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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공작’이 다루지 않은 흑금성·리호남 행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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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공작’이 다루지 않은 흑금성·리호남 행각

송홍근 기자 입력 2018-08-19 11:14수정 2018-08-20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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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속 ‘리명운’(이성민 분)은 北 공작원 리호남
● 리호남, 안희정·박삼구 등 내로라하는 남측 인사 접촉
● 리철-리철운-강호진 이름 바꾸며 YS·DJ·盧·MB 정부 상대 공작
● “리호남은 정찰총국 소속 공작원·흑금성은 정찰총국 연계 간첩”
● 흑금성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6년 복역
● 장성택 숙청 후 리호남도 안테나에서 사라져
● 흑금성이 리호남을 포섭했나, 리호남이 흑금성을 포섭했나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흑금성-최고 공작 목표 김정일까지 도달… 리호남-노무현 옆구리까지 접근

영화 ‘공작’은 첩보영화다. 실화를 바탕으로 서스펜스와 미스터리가 이어진다. 스타일리시하고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다. ‘흑금성’ 역을 맡은 황정민과 ‘리명운’ 역을 맡은 이성민은 차가우면서도 뜨거운 호흡을 몸이 아닌 말로 전달한다. 총소리 한 번 울리지 않으나 말은 총보다 강력하게 긴장을 일으킨다. 8월 13일 개봉 6일 만에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흑금성’은 공작원 박채서(64) 씨의 암호명이다. 1990년대 한반도를 뒤흔든 한국 스파이다. 2000년대에도 남북 경계선상에서 활약했다. ‘신동아’ 2002년 11월호가 보도한 ‘최초공개 : 공작원 흑금성! 北보위부 침투, 김정일 만나다’ 제하 기사는 지금 다시 읽어도 흥미롭다. 그때나 지금이나 신동아는 ●을 이용해 요지를 정리하는 것으로 기사를 시작한다.

●흑금성, 고정간첩 속이기 위해 신용불량자로 위장 / ●박기영 씨 옆집으로 이사와 자연스럽게 동업 시작 / ●北 보위부장 흑금성에게 “인공항문 좀 구해주시오” 부탁 / ●北 조사부, 흑금성에게 “100만 달러 줄 테니 함께 일하자” 제의 / ●두부모처럼 쌓은 돈다발 김포공항 검색대 무사 통과 / ●YS, “아자의 대북사업 무조건 성공시켜라” 지시 / ●흑금성, 북한 대표 접촉한 정치인 자료 안기부에 전달 / ●DJ 낙선 위해 아말렉 공작·오대산 공작 벌인 권영해

남북을 뒤흔든 두 스파이


극장에서 ‘공작’을 본 독자라면 2002년 11월호 ‘신동아’ 기사와 영화의 장면이 하나씩 겹칠 것이다. ‘공작’은 한국 정보기관의 창이 북한 국가안전보위성의 방패를 뚫고 ‘김정일’이라는 정점의 공작 목표까지 도달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흑금성이 열차를 타고 평양에서 탈출하는 장면을 빼놓으면 큰 줄거리는 사실에서 벗어난 게 거의 없다. 물론 디테일은 대부분 허구다.

영화를 보면서 ‘흑금성’보다 ‘리명운’에 더 몰입했다. 이성민이 연기한 리명운은 북한 대외경제위원회 처장으로 나온다.

리명운의 실제 인물은 북한 대남 공작원이면서 경제 일꾼인 리호남이다. 기자는 2006년 리호남과 노무현 대통령 최측근이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비밀리에 접촉한 사실을 최초 보도했다. 모든 일간지가 받아쓴, 그 나름대로 큰 특종이었다. 그 후 남북의 경계선상에서 일어난 일을 오랫동안 취재해오면서 시시때때로 리호남이 안테나에 포착됐다.

안희정-리호남 접촉 때만 해도 리호남을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대경추) 참사’로 일하는 경제 일꾼으로만 알았다. 1990년대 흑금성의 카운터파트일 때 사용한 이름이 ‘리철’이기에 리호남과 리철을 다른 인물로 여긴 것이다. 리호남은 ‘리철운’ ‘리철’ ‘강호진’ 등 여러 이름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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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호남은 ‘처장’ ‘심의처장’ ‘참사’ 등 직위도 그때그때 달랐으며 ‘대경추’ ‘무역성’ ‘민경련’ ‘민화협’ 등 소속도 제멋대로였다. 북한 대남사업과 관련해 ‘리호남’이란 이름을 사용한 사람이 두 명인 터라 더 헷갈린다. 통일전선부 산하 삼천리총공사에서 일한 리호남은 흑금성의 파트너인 리호남과 다른 사람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리호남을 만난 사람은 리철을 모르고 리철을 만난 사람은 강호진을 모른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까지 남북을 요동치게 한 사건마다 ‘리철’ ‘리호남’ ‘리철운’ ‘강호진’이 등장한다. 그중 본명은 리철이다. ‘리호남’으로 활동한 기간이 가장 길다. 1953년생이거나 1954년생이다. 리호남은 김일성대를 졸업한 엘리트로 1990년대 중반 베이징에 모습을 드러냈다.

리호남은 김일성대 상급교원으로 일하면서 경제학부 정치경제학과에서 경제학을 가르쳤다. 조철준 전 북한 정무원(현재 명칭은 내각) 건설부장(장관)의 아들로 1994년 망명해 한국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조명철 전 의원은 김일성대 박사원에서 리호남과 동문수학했다. 조명철은 리호남을 이렇게 기억한다.

“리철은 함경남도 책임비서를 지낸 리길송의 사위다. 1980년대 후반 김일성대 교수(상급교원)로도 함께 일했다. 성격이 호방하고 활달하다. 두뇌 회전도 빠르다. 교수로 일한 지 몇 년 안 돼 대외경제 일을 맡은 합영총국으로 옮겨갔다.”

북한의 심장에 침투하라!


흑금성 박채서(왼쪽) 씨가 1996년 평양을 방문해 북한 ‘유도 영웅’ 계순희 씨와 기념 촬영한 사진. [동아DB]
리호남이 남북을 가로지르는 굵직한 사건에 주연 혹은 조연으로 등장할 때마다 곁에 서 있던 남자가 흑금성이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1995년이다.

흑금성은 청주고를 졸업하고 육군3사관학교를 14기로 졸업했다. 소령 진급 후 육군대학에 들어가 3등으로 과정을 마쳤다. 2년제 단기사관학교를 나왔으나 군 생활을 하며 정규 대학을 졸업했고 석사학위도 받았다. 1954년생.

흑금성은 1991년부터 국군정보사령부 한미합동정보대 902정보대 A-23팀장으로 일했다. A-23팀은 미국 중앙정보부(CIA)와 공조해 대북 정보를 수집한 부대다. 흑금성은 1차 중령 진급에서 탈락한 후 1993년 소령으로 전역했다.

국군 감찰부서는 흑금성을 돈거래가 불투명하고 불평 많은 사람으로 지목했다. 능력을 인정받아 요직에서 첩보 활동을 하던 장교가 기피 인물로 군복을 벗은 것이다. 흑금성은 군을 뛰쳐나온 불만이 가득한 전직 장교로 보여야 했다. 안기부로 소속을 옮겨 북한에 침투하는 공작에 나서야 했기 때문이다.

흑금성은 북측 정보기관에 포섭돼 평양에 침투하는 이중스파이 공작을 수행했다. 흑금성은 안기부의 서기관급 대북공작원으로서 경제난이라는 약점을 파고들어 북한의 외화벌이 일꾼과 공작원에게 접근했다. 대북 사업에 열의가 있는 기업가와 북한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공작이 시작됐다. 북한에 선을 구축해 정보를 획득하는 게 초기 목표였다.

안기부의 인가를 받고 공식적으로 공작이 시작된 때는 1995년이다. 흑금성은 남북경협을 알선하는 대북사업가로 위장해 김영수 국가안전보위부(현재 명칭은 국가안전보위성) 반탐과장과 만나는 등 북한 정보기관으로도 선을 뚫었다.

흑금성은 광고회사 ㈜아자커뮤니케이션에 지분을 투자해 전무 직함을 갖는다. 북한이 대북사업가로 위장한 흑금성의 카운터파트로 내세운 사람이 리호남이다. 흑금성은 리호남과 북한 명승지에서 한국 광고를 촬영하는 사업을 논의했으며 ㈜아자커뮤니케이션은 금강산총회사와 평양, 백두산, 금강산, 묘향산에서 광고를 촬영하는 계약을 5년 독점으로 체결했다. 김정일이 보유한 문화재를 한국에 팔아달라는 리호남의 역제안을 받으면서 공작이 제 궤도에 올랐다.

리호남의 공작 활동은 흑금성보다 광범위했다. 리호남은 1990년대 후반 안기부와 여권(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신한국당·한나라당) 인사들이 북한을 끌어들여 총선과 대선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북풍’, 북한에 판문점 총격을 요청했다는 ‘총풍’ 사건 때 최전선에 서 있었다.(*총풍 사건과 관련해서는 “공직자 등이 관여한 조직적 총격 요청은 없었다”는 게 대법원 확정 판결이다.)

리호남은 보수정권 진보정권 보수정당 진보정당을 가리지 않고 한국 정치인에게 접근했으며 4개 정부(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를 상대로 공작을 벌였다. 대기업 오너를 직접 만나 비즈니스를 논의하기도 했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꺾은 후 논란이 된 북풍(北風) 사건에 관여할 때 이름은 ‘리철’이다. 정재문 신한국당 의원이 안병수(본명은 안경호다. 대남사업을 할 때는 가명을 썼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을 만날 때 리호남이 동석했다. 김병식 북한 부주석의 편지를 한국으로 전달하는 과정에도 관여했다. 북풍은 안기부의 대북 공작과 북한의 대남 공작이 결합한 정치공작 사건이다.

‘총풍’ ‘북풍’ 때 ‘리철’이 리호남

흑금성이 공작에 활용한 ㈜아자커뮤니케이션은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 광고를 북한에서 촬영하려고 했다. 이 과정에서 기업인들이 앞다퉈 베이징으로 달려가 리호남을 만났다. 이필곤 당시 중국삼성 회장, 박철원 당시 삼성물산 부사장, 한행수 당시 삼성중공업 부사장 등이 ‘리철’, 그러니까 리호남을 만났다.

리호남이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희정 전 지사를 만난 것은 북한 공작원이 한국 대통령 옆구리까지 다가온 격이다. 물론 안 전 지사는 리호남이 공작원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남북 정상회담으로 가는 길을 열고자 리호남을 만났다. 리호남을 만난 노무현 정권 인사들은 자신들이 만난 리호남이 1997년 북풍 공작에 관여한 리철과 동일인임을 알지 못했다.

리호남은 안희정 전 지사를 만나기 이전까지는 ‘리철운’이라는 가명도 썼다. 1세대 대북사업가 중 한 명인 장석중 씨가 1998년 1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방북을 타진하고자 베이징에 갔을 때 카운터파트로 나온 ‘리철운’이 리호남이다.

리호남은 2007년 10월 3일 평양에서 열린 남북경제인 간담회 때는 ‘내각 참사’ 직함으로 참석했다.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구본무 LG 회장, 최태원 SK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이구택 포스코 회장,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이상 당시 직함 기준) 등이 남측 대기업 대표로 참가한 행사다. 이때 사용한 이름은 리호남이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2007년 11월 23일 베이징으로 날아가 리호남을 만났다. 북한 공작원이 한국의 내로라하는 대기업 총수와 접선한 것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북한 민영항공총국 앞으로 보낸 의향서엔 박삼구 회장 서명이 적혀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항공, 발전(發電) 분야에서 대북 사업을 하려고 했다.

2007년 11월 15일 도은대 당시 대우건설 전무도 베이징에서 리호남을 만났다. 대우건설은 당시 금호아시아나그룹 계열사였다. 대우건설은 서해안에 조력발전소를 짓는 문제를 리호남과 협의했다.

리호남, MB 측근에게도 접근


리호남은 2007년 대선 전후로 한나라당에도 접근했다. 리호남을 만난 인사가 여럿이다. 2007년 10월 북한을 방문한 한나라당 인사는 리호남에게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남북관계가 더 잘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리호남은 ‘이명박 청와대’를 상대로도 공작을 벌였다. 흑금성이 아닌 다른 대북사업가를 앞세워 이명박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메시지팀장이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2차관에게 선을 댔다.

리호남이 만난 한국 인사들은 이렇듯 쟁쟁하다. 리호남은 어떻게 대기업 오너를 베이징으로 불러내고 정치권 인사들과 접선했을까.

시곗바늘을 다시 1997년으로 되돌려보자. 흑금성은 ‘북풍’이 벌어지던 와중에 야당이던 새정치국민회의에도 선을 댔다. 정동영, 천용택 의원을 만났다. 안기부가 진행하던 김대중 후보 낙선을 위한 북풍 공작을 야당에 귀띔해준 것이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북풍 사건이 마무리되는 단계에서 흑금성은 정권 교체에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았다.

영화 ‘공작’에서는 1997년 대선 이후 안기부가 북풍 사건을 무마하고자 흑금성을 공개한 것으로 나온다. 실제 있었던 일은 더 복잡하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후 북풍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다. 안기부 해외조사실장이던 이대성 씨가 “안기부를 이 잡듯 뒤지면 대북 활동이 와해된다”면서 정대철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를 찾아가 북한 관련 공작 내용이 담긴 문건(이른바 ‘이대성 파일’)을 건넨다. 이 문건이 언론에 유출돼 공개됐으며 그 안에는 흑금성과 ‘리철’의 활동 내용도 담겨 있었다. ‘이대성 파일’은 안기부가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를 낙선시키고자 진행한 아말렉 공작을 숨기고 수사를 막고자 기존 공작 문건을 재구성해 만든 것이다.

흑금성에게 찾아온 시련
가수 이효리(오른쪽) 씨와 북한 무용수 조명애 씨가 2005년 9월 12일 중국 상하이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길거리를 구경하고 있다. [동아DB]

리호남은 ‘리철’이 언급된 ‘이대성 파일’이 공개된 후에도 무탈했다. 중앙검찰소장으로도 일한 것으로 알려진 장인의 도움으로 구명됐다는 설이 있다. ‘이대성 파일’ 공개 이후부터 리호남은 ‘리철’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다.

리철이 리호남으로 변신할 즈음 흑금성도 국정원을 나와 대북사업가의 길을 걷는다. 2005년 한국 가수 이효리와 북한 무용수 조명애가 함께 촬영한 삼성전자 휴대전화 광고 촬영이 흑금성-리호남 라인이 성사시킨 대표적 사업이다. KBS도 흑금성-리호남 라인을 통해 북한과 방송 교류를 했다.

리호남은 장성택 숙청 이후 동선이 포착되지 않는다. 흑금성은 리호남을 거쳐 장성택으로 이어지는 라인을 통해 대북 사업을 중개했다. 흑금성은 “2000년부터 베이징 근교에서 장성택과 수차례 만나 속 깊은 대화를 했다”고 7월 25일 출간된 논픽션 ‘공작’을 통해 밝혔다. ‘공작’은 흑금성이 대학노트 4권에 눌러쓴 수기를 바탕으로 현직 언론인 김당 씨가 서술한 논픽션이다. 이 대학노트 4권은 영화 ‘공작’의 원작이기도 하다.

2008년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서 흑금성에게 시련이 찾아온다. 국정원은 영장을 발부받아 이해찬 국무총리 시절 총리실에서 근무한 A씨 등을 감청하면서 흑금성을 압박했다. 검찰은 리호남과 접촉한 정치권 인사들을 내사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리호남은 정찰총국 소속 공작원, 흑금성은 정찰총국 연계 간첩”이라고 봤다.

검찰은 2010년 7월 20일 국가보안법 위반(간첩 등) 혐의로 흑금성을 기소했다. 흑금성이 현역 육군 소장 K씨로부터 입수한 군사기밀을 북한에 넘겨줬다는 것이다. K씨는 흑금성에게 ‘작전계획 5027-04’의 일부 내용을 알려주고 다수의 군사교범을 제공한 혐의(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등)로 기소됐다.

검찰은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공소장에서 ‘북한 작전부(현 정찰총국) 소속 공작원 리호남’이 흑금성을 포섭했다고 적었다. 리호남이 흑금성에게 “군사정보를 구해서 건네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법원은 흑금성이 리호남의 요청을 받아 작계 5027-04의 일부 내용과 다수의 군사교범을 넘겼다고 봤다. 흑금성은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6년형을 선고받았다. 2016년 만기 출소했다.

흑금성 “리호남은 공작원이 아니라 경제관료”

흑금성이 리호남을 포섭한 것인가. 리호남이 흑금성을 포섭한 것인가.

흑금성과 리호남은 개성공단 인근에 골프장을 포함한 리조트 건설 사업을 논의했다. 리호남이 “개성은 군사지역이어서 군부 도움이 필요하다. 군부에 필요한 정보를 주면 군부를 설득해보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작계 5027 일부 내용과 군사교범이 북한에 넘어갔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법원은 ‘반국가단체 구성원인 리호남’으로부터 지령을 수수(收受)했다는 것을 전제로 흑금성의 행위를 유죄로 판단했다.

흑금성 측은 재판에서 “리호남은 공작원이 아니라 경제관료”라는 논리를 폈다. 흑금성은 리호남으로부터 작계 5027을 수집하라는 지령을 받지 않았으며 이를 수집·탐지해 제공한 사실도 없다고 일관되게 밝히면서 군사교범은 비밀이 아닌 평문이라고도 주장한다.

리호남은 공작원인가, 경제관료인가. 경제 일꾼과 공작원을 병행했다고 보는 게 타당한 것 같다.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9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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