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광현]또 분양 원가 공개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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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현 논설위원
김광현 논설위원
노무현 전 대통령은 비록 망하기는 했지만 장수천이란 생수사업을 해봐서 그런지 주변 인물에 비해서는 시장 원리에 대해 이해가 있었던 것 같다. 2004년 지금처럼 서울 강남 집값이 치솟자 집값 잡기 대책 가운데 하나로 ‘분양 원가 공개’가 거론됐다. 노 전 대통령은 “장사하는 것인데 10배 남는 장사도 있고 10배 밑지는 장사도 있다”며 시장 논리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자 김근태 당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대통령에게 정면으로 부딪쳤다. 이때 나온 말이 “계급장 떼고 치열하게 논쟁해보자”였다. 원가 공개 대신 분양가 상한제라는 제도로 절충돼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그 분양 원가 공개가 최근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첫 포문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열었다. 이달 1일 공공건설 원가 공개를 단행한 데 이어 민간업체와 공동으로 분양하는 아파트의 원가를 추가 공개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도 이에 뒤질세라 이달 5일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분양 원가 공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 대표는 “뛰는 집값을 잡는 데는 분양 원가 공개가 특효약”이라며 화답했다. 지금은 참여정부 때만큼도 브레이크가 없어 원가 공개는 시간문제로 보인다.

분양 원가 공개에는 최근 정부의 부동산대책의 난맥상이 그대로 집약돼 있다. 분양 원가 공개 자체가 집값을 낮추지 않는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주택 건설업자들이 아파트를 팔아 어떻게 얼마나 폭리를 취하는지 낱낱이 밝혀 가격을 낮추려는 압박이다. 건설회사를 악덕업자로 몰아 집값을 잡으려는 여론몰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본인 스스로가 ‘포퓰리즘이 어때서’라고 하는 사람이니 제쳐둔다고 하더라도 주무 장관인 김현미 장관의 발언은 상당히 심각하다.

우선 정책 간 충돌을 불러올 것이다. 당정청이 조만간 집값 잡기 종합대책을 내놓는다고 한다. 공급 확대도 주요 대책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벌써 서울 인근 경기도의 구체적인 지명이 거론되고 서울시내 그린벨트를 해제하니, 못 하니 논란이 되고 있다. 분양원가를 공개하라는 것은 민간 주택업자들의 이익을 제한하겠다는 것인데 공급 확대와는 정반대 방향이다. 이러니 부동산정책이 중구난방이란 말이 나오고 장기적으로 정책의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분양 원가 공개는 핀트가 빗나간 처방이다. 배 아픈 데 이마에 파스 붙이는 격이다. 예나 지금이나 기존 아파트 가격의 급등은 새 아파트 분양가가 높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올 3, 4월 서울 반포, 마포에서 분양가를 강력히 규제한 아파트가 분양됐으나 이후 이 일대 아파트 상한가 행진은 멈추지 않고 있다. 압구정동 고가 아파트 집값 잡는 데 용산 미군기지 터에 임대주택을 짓자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시장논리 자체가 적폐 대상이라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그래도 대한민국에 시장원리가 바닥에서 작동한다면 이런 대중영합적인 정책들로는 집값 안정은 요원하다. 급등, 조악한 대책, 잠복기, 급반등, 조악한 대책의 악순환만 계속될 뿐이다. 그게 서울 강남 집값이 10년 주기로 계단식으로 상승하며 불패신화를 이어온 주요한 원인이기도 하다. 원인 제공자는 인기에 조급한 정치인들과 그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정부 관료들이었다. 기대하기 어렵지만 조만간 나올 집값 대책에는 과거 뼈저린 경험에서 공부한 흔적이라도 묻어 있으면 좋겠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
#부동산#분양 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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