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나무 아래서]〈11〉소가 웃었다… “땅 한 평에 만 원만 하자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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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신이현 작가
신이현 작가
“얼마면 돼? 만 원?”

남의 땅에 농사를 계속할 수 없으니 이제 내 땅을 사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한국의 땅값이 무지 비싸다고 했더니 레돔이 호기롭게 평당 1만 원을 내겠다고 했다. 정착지를 구하기 위해 대한민국을 돌아다니면서 우리는 말 그대로 후덜덜해졌다. 우리가 생각한 땅값의 열 배, 스무 배는 더 줘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도 열심히 찾아보면 싸고 괜찮은 땅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

우리는 세상 물정 모르는 농부가 내놓은 눈먼 땅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깊은 산골 쪽으로 다녀보았다. 차가 뒤집어질 것처럼 가파른 산모퉁이에 농사를 짓고 있는 어르신들이 아직도 많이 있었다.

“여기 내 사과가 대한민국에서 제일이야. 서울에 높은 분들이 다 우리 사과를 대먹지. 유명해. 여기 사과 팔아서 아들 셋 대학 보내고 장가 다 보냈어. 그런데 이제는 정말 힘들다. 못해 먹겠어. 우리 마누라 좀 봐.”

할아버지가 옆에 서 있는 할머니를 가리켰다. 농사일에 삭아 내린 작은 몸의 할머니가 두려운 듯한 눈길로 우리를 보았다. ‘나는 시집와서 이곳에서 죽도록 일했답니다. 절대 아프면 안 될 무릎이 아파서 걸을 수가 없어요. 올해 이 사과밭을 못 팔면 나는 또 일해야 해요. 이제는 농사일이 무서워요. 제발 우리 밭 좀 가져가 주세요.’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그 뒤쪽으로는 몇 년째 버려 놓은 밭도 있었다. 밀림처럼 우거져 있었다.

“이 사과밭을 보면 내 가슴이 아파. 남부끄러워. 자식 중 한 놈이라도 물려받겠다면 좋겠지만… 잘해낼 수 있겠나. 그렇게 쉽게 덤빌 일이 아니야.”

아버지의 영광과 고난의 가업을 이어갈 자식은 모두 도시에 있고 그들은 땅이 아닌 돈을 원하고 있었다. 우리는 자식 대신 어르신의 노동을 넘겨받을 준비가 되었지만 돈이 모자랐다.

땅이 나왔다는 소리를 듣고 집을 나설 때면 늘 설레는 기분으로 간다. 어떤 풍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햇빛으로 물든 넓적한 돌 위에 앉아 먼 산을 볼 수 있는 곳, 꽃들 사이로 날아다니는 벌들의 윙윙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 그러나 현실은 늘 반대다. 너무 조잡하거나, 북향이거나, 고속도로 밑이거나, 너무 작거나, 너무 크거나, 너무 이상하거나, 너무 비싸거나…. 대체로 우리는 실망을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터덜터덜 발걸음을 끌면서 에잇 뭐야, 땅 구하기 이렇게 어려워서 어떻게 정착하겠어. 땅을 보고 온 날이면 미래의 방향점이 흔들린다. 과연 우리 땅에 우리 뜻대로 농사를 지을 날이 올 것인지 모르겠다.

“대기업에서 잘나가는 젊은 청년들이 사표 내고 농촌에서 미래를 봤다는 그런 종류의 이야기들 있잖아. 그래서 몇 년 만에 몇 억 원을 올리며 성공했다는 그런 애들은 다 어디에 있는 거지? 온통 유모차 밀고 다니는 할아버지 할머니밖에 없던데. 그런 이야기 진짜일까?”

내가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레돔은 벌컥 화를 낸다. 도시에서 잘나가는 놈은 농촌에서도 잘나가지만 대부분의 젊은이는 그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밭을 얻어 농사를 짓는다고 해도 편의점 알바비 정도도 못 버는 것이 현실이야. 노동비는커녕 농약비도 못 건질 걸. 그런데 농지마저 이렇게 비싸면 어떻게 하라는 거지. 농사가 이미 힘든 노동인데 돈까지 싸 짊어지고 와서 밭을 산다면, 그 놈은 정말 미친놈이지…. 어, 그러면 우리도 미친놈에 속하는 건가? 여하튼 간에 한국 농촌을 살리는 길을 내게 묻는다면 ‘한 평 1만 원 이하’ 이것밖에 없어. 그런데 어떻게? 그건 나도 모르겠군.”

한 평 1만 원 이하이라니, 전국의 땅 주인들이 뀌는 요란한 콧방귀 소리에 오늘 밤엔 잠을 이루기가 어려울 것 같다.
 
신이현 작가

※프랑스인 남편 도미니크 에어케 씨와 충북 충주에서 사과와 포도 농사를 짓고 살고 있습니다.
#농사#땅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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