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격황제’의 꿈 망친 허술한 운영… 진종오, 10m 공기권총 5위 충격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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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사격 중 점수 표시 안됐지만… 심판, 충분한 시간 안주고 강행
결국 평정심 잃고 ‘유종의 미’ 실패

21일 인도네시아 팔렘방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 남자 10m 공기권총 결선. 본선을 2위로 통과한 ‘권총 황제’ 진종오(39·KT·사진)는 시사(시험 사격)를 할 때 표적 중앙에 탄착군을 형성하는 등 최고의 컨디션을 자랑했다. 하지만 시사의 마지막 발을 쐈을 때부터 불운이 시작됐다. 선수 앞에 설치된 전자표적 모니터에 점수가 나오지 않은 것이다.

장내 아나운서가 출전 선수를 소개하며 경기의 시작을 알렸지만 진종오는 두 손으로 엑스(X) 표시를 만들며 경기 중단을 요청했다. 그러고는 심판에게 자신의 모니터를 점검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소속팀 KT 관계자에 따르면 심판은 “우리가 사용하는 모니터(전체 선수의 점수가 나오는 모니터)에는 점수가 표기됐다”며 거부했다. 그 대신 모니터 점검을 위해 시사를 한 발만 더 하도록 했다. 대한사격연맹 관계자는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통상 국제사격연맹(ISSF)의 규정에 따라 경기를 중단하고 장비를 고친 뒤 선수가 만족할 때까지 무제한 시사를 하도록 해야 한다. 미숙한 대회 운영으로 경기 초반부터 진종오가 심리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사격 대표팀 관계자도 “심판이 경기를 중단하지 않은 것과 추가 시사를 한 발만 하도록 한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기가 시작되자 진종오는 평소답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가슴에 손을 댄 뒤 크게 한숨을 쉬고 사격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내 그는 들어올렸던 총을 내려놓았다. 표정이 잔뜩 일그러진 그는 다른 선수들이 두 번째 사격을 할 때가 돼서야 첫 사격을 했다. 경기 내내 기복이 심했던 그는 결국 8명의 선수 중 5위(178.4점)로 경기를 마쳤다.

사격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3연패(50m 권총)를 달성하는 등 국제대회에서 빠짐없이 개인전 우승을 차지했던 진종오지만 아시아경기에서는 개인전 금메달 획득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아시아경기 단체전에선 금메달 3개를 획득했다. 주 종목인 50m 권총이 폐지돼 진종오는 이번 대회 10m 공기권총에만 출전했다. “아시아경기 개인전 금메달이 없는 걸 두고 징크스라고 부른다면 이번 아시아경기에서 (징크스를) 깨버리겠다. 이번이 내겐 마지막 아시아경기가 될 것 같다”고 말해온 진종오였다.

충격을 받은 진종오는 인터뷰 없이 공동취재구역을 빠져나갔다. KT 관계자는 “진종오가 미숙한 경기 운영 탓에 심리적 리듬이 깨진 것에 많이 억울해하고 있다. 눈물까지 보였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 대회는 시설 미비와 허술한 경기 운영으로 혼란을 빚고 있다. 19일 남자 수영에서는 시상식 때 중국(금, 동)과 일본(은) 국기가 떨어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같은 날 남자 배영 100m 시상식에서는 한국 이주호가 동메달을 따 시상대에 태극기가 걸렸으나 좌우가 바뀐 채였다. 20일 펜싱 여자 플뢰레 개인전 예선이 진행되던 자카르타 컨벤션센터에서는 경기용 조명시설이 모두 꺼져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사격#진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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