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건강의 적’으로 낙인 찍혀 몸값 곤두박질… 쓴맛 보는 설탕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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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先物가격 10년 만에 최저 왜?

“건강해지려면 하루에 얼마만큼 설탕을 꼭 먹어야 할까요? 들어보신 적 있나요?”

이집트 카이로에 사는 주부 마리안 마이클 씨(28·여)는 ‘설탕을 멀리하는 이유’를 묻자 이렇게 반문했다. 그는 “‘하루 권장 설탕 섭취량’이란 말은 전 세계적으로도 찾을 수 없다”며 “반대로 하루에 설탕을 너무 많이 먹으면 건강에 해롭다는 얘기는 수도 없이 많이 들었다. 내가 설탕을 끊은 이유”라고 말했다.

마이클 씨는 설탕이 자신을 뚱뚱하고, 못생기고, 늙어 보이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유럽에선 설탕에 해독(解毒)이란 뜻의 디톡스(detox)를 붙여 당분을 완전히 끊는다는 ‘설탕 디톡스’ 건강법을 시작하는 젊은 층도 상당수다. 마이클 씨 역시 이 같은 트렌드를 소개한 뉴스를 본 뒤 ‘설탕 멀리하기’를 결심했다. 상대적으로 음식에 소금과 설탕을 많이 넣는 이집트 음식 문화 탓에 설탕을 완전히 끊진 못했지만 탄산음료나 주스 대신 탄산수를 마시고, 직접 만드는 음식만큼은 설탕을 넣지 않고 있다. 나날이 뱃살이 나오고 있는 남편도 흔쾌히 설탕 멀리하기에 동의했다.

단맛을 내는 설탕이 당뇨와 비만, 암을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들이 쌓이면서 전 세계 소비자들은 ‘설탕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세계 식품회사들은 소비자들의 바뀐 입맛을 고려해 경쟁적으로 설탕 함유량을 줄이고 있고, 일부 국가는 설탕이 들어간 청량음료에 세금까지 물리고 있다. 전 세계 설탕 가격은 끝을 모르고 추락 중이다. 한때 명절 선물, 결혼식 답례품으로 인기였던 설탕 입장에서는 ‘씁쓸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8월 12일 설탕 1파운드당 선물(先物) 가격이 10.54센트를 기록하자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들은 “3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앞다퉈 보도했다. 이후 상황이 더 나빠져 8월 23일 기준 설탕 1파운드당 선물 가격이 10.12센트까지 떨어졌다. 이제는 3년이 아닌 ‘10년 만의 최저 수준’이라고 이야기해야 맞다. 지난해 1분기(1∼3월) 20센트 안팎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사실상 절반 수준으로 하락한 것이다.

소비자들의 설탕 멀리하기 문화는 커피나 음료 시장을 보면 명확히 드러난다. 전 세계 대표적인 청량음료 제조업체 코카콜라, 펩시코도 최근 ‘노 슈거(No Sugar)’ 제품에 집중하고 있다.

코카콜라는 올해 초 다이어트 콜라 신제품을 출시했다. 설탕이 첨가되지 않은 제로 콜라는 매분기 두 자릿수 성장세를 이어가며 오리지널 콜라를 선호하던 소비자의 마음을 빼앗고 있다. 펩시코도 이미 콜라의 설탕 함유량을 2006년 대비 29%까지 줄인 상태다. 펩시코는 앞으로 생산하는 자사 음료에서 설탕을 더 빼겠다고 공개적으로 약속했다.

소비자의 취향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식품회사들은 맛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설탕 함유량을 낮추는 방법을 찾느라 고심하고 있다. 유럽 최대 제당회사 쥐트주커가 이스라엘 푸드테크 기업 두마토크와 협력해 설탕의 단맛을 증폭시키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들은 이 기술을 상용화하면 맛의 차이 없이 각종 식품의 설탕 첨가를 최대 40%까지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루 얼마만큼의 설탕을 섭취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공식적인 권장사항은 찾아보기 힘들다. 반면 국가나 기관별로 차이는 있지만 하루 섭취량을 제한해야 한다는 기준은 쉽게 찾을 수 있다. 미국식품의약국(FDA)은 하루 설탕 섭취량을 50g 미만으로 제한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보다 절반 수준인 25g 이하를 제안한다. 만약 하루 설탕 50g 미만을 먹으려면 하루에 12.5 티스푼 이상을 먹으면 안 된다. 그러나 쉽지 않다. 355mL 캔콜라 하나에만 하루 권장량보다 많은 설탕 39g이 들어있는 탓이다.

음료뿐 아니라 음식에까지 ‘노 슈거(NO Sugar)’를 선언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지만 사탕수수밭은 올해 더없는 ‘풍작’이 예상된다. 전 세계 설탕 생산량 상위 5개국 모두가 올해 기록적인 생산량을 보이고 있다. 전례 없는 공급 과잉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2017∼2018년 세계 설탕 생산량은 1억8760만 t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전년도 대비 11% 늘어난 수치다.

설탕 생산국 중 올해 가장 풍작을 기록한 곳은 인도다. 인도 설탕공장협회 아비나시 베르마 회장은 “올해 약 3200만 t 안팎의 생산량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종전 기록인 2800만 t(2006∼2007년)을 훨씬 뛰어넘는 수치”라고 말했다.

생산은 늘었지만 인도 설탕회사들은 떨어진 시장 가격 탓에 울상을 짓고 있다. 사탕수수를 수확한 인부들에게 줄 돈이 없어서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기업들이 설탕 1kg을 팔 때마다 약 7.5루피(약 118원) 안팎을 손해보고 있다고 한다. 생산원가도 건지지 못하고 정부보조금만 기다리는 신세다. 태국 파키스탄 중국 등 다른 주요 생산국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다.

시장조사업체들은 올해 사용되지 못하고 창고에 쌓이게 될 설탕이 약 1900만 t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 유럽연합(EU)의 지난해 총생산량(1831만 t)을 넘는 수치다. 국제설탕기구(ISO)는 “올해뿐 아니라 내년에도 전체 설탕 생산량은 소폭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남아도는 설탕을 처리하는 데만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란 뜻이다.

남아도는 설탕보다 비만 및 당뇨를 앓는 국민 수를 낮추는 것이 더 중요한 각국 정부는 설탕세를 도입하고 있다.

아시아권에서 당뇨병 환자가 가장 많은 국가, 말레이시아는 탄산음료에 세금을 매기는 ‘소다세(soda tax)’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총리는 8월 27일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이 설탕을 너무 많이 섭취하는 까닭에 말레이시아의 당뇨병 유병률은 매우 높은 편”이라면서 설탕 소비를 줄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 보건부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전체 인구(3200만 명) 중 360만 명(11%)이 당뇨병 진단을 받았다. 아직 검진을 받지 않아 발병 사실을 모르는 경우를 고려한다면 실제 환자 수는 더 많을 가능성이 높다.

영국은 4월부터 음료 100mL당 설탕 첨가물이 5∼8g일 경우 L당 0.18파운드(약 257원)의 세금을 물리고 있다. 유럽에선 핀란드 프랑스 벨기에 등 10여 개국이 설탕세를 도입했다. 아시아권에서는 태국 필리핀 라오스 등이 시행 중이다. 베트남은 내년부터 사치품에 부과해 온 특별소비세(SCT)를 설탕 음료에도 부과하기로 했다.

당분간 설탕 가격이 더 하락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소비자들은 점점 더 설탕을 멀리하겠지만 생산량은 꾸준히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시장 흐름이 반전될 계기가 보이지 않는다”며 파운드당 설탕 선물가격이 8센트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달고 달았던 설탕의 인기는 확실히 한풀 꺾였다.

카이로=서동일 특파원 d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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