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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아이들을 버렸다… “성폭력 피해학생 오면 골치 아파” 전학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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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아이들을 버렸다… “성폭력 피해학생 오면 골치 아파” 전학 거부

이지훈 기자 , 한유주 인턴기자 연세대 독어독문학과 졸업입력 2018-08-21 03:00수정 2018-08-21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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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 고교생 의무전학 예외… 보호제도 허점

“선생님, 저 언제부터 학교에 가요?”


올해 5월 성폭력 피해 청소년 쉼터에 들어온 소영(가명·16) 양은 두 달이 넘도록 ‘강제 결석’ 중이다. 이전처럼 학교에서 친구들과 지내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학교들은 '성폭력 피해 청소년'인 소영이를 받아주지 않았다.

5년 전 아빠의 '몹쓸 짓'이 시작됐다. 학교에서 시행한 심리상담에서 소영이가 ‘자살위험군’으로 분류되면서 피해 사실이 밝혀졌다. 학교는 아빠를 경찰에 신고했고 소영이는 쉼터로 보내졌다.

가족들이 학교로 찾아올까 봐 소영이는 학교를 옮기고 싶었다. 하지만 흔쾌히 받아주는 학교가 없었다. 쉼터 인근 5개 특성화고에서는 “판결문이 있느냐” “학생 정원이 다 찼다”며 전학을 거부했다.

3개월 만에 겨우 소영이를 받아주겠다는 학교가 나왔다. 쉼터에서 ‘교육청에 민원을 넣겠다’며 집요하게 매달린 결과다. 소영이는 다음 주부터 새 학교로 등교할 예정이다.

성폭력을 당한 청소년 가운데 상당수가 전학을 갈 학교를 찾지 못해 이중고를 겪고 있다. 특히 고교생이 심각하다. 성폭력 피해를 당한 초중학생은 ‘의무 전학’이 가능하지만 성폭력 피해 고교생은 학교장 추천 및 재량으로 전학이 이뤄진다. 문제는 성폭력 피해 청소년을 ‘문제아’로 인식해 전학을 받지 않으려는 고교가 많다는 점이다. 학교가 떠밀어서 원치 않는 전학을 하는 경우도 있다. 전학이 늦어져 짧게는 한 달, 길게는 1년 가까이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학생이 생기고 있다.

11세 때부터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박모 양(18)은 피해 사실이 밝혀진 지 2주 만인 올해 4월 사실상 ‘강제 전학’을 했다. 박 양은 전학을 할 생각이 없었지만 학교 측은 “아이에게 새로운 환경이 필요하지 않겠냐”며 전학을 권유했고 결국 학교를 옮겼다.

쉼터 관계자는 “심리상담 검사에서 박 양이 자살위험군으로 분류되자 부담을 느껴 다른 학교로 보내 버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성화고와 실업계고의 상황은 일반고보다 더 열악하다. 일반고는 학교장 추천을 받은 뒤 교육감 권한으로 전학할 학교를 배정하는 반면 특성화고와 실업계고는 전학 과정 전체가 ‘학교장 재량’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경북 지역의 한 실업계고에 다니던 김모 양(18)은 이웃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전학하려 했지만 인근 실업계고 두 곳에서 모두 거부당했다. “가해자가 학교를 찾아와서 난동을 부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 양은 끝내 전학할 학교를 찾지 못해 대입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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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성폭력 피해 청소년의 전학을 거부할 수 있는 이유는 성폭력피해자보호법에 의무 전학 조항이 없어서다. 가정폭력 피해 학생의 경우 초중고교생 모두 의무 전학 대상이다. 성폭력 피해 아동(초중학생)은 경찰 수사 자료 등 최소한의 피해 사실만 입증되면 각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전학을 받게 돼 있다. 그런데 성폭력 피해 청소년(고교생)에 대해선 강제 조항이 없다. 대전의 쉼터 관계자는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는 이유로 ‘학교 다닐 권리’를 박탈당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법 개정 움직임도 없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학교장 추천 과정을 교육청에서 확인하긴 어렵다”며 “민원이 많지 않아 법 개정 추진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한유주 인턴기자 연세대 독어독문학과 졸업
#성폭력#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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