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프랑스 헌책방 샅샅이… 뤼팽도 깜짝 놀랄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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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팽 결정판 펴낸 번역가 성귀수 씨

뤼팽 전문 번역가 성귀수 씨는 “상상력으로 글을 옮기는 번역 과정은 섬세하고 세밀해서 결코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본인 제공
뤼팽 전문 번역가 성귀수 씨는 “상상력으로 글을 옮기는 번역 과정은 섬세하고 세밀해서 결코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본인 제공
“프랑스 곳곳을 탐문하고 찾아 헤매다가 모리스 르블랑(1864∼1941)의 교정 흔적이 남아 있는 타자 원고가 손에 들어오는 그때의 기분은…. 이루 말할 수가 없죠.”

17일 전화로 만난 번역가 성귀수 씨(57)의 감동과 희열이 수화기 너머에까지 전해졌다. 그는 최근 추리 소설의 대가 르블랑의 ‘결정판 아르센 뤼팽 전집’(아르테)을 국내에서 출간했다. 뤼팽 전문 번역가인 그가 끈질긴 추적 끝에 발굴한 추리 활극 61편(단편 38편, 중편 1편, 장편 17편, 희곡 5편)이 전 10권으로 담겼다.

옛 소설 번역이 뭐 대수로울 것 있겠냐고? 일단 ‘결정판…’은 현재까지 뤼팽 정전으로 분류되는 모든 문헌을 총망라한 세계에서 유일한 판본이다. 성 씨가 프랑스 전역을 뒤지며 끈질긴 추적 끝에 발굴한 작품이 많다.

“먼저 (뤼팽) 연구서를 통해 몇 년도 몇 월호에 연재된 것인지, 단행본인지 같은 정보를 입수하죠. 무조건 문을 두드려서 뤼팽 작품 중 발표 안 된 거 있느냐고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어떤 작품을 찾는다는 걸 명확히 해야 해요. 이후엔 프랑스의 오래된 서점으로 찾으러 돌아다니는 건데, 거의 50% 가능성이라고 보면 돼요. 책(단행본)보단 잡지가, 잡지보다는 신문이 (찾기가) 더 어려워요.”

2003년에도 국내에서 세계 최초로 아르센 뤼팽 시리즈 전체를 복원해 출간한 바 있다. 당시까지만 해도 미완성작으로 알려졌던 ‘아르센 뤼팽의 수십억 달러’의 누락 연재분을 찾아내 국내외에서 큰 화제였다. 스무 권짜리 전집에 수록했다. 이번 결정판엔 새롭게 발굴한 르블랑의 희귀 작품 7편을 또다시 추가했다. 특히 ‘아르센 뤼팽과 함께한 15분’과 ‘이 여자는 내 거야’ 2편은 프랑스 현지에서도 아직 정식 출간된 적이 없는 작품이다. 올해 결정판으로 본인이 세웠던 ‘세계 최초’ 기록을 다시 갈아 치운 셈이다.

이번 결정판에 새로 추가된 ‘아르센 뤼팽과 함께한 15분’(9권)의 오리지널 삽화. 아르테 제공
이번 결정판에 새로 추가된 ‘아르센 뤼팽과 함께한 15분’(9권)의 오리지널 삽화. 아르테 제공
“르블랑의 손녀가 유품으로 간직하고 있다가 2015년에서야 프랑스 ‘아르센 뤼팽의 친구들 협회’ 회원들 중 핵심 멤버만을 대상으로 회람된 작품이었죠. 프랑스에선 전체 전집을 오리지널 상태로 복원해 낸다는 걸 굉장히 의미 있게 생각했어요. 뤼팽 협회장도 놀라워하고 부러워하면서 이번 결정판에 추천사도 써 주셨고요.”

이번 결정판엔 르블랑이 작품을 발표할 당시 실린 오리지널 삽화 370여 컷을 100% 복원해 싣는 데도 성공했다. 현재 프랑스어로 된 상당수의 뤼팽 원서에 실린 삽화들은 오리지널을 베낀 모작이거나 아예 누락돼 있었다.

기나긴 여정을 마무리한 그는 이제 또 어떤 모험을 떠날까. “아직도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프랑스 추리 소설 고전이 많아 번역가의 소명의식 탓에 두고 보기 어렵다”며 “프랑스 최초의 사설탐정인 프랑수아 외젠 비도크(1775∼1857)의 자서전을 비롯해 3개의 시리즈를 번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해외 문화 콘텐츠를 국내에 소개할 땐 체계적으로 하는 게 중요해요. 소개와 연구는 선대의 몫이고 후대 물려줄 문화자산인데, 우린 너무 그때그때의 인기나 경제적 상품성에 치우쳐 있는 것은 아닌가란 생각이 들어요. 고전과 고전이 돼야 할 희귀한 작품을 소개하는 게 제가 가야 할 길이죠.”

조윤경 기자 yunique@donga.com
#아르센 뤼팽#모리스 르블랑#뤼팽 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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