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 막아서는 中의 ‘3不’… “돌파구 마련 ‘3新’으로 무장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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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제조업 골든타임을 지켜라]새로운 성장 모멘텀 찾으려면

“결국 또 희망고문이었네요.”

지난달 중국 공업화신식부가 친환경차 보조금 지급 대상 명단을 발표하자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당초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를 탑재한 벤츠가 보조금을 받을 수 있을 거란 전망이 많았지만 수백 종의 명단 속에 한국 기업 배터리를 적용한 친환경차는 없었다.

배터리업계 한 관계자는 “번번이 탈락하니 이제 한국 주요 업체들은 보조금 신청도 하지 않고 보조금 정책이 폐지되는 2020년만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19일 본보가 한국 제조업의 기둥 역할을 해 온 주력 8대 산업의 현 위치를 심층 조사한 결과, 각각 처한 상황은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중국 정부의 자국 산업 육성을 위한 ‘불공정한 지원’을 가장 큰 위협으로 꼽았다. 불공정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업체들의 ‘불연속적인 성장’, 그리고 그로 인한 ‘시장의 불확실성’ 등 중국의 3불(不)이 업종을 불문하고 한국 제조업을 억누르는 부담이었다.

○ 한국 제조업 압박하는 중국의 3불(不)
중국 정부의 지원은 크게 자국 업체에 대한 대규모 자금 투자와 외국 투자 기업에 대한 정책적 견제로 이뤄진다. 반도체 산업만 해도 중국 정부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및 사모투자펀드를 통해 218억 달러(약 24조5250억 원) 규모의 반도체 펀드를 조성해 지난해까지 70개 프로젝트에 투자했다. 최근에는 국영 투자 기업을 앞세워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474억 달러(약 53조3250억 원) 규모의 펀드 조성을 추가로 준비 중이다.

반면 외국 업체들에 대해서는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 같은 기관이 나서 노골적으로 견제하고 있다. 중국 국가시장감독총국 산하 반독점국 조사관들은 5월 말 중국 현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사무실을 예고 없이 찾아 가격 담합과 ‘끼워 팔기’ 혐의로 현장 조사를 벌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 디스플레이도 BOE 등 중국 현지 업체들이 정부 보조금으로 급격하게 생산설비를 늘리며 ‘물량 공세’를 펼치기 시작하자 글로벌 시장 가격이 휘청거리는 수준이다.

급격하게 성장한 ‘플레이어’가 워낙 많다보니 치열한 내부 경쟁을 통한 기술 혁신도 가능해졌다. 김태년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상무는 “중국엔 이미 전기차 생산업체만 약 500개가 넘는다”며 “미래차 분야에 신생 기업 수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고 했다. 스마트폰도 한국에는 제조사가 삼성전자와 LG전자뿐이지만 중국은 화웨이를 필두로 샤오미, 오포, 비보, 원플러스 등 10여 개 대형 제조사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해외 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해 기술을 흡수하며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한국 업체들을 쫓아오고 있는 점도 위협이다. 2010년 스웨덴 볼보를 인수한 중국 지리자동차는 올해 초 10조 원을 들여 메르세데스벤츠의 모기업인 다임러의 1대 주주(9.69%)가 됐다.

○ 신기술 신시장 신인력, 한국의 3신(新)

중국이 ‘3불(不)’로 위협하고 있다면 한국도 차세대 신기술과 새로운 시장, 새로운 인력, 이른바 ‘3신(新)’으로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고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확보해야 한다는 게 업종별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었다.

전우식 한국철강협회 전무이사는 “중국 바오우(寶武)강철은 독일 지멘스와 손잡고 스마트 제조모델을 개발하고 새로운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만들고 있다”며 “우리도 고부가가치 제품에 대한 끊임없는 기술개발로 경쟁우위 전략을 취해야 한다”고 했다.

중국이 아직 점령하지 못한 아프리카 등 신흥시장 중심으로 새로운 시장을 선점해 수출처를 다변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이를 위한 전제조건으로는 무엇보다 인력 수급이 시급하다고 주요 업종 전문가는 입을 모았다.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 산업이 중국의 물량 공세에 대응하기란 쉽지 않다”며 “각 산업에서 고부가가치 영역을 찾아 자본을 집중적으로 투입할 수 있도록 정부가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같은 맥락에서 정부가 지속 가능한 중장기 산업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인프라 및 R&D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설비투자가 적기에 이뤄질 수 있도록 부지 확보 및 공장 건축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비롯해 4차 산업혁명을 앞두고 산업 간 융·복합을 일으킬 수 있는 산업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양평섭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국경제실장은 “중국 정부는 일단 뭐든 해보게 한 뒤 문제가 생기면 규제를 만든다”며 “한국 정부도 기업들이 개방적인 태도로 새로운 산업에 투자할 수 있도록 규제 완화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김지현 jhk85@donga.com·신무경·김재희 기자
#새로운 성장 모멘텀#돌파구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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