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희곡과 영국 신진 작가의 공상과학(SF) 작품이 손진책 극단 미추 대표(71)와 최용훈 극단 작은신화 대표(55)의 손을 거쳐 이달 나란히 무대에 오른다. 국내 초연작을 공연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베스트 앤드 퍼스트’전에 참여한 두 연출가는 성격이 사뭇 다른 작품을 택했다.
손 연출가가 고른 남아공 출신의 세계적 작가 아톨 푸가드의 ‘돼지우리’는 탈영한 병사가 전사자로 위장해 40년간 돼지우리에서 숨어 지낸 실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영국 신인 작가 앨리스터 맥다월의 ‘X’는 명왕성으로 간 과학자들이 우주선에 고립되며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탄탄한 내공을 지닌 두 연출가의 손끝에서 태어날 ‘신상 작품’은 어떨 모습일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지난달 22일 두 사람을 만났다.
―작품의 선택 기준이 무엇이었나.
▽손진책=사회적 효용성이다. 푸가드가 평생 일관되게 밀고 나간 인권, 실존, 두려움에 관한 주제 의식이 이 작품에도 녹아 있는데, 유독 저평가됐다. 어떤 면에서 사회나 국가도 우리의 ‘돼지우리’일 수 있다. 우리의 현재와 연결되는 지점을 고민하며 골랐다.
▽최용훈=공연 시점에 우리 사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작품을 찾는 편이다. 전쟁, 국제 회담 등과 관련된 작품을 검토하다 이것으로 낙점했다. 국제 관계 속 고립, 생태문제, 무분별한 기술의 폐해 등 다양한 문제를 짚을 수 있어 매력적이었다.
―서로의 작품에 기대되는 부분이 있다면….
▽손진책=‘X’는 바라보는 시선이 크고 멀어 한국 작가들이 시야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최용훈 연출가 특유의 스타일과 만나면 강렬한 인상을 줄 것이라 믿는다. ▽최용훈=‘돼지우리’는 농익은 공연이 될 것 같다. 2인극이 드물고 또 힘든데 좋은 배우와 조화를 이뤄 깊이 있는 작품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통극의 현대화나 실험적 시도를 꾸준히 해왔다. 이번에는 어떤가.
▽손진책=내 연극정신은 마당정신이다. ‘지금 여기에서 인간다운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 마당정신이라고 본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런 문제의식이 일맥상통한다. 전통극의 현대화는 평생의 화두지만 억지로 기법이나 형식에 얽매일 생각은 없다.
▽최용훈=작가가 구조적, 극적인 실험을 해놓았다. 엉킨 시간과 기억을 퍼즐 맞추기 해야 한다. 다소 헷갈릴 수 있는데 관객에게 잘 다가갈 수 있도록 고민 중이다.
―공연장의 상업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손진책=공연장의 위상에 걸맞은 작품을 올리려는 기획이 이어져야 한다. 시류와 관계없이 장강같이 연극정신으로 밀고 나가야 한다. 생각을 싫어하는 요즘 사람들이 생각을 하게끔 만드는 게 연극의 역할이다.
▽최용훈=공감한다. 좋은 의미의 ‘정통 연극’에 대한 관심과 제작이 이어졌으면 한다. 이번에 그 첫걸음을 잘 뗄 수 있길 바란다.
‘돼지우리’ 8∼22일 서울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X’ 14∼30일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각 3만∼5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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