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donga.com

[고미석 칼럼]‘상상의 경계’에 사로잡힌 나라
더보기

[고미석 칼럼]‘상상의 경계’에 사로잡힌 나라

고미석 논설위원 입력 2018-09-19 03:00수정 2018-09-19 09:18
뉴스듣기프린트
트랜드뉴스 보기
타인 향해 위장전입 조롱한 나… 자식 위한 위장전입 감행한 나
공직후보자 내면의 여러 정체성… 나를 알아야 남도 제대로 본다
내편네편 部族的 사고방식으로 부풀린 경계들은 공동체의 적
고미석 논설위원
“내 안에 너 있다.” 그런 대사가 TV 드라마를 타고 한때 유행한 적이 있다. 그 낯간지러운 사랑 고백을 새삼 떠올리는 것은 지금 국내 정치를 비추는 예리한 통찰의 언어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백년대계 교육정책의 수장 후보로서 오늘 인사청문회가 열리는 어느 국회의원을 둘러싼 논란 탓이다.

뛰어난 언변 덕에 10차례 당 대변인을 지냈으나 그만 자신의 말에 발목이 잡혔다. 예컨대 2007년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에 대해 “위장전입 이유가 자녀들의 교육 문제 때문이었다니 기가 막힐 뿐” “부동산 투기가 아니니 괜찮다는 것처럼 해괴한 논리가 어디 있는가”라고 한 발언도 그렇다. 정작 자신은 1996년 딸의 초등학교 입학 시점에 종교시설 주소로 위장전입을 감행한 처지였다. 10년도 지난 일이라 잊었다 할지 모르나, 독하게 몰아세운 그 공격 대상과 꼭 닮은 DNA가 똬리를 틀고 있던 셈이다. 그 이름이 ‘교육 열정’이건 ‘자식 사랑’이건 간에 매우 유사한 유형으로 보여 흥미롭다.

‘나는 하나가 아니다.’ 최근 한 현대미술 전시 제목이 갑자기 실감나는 상황이다. 타인의 위장전입을 조롱한 나, 자식을 위해 위장전입을 서슴지 않는 나. 인간 내면의 복잡성이 불편한 진실로 다가온다. 한국 독자와 친숙한 인기 작가 알랭 드 보통의 글에서 이런 대목을 접했다. 우리 내면에는 여러 사람이 있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평온한 사람과 불안한 사람, 행복한 사람과 슬픈 사람 등. 그때그때 다른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물론 내 안에 보기 싫은 부분도 있겠으나, 나를 잘 알아야 남도 제대로 본다. 그래야 우쭐한 마음도 과잉 적의도 줄어들 테니까.

알다시피 예술은 종종 시대를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한다. 7일 개막한 국제미술축제인 광주비엔날레의 주제인 ‘상상된 경계(Imagined borders)’도 그러하다. 지구촌 상황을 진맥하기 위한 화두라는데, 한국 현실에도 중요한 함의가 있다. 남북 정상회담이 또 한번 진행 중인 지금, 한반도에 그어진 물리적 경계로 인한 민족적 비극도 심란한데, 우리 내부에도 수없이 많은 상상의 경계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허구를 만들고 믿는 것은 호모 사피엔스의 독특한 능력이다. 그 상상력이 각자 선택에 따라 축복도 되고 저주도 된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적폐청산의 명분으로 도입한 신개념 인적 물갈이처럼 머릿속에서 지어낸 새 경계선으로 인해 내부 갈등의 골은 더욱더 깊어졌다.

우리만 그런 것은 아니다. 미국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상상된 경계’ 속에 갈수록 빠져드는 모습이다. 그래도 얼마 전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의 별세를 계기로 이 나라 저력을 다시금 보게 된다. 그는 첨예한 정치 투쟁이 반드시 증오로 응집될 필요가 없음을 몸소 보여준 인물로 통한다. 2016년 뉴욕타임스에는 스페인 내전에 참여한 마지막 미국인 의용군이자 공산주의를 신봉한 델머 버그를 추모한 그의 글이 실렸다. 상대의 모든 점에 동의하지 않아도 존중할 이유는 충분히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런 매케인에 대해 반대 진영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우린 달랐지만 이상은 공유했다”는 애도 성명을 낸 것도 비슷한 맥락일 터다.

정치적 이견이 상스러운 지경까지 추락하는 것이 어느덧 한국 사회의 특질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서로 허구의 경계를 부풀리는 진영 간에 희한하게 닮은 점도 많다. 집단적 오만과 뻔뻔함, 상대를 적대함으로써 스스로 합리화하는 자기기만으로 똘똘 뭉쳐 있다. ‘다양성 존중’을 외쳐도 늘 그 원칙은 ‘우리끼리만’으로 국한된다.

돈키호테가 풍차를 향해 돌진하듯 가상의 적과 싸우는 대가는 실로 엄청나다. ‘너는 나와 다르다. 그래서 틀렸다’고 상대를 배척하고, 이를 구호로 삼아 정치적 연명을 도모하면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공동체로 돌아간다. ‘20년’을 넘어 ‘50년 집권론’을 언급하는 상황이지만 나라가 거덜 나는 경우라면 그것은 집권당의 영광인가 수치인가. 아무리 편을 갈라 득 보는 게 정치라 해도 양심껏 해야 하지 않겠는가.

주요기사

남북이 갈라져 있는데 그 못지않은 경계와 장벽이 남녘땅을 조각조각 갈라놓고 있다. 물리적 경계보다 더 심각한 ‘거짓된 경계’야말로 조화로운 공동체를 해치는 주적으로 경계할 필요가 있겠다. 부족적 충성심을 강조하는 태곳적 사고방식으로 자멸을 부르는 헛된 상상들, 21세기 이 땅에서 정말로 청산해야 할 적폐 아닌가.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인사청문회#남북#상상된 경계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주요뉴스

1/3이전다음

부동산 HOT ISSUE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