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트럼프 “시간제한 없다”는 비핵화, 제재 뚫리면 물 건너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19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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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7일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매우매우 잘되고 있다. 프로세스를 밟아가고 있고, 속도를 위해 서두르지 않겠다”며 “시간제한도, 속도제한도 없다”고 말했다. 지난달 말 “오븐에서 칠면조를 서둘러 꺼내는 것은 좋지 않다”며 속도 조절을 밝힌 데 이어 이번엔 아예 ‘비핵화 시간표’마저 접은 것이다. 이런 가운데 북한 비핵화를 평화적으로 압박할 유일한 수단인 대북제재는 곳곳에서 구멍이 뚫린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당초 ‘원샷’ ‘빅뱅’ 같은 속전속결 일괄이행을 주장했던 트럼프 행정부의 비핵화 시간표는 어느덧 명시적 시한이 없는 비핵화로 가는 분위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막후에선 아주 긍정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며 물밑 대화가 잘 이뤄지고 있다고 강조하지만 결국 북한 비핵화는 속도전에서 장기전으로 바뀐 셈이다.

이 같은 변화는 트럼프 행정부가 북핵 협상의 만만찮은 현실을 뒤늦게 깨달은 데 따른 접근방식 수정일 수 있다. 미국의 일괄해법에 거부감을 표시하며 거꾸로 6·25 종전선언 같은 대북 안전보장을 요구하는 북한을 상대로 무리하게 밀어붙였다가는 자칫 판을 깰 수 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일단 미군 유해 송환이란 성과를 얻어낸 뒤 적절한 타이밍에 비핵화와 안전보장의 패키지 타결을 해도 늦지 않다는 셈법도 깔려 있을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대북제재 해제는 없을 것인 만큼 북한도 결국 비핵화를 서두를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엔 금수품목인 북한산 석탄 9000t이 지난해 10월 러시아산으로 둔갑해 우리나라에 반입된 것으로 확인됐다. 대북제재의 최전선에서 국제공조를 독려해야 할 한국으로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철저한 조사와 후속조치로 우리의 대북제재가 의심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이미 중국은 대북제재의 뒷문을 열어주며 북한의 비핵화 변심(變心)을 사실상 방조하고 있다. 최근 중국 당국은 북-중 접경지역에서 밀무역을 벌인 기업인 10여 명을 체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만큼 대북제재의 구멍이 숭숭 뚫려 있음을 확인해주고 있다. 북한산 석탄을 한국으로 들여온 선박들도 사실상 중국 회사 소유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에 비핵화 이행을 위한 시간을 주면 줄수록 북핵·미사일 능력은 더욱 고도화될 뿐이다.
#북한 비핵화#대북제재#중국#북중 접경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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