 찾은 여행자에겐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다.

톱오브유럽: 융프라우요흐와 백두산 천지의 공통점. ‘3대가 덕을 쌓아야 제대로 본다’는 말이 늘 회자되는 곳이란 점이다. 파란 하늘 아래 쏟아지는 햇빛 속에 톱오브유럽 정상역 설원에서 그 멋진 풍광을 본 이라면 동의할 것이다. 구름에 덮이거나 눈비가 내려 이걸 보지 못하고 돌아간다면 얼마나 억울할지. 하지만 어쩌랴.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으니. 하루 일정으로 찾는 이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보든가 못 보든가 둘 중 하나다. 그런데 2, 3일 머문다면 다르다. 호텔 객실 TV나 그린델발트(1034m·아이거 북벽 밑 빙하마을)역 야외 모니터로 정상 실시간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서다. 좋으면 오르고 나쁘면 미룰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진다.

일단 거기 올랐다면 하나도 빼놓지 말고 즐겨야 한다. 스노펀(Snow Fun)이 첫 번째다. 알레치 빙하의 설원은 365일 눈밭인데 여길 튜브슬라이드와 다양한 썰매, 스노보드로 즐기는 곳이다. 집와이어도 있다. 그 설원의 공중을 새처럼 고속으로 하강한다. 그 고도(3500m)만 보면 특전사의 낙하산 강하 높이에 해당된다. 그런 다음엔 묀히 산장까지 설원 하이킹을 한다. 지구의 빙하설원 중에 가이드 없이 혼자서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두 시간(왕복) 정도 걸리고 고산이라 숨이 가빠 빨리 걸을 수 없으니 하산 시각과 건강 상태를 살핀 뒤 도전한다. 이후엔 스핑크스전망대(3571m)와 ‘알파인 센세이션’(지하전시관), ‘아이스팰리스’(빙하동굴) 순으로 즐긴다. 톱오브유럽역엔 식당이 5개나 있고 우리 컵라면도 판다. 스위스 초콜릿의 대명사이자 자존심인 린트(Lindt) 매장의 가격은 일반 상점보다 저렴하다.

융프라우 명소: 융프라우 지역은 광대하다. 아이거 묀히 융프라우로 이뤄진 세 자매(Three Sisters)봉 아래 두 개의 계곡이 있고 그 아래 호반도시 인터라켄(567m)엔 또 두 개의 거대한 빙하호가 포진했다. 융프라우철도는 그 산악 곳곳을 다양한 수단(철도+케이블카+곤돌라+체어리프트)으로 연결시킨 운송 시스템인데 톱오브유럽은 가장 높은 곳. 그린델발트와 벵겐(1873m), 뮈렌(1634m)은 산악마을이고 라우터브루넨(796m)은 계곡마을, 클라이네샤이데크(2061m)는 고원의 환승 중심이면서 또한 스키와 하이킹 센터다. 툰과 브리엔츠 두 빙하호에는 여객선이 다니고 퓨니큘러와 산악기차로 오르는하더쿨름(1322m)과 쉬니게플라테(1967m)에선 두 호수를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곳이 하이킹 코스와 연결돼 어디든 원하는 곳을 하이킹하며 둘러보게 된다.

피르스트(First):
아이거 북벽과 마주한 산악으로 산장과 식당을 갖춘 승강장(2168m)은 북벽 아래 산악마을 그린델발트에서 곤돌라로 오른다. 도중엔 보어트와 슈렉펠트 두 역이 있는데 피르스트-슈렉펠트엔 집와이어 일종인 ‘플라이어(Flyer)’와 ‘글라이더(Glider)’, 슈렉펠트→보어트는 마운틴카트(세 바퀴 차·신장 135cm 이상), 보어트→그린델발트는 트로티바이크(자전거바퀴 킥보드·125cm 이상)를 즐긴다. 한겨울 이 산악에선 스키와 설원하이킹이 대세. 아이거 북벽과 주변 산악을 그린델발트 마을과 더불어 조망하는 클리프워크(절벽돌출 전망대)도 승강장 옆에 있다. 파울호른을 거쳐 쉬니게플라테로 이어지는 하이킹 트레일(15.9km·편도 6시간 10분)도 여기서 출발한다.

● 여행정보

융프라우VIP패스: 융프라우철도 한국인 전용 할인(30% 이상) 패스. 융프라우 지역 철도역에 쿠폰을 제시하고 구입. 톱오브유럽행 융프라우철도만 횟수 제한(1회)이 있을 뿐 다른 모든 교통수단(그린델발트 마을 버스, 호수 유람선 포함) 이용은 무제한. 피르스트 액티비티(4종)도 50% 할인해주고 컵라면 교환 바우처(6스위스프랑)도 준다. 겨울엔 스키 리프트권으로 이용. 한겨울 피르스트 액티비티는 2종(플라이어 글라이더)만 운영. 부모와 함께 온 자녀(15세까지)는 두 명까지 모든 게 무료다.

동신항운: 융프라우철도와 여행에 관한 모든 것을 취급하는 전문여행사. VIP패스 쿠폰도 여기서 나누어준다. 신청(이메일·우편)하면 종합 가이드북도 준다. 요즘은 3, 4일 패스가 인기.


▼종교개혁 덕 본 시계산업, 디자인 입고 명품 행진▼

알레치 빙하 특설무대에서 드라이브 샷을 날린 로리 매킬로이의 피니시 모습.
알레치 빙하 특설무대에서 드라이브 샷을 날린 로리 매킬로이의 피니시 모습.
취리히 공항 통로 벽에 걸린 ‘스위스 메이드’(Swiss made·스위스 제품)란 문구. 댓바람에 연상되는 건 누구나 같다. 스위스 시계다. 오메가 롤렉스 불로바 태그호이어 론진 티쏘 스와치…. 그런데 늘 궁금한 게 있었다. 스위스가 어떻게 해서 시계 왕국이 됐느냐다.

열쇠는 종교개혁이다. 장 칼뱅(1509∼1564)의 영향이 지대했다. 칼뱅은 프랑스 신학자. 신성로마제국과 프랑스 간 전쟁을 피해 제네바를 찾았다가 주민의 요청으로 종교개혁을 이끌게 됐다. 그가 남긴 유산은 크다. 가난한 이를 끔찍이 위했던 터라 복지제도가 확충됐다. 더불어 청빈은 미덕으로 여겨졌고, 사치 향락은 죄악시됐다. 그 바람에 제네바에서 성업했던 보석가공업은 큰 타격을 입었다. 수요 급락으로 파탄지경에 이르렀다.

반면 덕을 본 곳도 있다. 시계 제작자다. 금지 치장 품목에 들지 않은 시계가 보석을 대신하게 된 것이다. 그러자 보석세공사와 보석상도 시계에 올인했다. 16세기 말엔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에서도 시계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제네바엔 크게 못 미쳤다. 시계의 산업화에 대한 포부 때문이다. 1601년 설립한 ‘시계제작자조합’(길드·Guild)이 그것. 스위스에서 시계 산업은 이렇게 태동했다.

당시 제네바 시계의 핵심은 ‘정확성’이 아니었다. ‘심미성’이었다. 고객 자체가 시계를 보석으로 간주하고 유행에 민감한 부유층이어서다. 정확함에선 영국 것도 나무랄 데 없었다. 디자인은 형편없었지만. 그런데 점차 경쟁국도 제네바 추세에 편승했다. 고급 시계 제작이다. 그러나 개척자 프리미엄은 늘 크다. 길드의 조직적 생산체계에 힘입어 가내수공업 형태로 발전한 제네바를 이길 수는 없었다. 당시 제네바에선 집에서 집, 마을에서 마을로 시계 제작이 확장 일로. 하지만 표준화 개념이 없던 터라 시계는 저마다 모양이 달랐다.

다니엘 장리하르트(1665∼1741·스위스)가 등장한 건 이즈음이었다. 그는 이 같은 주먹구구식 시계 생산에 분업 개념을 도입한 시계 산업 개척자다. 부품과 공구, 기계를 표준화하고 장인마다 특정 부품만 전문 생산토록 유도했다. 또 조립만 하는 소규모 공방을 따로 두었다. 이제 시계는 부품 생산과 조립의 이분화 체계로 대량 생산됐다. 도제를 두어 기술 전수도 시켰다. 전문화한 반복 작업은 숙련공 배출과 더불어 생산성 향상을 이끌었다. 또 작업 규칙과 기준 설정으로 시계의 정확성도 크게 높아졌다. 한겨울 농한기의 농부도 한몫을 했다. 일거리가 생긴 건 물론이고 눈 덮인 겨울엔 집중력이 높아져 일거양득이었다.

쥐라산맥 기슭이 스위스 시계 산업 중추로 떠오른 건 이때다. 스위스 북서부의 이 산지는 프랑스와 국경지대로 주민은 프랑스어를 쓰는 가톨릭 신자. 분업화로 본궤도에 오른 시계 산업은 길드와 제네바 상인, 산간마을 제작소의 협업으로 나날이 발전했고 1886년 ‘제네바 실’(Geneva Seal·제네바 인증)까지 만들어냈다. 이건 ‘제네바 시계’라는 품질보증마크. ‘제네바시계=세계 최고’란 선언이다.

오메가 뮤지엄:
1848년 창업한 명품시계 오메가의 170년 역사를 살필 수 있는 시계박물관이다. 쥐라산맥 남쪽 호반도시 비엘(Biel)에 있다. ‘오메가’란 브랜드는 1903년부터 사용했는데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공군과 미 육군, 1969년 미항공우주국(NASA)이 공식 시계로 채택한 것만으로도 그 명성이 가늠된다. 아폴로 11호의 달착륙선 조종사 버즈 올드린이 월면을 걸을 때 이 시계를 차고 있었다.

올림픽 기록측정시계로도 무려 28차례나 선정됐는데 평창 겨울올림픽도 오메가였다. 007영화에서도 1995년 이후엔 제임스 본드의 손목시계로 줄곧 오메가가 등장한다. 박물관엔 이런 오메가의 화려한 역사가 4000여 점 시계를 통해 전개된다. 이 건물은 옛 조립 공장으로 길 건너 유리외벽 건물은 최근 옮겨간 최첨단 공장이다.

정보:
인터라켄에서 94km(자동차 73분 소요). 일·월요일 및 공휴일 쉼. 개장은 화∼금 오전 10시∼오후 6시. 무료(영어 오디오가이드 제공).

스위스 인터라켄=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스위스#융프라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