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습 사망’ 피겨선수 데니스 텐, 의병장 민긍호 외고손자…“한국인이라 자랑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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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년 7월 20일 07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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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선수 데니스 텐

2014년 5월 서울 올림픽공원 내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올댓스케이트 2014’에서 데니스 텐(카자흐스탄)이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2014년 5월 서울 올림픽공원 내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올댓스케이트 2014’에서 데니스 텐(카자흐스탄)이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19일 괴한의 피습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피겨스케이팅 선수 데니스 텐(23)은 한국계 카자흐스탄인이다.

그는 구한말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민긍호(閔肯鎬·?∼1908) 선생의 외고손자로 유명하다. 그의 할머니가 민 선생의 외손녀이다.

‘고려인’인 텐은 항상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았다.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선수 이력에 ‘한국 민긍호 장군의 후손’이라고 표기했으며, 그는 2010년 캐나다 밴쿠버 올림픽 등 각종 피겨 대회에 참가할 때 자신의 안내 멘트에 고조부의 이야기를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데니스 텐은 밴쿠버 올림픽에서 “항상 나는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자랑스러운 생각을 갖고 있다. 한국에 갔을 때 고조부의 고향인 경주를 찾았다. 부모님이 고조부님의 유물이라며 장신구를 주셨다. 이것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2014 소치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갈라쇼에서 김연아의 댄스파트너로 등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같은 해 5월 서울에서 열린 김연아의 은퇴식에도 참여했다. 김연아의 현역 은퇴 무대에 오른 데니스 텐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믿을 수 없는 성원을 보내준 한국에 감사드린다. 김연아를 비롯한 선수들과 함께한 특별한 순간들을 나눴다는 것이 정말 기쁘다. 분명 잊을 수 없는 경험이고, 다시 올 수 있는 기회가 있길 바란다”며 소감을 밝혔다.

2018 평창올림픽에 맞춰 KBS가 방송한 다큐멘터리 ‘고려인, 데니스 텐의 올림픽’에서도 그는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카자흐스탄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방송 말미에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나서 자랐다. 제가 딴 모든 메달과 제가 이룬 성취는 모두 카자흐스탄을 위해 거둔 것”이라며 “하지만 한국이라는 나라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을 거다. 나는 언제나 한국인이었고 앞으로도 한국인으로 살아갈 거다. 아마도 이것은 운명일 거다. 자랑스러운 저의 운명”이라고 말했다.

그는 2014년 소치올림픽이 끝난 뒤 김연아의 소속사인 올댓스포츠와 올해까지 4년간 매니지먼트 계약을 체결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출전을 염두에 둔 결정이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오른발 인대를 다친 그는 통증을 참고 출전해 부상 투혼을 보였다. 메달을 획득하진 못했지만, 그는 경기 후 평창올림픽에 참가한 것만으로도 감격스럽다고 밝혔다.

카자흐스탄의 ‘피겨 영웅’인 데니스 텐은 다섯 살 때 어머니의 권유로 피겨를 시작했다.

주변에 실내 아이스링크가 없어 야외에서 훈련하던 그는 쇼핑몰에 있는 작은 링크를 전전하며 기량을 키웠다.

열 살 때 러시아로 떠나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한 그는 2010년 미국으로 건너가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2013년 ISU 세계피겨스케이팅선수권대회 남자 싱글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며 카자흐스탄 사상 첫 메이저 국제대회 피겨 메달을 획득한 데니스 텐은 2014년 소치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며 더욱 주목받았다.

2015년 서울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열린 ISU 4대륙 피겨스케이팅에서는 역대 남자 싱글 선수 중 세 번째로 높은 289.46점으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는 텐의 개인 최고점으로 남았다.

하지만 데니스 텐은 25세의 젊은 나이에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괴한에 피습당해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났다.

외신에 따르면, 데니스 텐은 19일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자신이 타고 있는 자동차의 백미러를 훔치려는 2명의 남성과 다투다 칼에 찔려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지만 끝내 숨졌다. 엘나르 아킴쿠노프 카자흐스탄 보건부 대변인은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고 전했다. 현지 경찰은 용의자 2명을 수배 중이다.

최정아 동아닷컴 기자 cja091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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