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 동안 숲에 들어가 숨어 지낸 ‘은둔자’, 그는 왜…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2일 14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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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은둔자
마이클 핀클 지음·손성화 옮김
312쪽·1만4000원·살림



“그는 모든 사람들이 정말로 자신을 ‘은둔자’라고 부르는지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말해줬다. 지역신문에서도 이따금 그를 ‘은둔자’라고 불렀다. ‘좋아하는 단어는 아니지만 이해는 합니다. 뭔가 정확해요. 은둔자는 정말이지 딱 들어맞으니까요.’ …‘나는 그 뒤로 숨을 수 있어요. 사람들의 고정관념과 가정에 부합한 척할 수 있죠. 은둔자라는 꼬리표가 좋은 점 중 하나는 이상한 행동을 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별의별 사람이 많다지만 ‘크리스토퍼 나이트’는 참 이해하기 힘든 존재다. 2013년 4월 4일, 미국 메인 주의 노스 숲 야영지에서 그는 1000여 건이 넘는 절도 혐의로 붙잡혔다. 횟수만 보면 세기의 도둑 같지만, 실은 자질구레한 먹을 거나 입을 거만 훔쳤다. 그보다 진짜 놀라운 건 나이트가 1986년 이 숲에 들어가 지금껏 혼자 살았단 점이다. 27년 동안.

세상은 낭만적으로 ‘은둔자’라 불렀지만, 그는 스스로를 “세상에 존재하기를 중단했다”고 설명했다. 딱히 이유도 없다. 풍족하진 않았어도 불우한 어린 시절도 아니었다. 가족도 직업도 있었고, 뭣보다 스무 살짜리 청년 앞엔 창창한 미래가 기다렸다. 그런데 그는 모든 걸 버리고 숲으로 떠났다. “내 행동을 설명할 수가 없어요. 떠날 때 아무런 계획이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았어요. 그냥 떠났어요.”

아무 생각이 없던 것처럼, 그 세월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냥 살았다. 물론 숲을 익히고, 훔친 책이나 잡지를 읽고, 라디오도 듣긴 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했던 일은, 홀로 삶을 이어가는 것이었다. 가장 충격적인 건 누구와도 대화하질 않았다는 대목이다. 27년 동안 우연히 지나가던 도보여행자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한번 나눈 게 전부였다. 정말 완벽한 혼자만의 삶이었다.

하지만 아름답게만 그리기엔 나이트는 꽤나 많은 ‘빚’을 타인에게 지고 있었다. 생산적인 활동이 없었던 그는, 입고 먹고 자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주위에서 훔쳤다. 물론 값비싼 건 아니었다지만, 당한 사람은 괴롭기 짝이 없다. 자신의 완벽한 고독을 위해 타인은 불편한 괴로움을 감수해야 했다는 측면에서 그는 동정 받기 어려워 보인다. 그리고 당연히 나이트는 감옥으로 향했다.

‘숲속의 은둔자’는 참 미묘한 책이다. 좋은 글과 근사한 취재가 읽는 맛을 드높이는데, 책장을 덮은 뒤엔 살짝 허망하다. 나이트는 ‘진정한 은둔자’이자 ‘좀도둑’이었다. 솔직히 이런 정의도 쓸모없는 게, 세간의 시선이나 잣대로 측정되는 인물이 아니다. 그를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는 건지 여전히 알쏭달쏭하다. 다만 한 가지. 인류는 앞으로도 끝없이 이 경계에서 번뇌하는 게 아닐까. 함께 살 것인가, 혼자 살 것인가. 그리고 그 인생의 가치는 몇 그램쯤 되는지. 어느새 훅하고 시린 가을이 밀려왔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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