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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건국론은 남한 정통성 강조 위해 이승만이 주도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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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건국론은 남한 정통성 강조 위해 이승만이 주도한 것”

조종엽 기자 입력 2018-08-20 03:00수정 2018-08-2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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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순 창원대 교수 논문서 주장
‘건립’ ‘수립’ 등의 말로도 표현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건국’ 시점은 언제일까. 도진순 교수는 “‘1919년 건국론’은 이승만 대통령이 남(南)이 북을 통일하는 미래를 열어가고자 주도해 창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경축 행사. 동아일보DB

그동안 건국 시점 관련 논쟁이 역사적 사실과 이를 기념하는 일조차 구별하지 못한 채 정치적 논리에 얽매여 왜곡돼 왔다는 연구가 나왔다. 1948년 건국은 역사적 ‘사실’이며 ‘1919년 건국론’은 오히려 이승만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의 중앙정부’라고 강조하기 위해 만든 기억과 기념의 방식이라는 주장이다.

도진순 창원대 사학과 교수(60·사진)는 22일 한국근현대사학회 학술대회 ‘독립운동, 그 기록과 기념의 역사’에서 발표할 예정인 ‘역사적 시간과 기억의 방식: 건국 원년과 연호 문제의 관점 전환을 위하여’에서 이같이 밝혔다. 도 교수는 주해본과 정본 백범일지를 편찬한 백범 김구 연구의 권위자다.

도 교수는 “‘1919년 건국론’은 긴 논쟁에서 오해가 생긴 것처럼 김구와 임시정부가 주도한 게 결코 아니다”라며 “이 전 대통령이야말로 이러한 기억의 창시자이자 주도자였다”고 밝혔다. 그는 전화 통화에서 “이 글로 지금껏 벌어진 논쟁이 끝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1919년 건국론, 반공 위해 제기”

“이 국회에서 건설되는 정부는 즉 기미년에 서울에서 수립된 민국(民國) 임시정부의 계승이니, 이날이 29년 만에 민국의 부활일임을 우리는 이에 공포하며, 민국 연호(年號)는 기미년에서 기산(起算)할 것이오….”

이 전 대통령은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의 의장으로서 발표한 ‘개회 식사(式辭)’에서 1919년 건국을 분명히 했다. 도 교수는 “이처럼 ‘1919년 대한민국 건국, 1948년 재건’이 기본 기조”라며 “임시정부 부활을 강조한 건 대한민국이 ‘완벽하게 한국 전체를 대표하는 중앙정부’라고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조선노동당과 인민위원회가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에 정통성이 있다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1948년 7월 24일 이승만 대통령 취임사, 8월 15일 정부수립 기념사, 이승만이 주도해 삽입한 제헌헌법 전문(前文) 등에서도 1919년 건국론이 줄곧 유지됐다. 도 교수는 “이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 건국 원년을 1919년으로 끌어올리려 한 건 분단된 한반도가 남(南)에 의해 통일돼야 한다는 욕망의 표현이었다”고 말했다.

그의 1919년 건국론에는 김구 선생과 임정 요인들의 참여 여부와 관계없이 대한민국이 임정의 법통을 계승했다는 취지도 담겨 있다. “기미년 3월 1일을 기하여… 4월 16일 13도 대표가 경성에 비밀히 모여 국민대회를 열고 임시정부를 조직하여 전문(全文)을 인쇄하여 세계에 발포하니 이로써 임시정부는 귀한 피로 만들어진 것이다.”(1945년 11월 28일 이 전 대통령의 임정 요인 귀국 환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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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교수는 “이 전 대통령은 1919년 3·1운동은 그가 정부의 영수인 ‘집정관 총재’로 추대된 한성임시정부로 귀결됐다고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 “반쪽 기억으로 미래 감당 못해”

도 교수는 역사적 사실은 ‘1948년 건국’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1919년을 건국으로 보면) 신채호 등 임시정부에 반대했던 독립운동가는 어떻게 되며 1945년까지 일제 국적을 가지고 한반도에서 신음하던 2000만∼3000만 동포는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1948년 건국’을 주장하면 ‘친일부역의 은폐’를 위한 것이란 기계적 도식은 지나치게 단순하고 비약이 심하다는 게 도 교수의 판단이다.

역사적으로 김구와 임시정부는 ‘임정 법통론’을 통한 건국을 도모했지만 실패했고 이승만은 5·10선거를 통한 대한민국의 건국을 주도했다. 도 교수는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기념하자는 건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기억’의 문제”라며 “‘1919년 건국’이 ‘사실’이라며 반대 의견을 제기한 게 적잖은 혼란을 야기했다”고 덧붙였다.

오랫동안 ‘1919년 건국론’을 이끌어온 한시준 단국대 교수는 “(1919년 건국론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존재를 인정하면 민족의 정통성이 대한민국에 있다는 것,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괴뢰국이라는 것이 명확히 드러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광복절 경축사에서 지난해와 달리 “2019년 건국 100주년을 맞는다”는 표현을 하지 않은 건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 북한과의 관계를 염두에 둔 포석으로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북한은 임시정부를 “정치적 야욕을 채워 보려는 투기 행위의 산물” 등으로 비난해 왔다.

도 교수는 “건국 연도 문제는 남북과 좌우가 민족운동사를 공동으로 기억, 기념하는 과제와 연결돼 있다”며 “친일과 반일, 우익과 좌익, 남과 북의 대립 구도의 ‘반쪽’ 역사 기억 방식으로는 향후 역사적 변화를 감당하기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1919년 건국론#이승만#임정 법통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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