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 넘어 사막-우주로… 예능, 어디까지 갈 거니?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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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광-식도락-웃음 요소 빼고 새 얘기 새 장소 찾아 새 탐험
제작진은 개입 않는 게 원칙… 출연진 감정 세밀히 담아내

더 먼 곳, 더 낯선 곳을 찾아 헤매던 여행 예능은 ‘탐험 예능’으로 진화했다. 아라비아 사막 한가운데로 뛰어든 KBS2 ‘거기가 어딘데??’. KBS 제공
더 먼 곳, 더 낯선 곳을 찾아 헤매던 여행 예능은 ‘탐험 예능’으로 진화했다. 아라비아 사막 한가운데로 뛰어든 KBS2 ‘거기가 어딘데??’. KBS 제공
“와, 여기서 낙오되면 바로 죽는 거네예.”

사방이 모래와 자갈뿐,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 사막을 걷던 배정남이 한숨 쉬듯 내뱉은 말이다. 남한의 23배 면적인 아라비아 사막 한가운데서 죽음은 관념이 아닌 실재다. 어쨌든 연예인들이 해외로 왔으니 여행 예능인 것 같긴 한데, 기존의 문법에선 어딘가 많이 벗어나 있다. 눈부신 풍광도, 식도락도, 배꼽 잡을 만한 웃음 포인트도 없다.

KBS ‘거기가 어딘데??’는 ‘탐험 중계방송’을 표방한다. 지진희 차태현 등 탐험가 4인방은 지도와 나침반,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기기에만 의지해 아라비아해까지 걸어가야 한다. 이들이 제작진의 사전 답사도 되지 않은 사막 한복판을 가로질러 발걸음을 내디디면 제작진은 묵묵히 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뒤따른다.

tvN ‘갈릴레오: 깨어난 우주’는 한술 더 떴다. 아예 지구를 떠나 화성(火星) 탐사에 나섰다. 미국 유타주에 위치한 화성탐사연구기지(Mars Desert Research Station·MDRS)에서 일주일간 화성 탐사 훈련을 하고 돌아왔다. ‘생존 달인’ 김병만이 탐험대를 이끌고 세 명의 과학자가 합류해 연예인 출연진에는 부족한 전문성을 보충한다. 이들의 모든 활동 내용은 실제 화성 탐사를 위한 연구자료로 활용된다.

더 먼 곳, 더 낯선 곳을 찾아 헤매던 여행 예능은 ‘탐험 예능’으로 진화했다. 가상의 화성인 미국 유타주 MDRS에서 탐사 연구 활동을 진행한 tvN ‘갈릴레오: 깨어난 우주’. tvN 제공
더 먼 곳, 더 낯선 곳을 찾아 헤매던 여행 예능은 ‘탐험 예능’으로 진화했다. 가상의 화성인 미국 유타주 MDRS에서 탐사 연구 활동을 진행한 tvN ‘갈릴레오: 깨어난 우주’. tvN 제공
사실 ‘탐험 예능’의 선두주자는 2011년 시작한 SBS ‘정글의 법칙(정법)’이다. 열대우림이나 무인도를 탐험하며 ‘무한도전’ 식의 버라이어티 예능을 선보이고 있다. ‘병만 족장’ 캐릭터를 탄생시키며 장수 예능으로 자리 잡았지만 과도한 상황 설정으로 조작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관광상품으로 운영되는 원주민 마을에서 촬영을 진행하고선 위험한 원주민을 만난 것처럼 연출했다가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정법’을 의식한 탓일까. ‘거기가…’와 ‘갈릴레오’는 공통적으로 제작진 불개입 원칙을 지키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갈릴레오’의 이영준 PD는 “거치형 카메라를 최대한 활용해 출연진을 제작진으로부터 철저히 격리시켰다”고 했다. 훈련 내용뿐만 아니라 폐쇄된 공간에서 출연진이 겪는 감정 변화를 세밀하게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거기가…’는 아예 출연자 지진희가 40여 명에 이르는 제작진을 이끌고 사막 횡단에 앞장섰다. 유호진 PD는 “하나둘 제작진이 개입하다 보면 출연진은 탐험이 아닌 ‘관광’을 하게 된다. 좋은 그림을 놓칠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리얼리티를 살리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연예인들이 전 세계를 누비며 비슷비슷한 여행 예능을 양산하는 상황에서 색다른 장소를 찾다 보니 관광지가 아닌 ‘탐험지’를 찾게 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공간이 바뀌면 이야기도 바뀐다. 늘 ‘새로운 이야기’를 갈구하는 예능의 특성상 더 새로운 장소, 일상에서 더 멀리 떨어진 장소로 리얼리티 쇼의 공간적 배경이 확장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탐험 예능#아라비아 사막#화성 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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