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규 “노무현 前대통령 ‘KBS 보도후 권양숙 여사가 시계 내다버렸다’고 진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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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규 前중수부장, 美서 입장문… ‘논두렁 시계’ 수사상황 상세히 공개
보도개입설 반박… “국정원이 배후”
“원세훈 원장, 임채진 총장에게 전화… ‘언론 흘려 망신’ 제안했다 거절당해”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 미국 버지니아주 애넌데일의 한 중국음식점에서 가족들과 식사하는 모습이 19일 포착됐다. 사진 출처 미시USA 커뮤니티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 미국 버지니아주 애넌데일의 한 중국음식점에서 가족들과 식사하는 모습이 19일 포착됐다. 사진 출처 미시USA 커뮤니티
‘언론(KBS)에 시계 수수 사실이 보도되고 난 후 권양숙 여사가 밖에 내다 버렸다.’

2009년 검찰의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를 주도했던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60)이 이른바 ‘논두렁 시계’ 기획 보도 의혹과 관련해 25일 처음 밝힌 검찰 수사 내용이다. 이 전 중수부장은 노 전 대통령이 2009년 4월 30일 검찰 조사에서 이렇게 진술하면서 ‘증거물로 피아제 명품 시계를 제출해 달라’는 검사의 요청을 거부했다고 밝혔다. 논두렁 시계 보도와 관련해 수사 책임자가 당시 상황을 자세히 공개한 것은 처음이다.

이 전 중수부장은 이날 A4용지 4쪽 분량으로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소위 논두렁 시계 보도 관련’ 입장문을 법조기자단에 보냈다. 최근 일부 언론이 ‘논두렁 시계 보도’를 기획한 인물로 자신을 지목하자 “검찰은 개입한 사실이 없고 배후에 국가정보원이 있었다”며 거듭 반박한 것이다. 이 전 중수부장은 지난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적폐청산 수사가 시작되자 9월 미국으로 돌연 출국했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가 미국 버지니아주에 있던 이 전 중수부장의 사진을 공개하자 온라인에는 “즉각 소환해 수사하라”는 주장이 나왔다.

입장문에 따르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은 검찰 수사에서 ‘2006년 9월경 노 전 대통령의 회갑을 맞이해 피아제 남녀 손목시계 한 세트를 2억 원에 구입해 노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 씨를 통해 노 전 대통령에게 전달했으며, 그 후 2007년 봄경 청와대 관저에서 노 전 대통령 부부와 함께 만찬을 할 때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감사 인사를 받았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이 전 중수부장은 “이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은 검찰 조사에서 ‘권양숙 여사가 그와 같은 시계 세트를 받은 것은 사실이나, 자신은 KBS에서 시계 수수 사실이 보도된 후에 비로소 그 사실을 알았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전했다. 이 전 중수부장은 “이런 조사 내용은 모두 녹화됐고 조서로 작성됐다”며 “노 전 대통령은 작성된 조서를 열람한 후 서명 날인했으며, 그 조서는 영구보존문서로 검찰에 남아 있다”고 했다.

이 전 중수부장은 “노 전 대통령 수사 당시 검찰은 언론의 치열한 보도 경쟁 속에서 수사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였다”며 “시계 수수 관련 수사 내용이 보도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나 검찰이 의도한 바가 아님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전 중수부장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이 직원을 자신에게 보낸 것 외에 임채진 검찰총장에게도 직접 전화를 걸어 ‘노 전 대통령의 시계 수수 사실을 언론에 흘려 망신을 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가 거절을 당한 적도 있었다는 정황을 들었다.

또 노 전 대통령 시계 수수 첫 보도가 KBS에 나갈 당시 이 전 중수부장은 국회 전문위원, 행정안전부 차관 등 워싱턴 주미대사관에서 근무할 때 알게 된 다른 부처 공무원들과 서울 종로구의 한 중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면서 국정원의 행태에 대해 크게 화를 냈던 적이 있다고 전했다.

2009년 5월 13일 SBS는 “권 여사가 노 전 대통령 회갑 선물로 받은 1억 원짜리 시계 2개를 논두렁에 버렸다”고 보도했다. 이후 열흘 뒤인 5월 23일 노 전 대통령은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사저 뒷산에서 투신해 목숨을 끊었다.

이 전 중수부장은 입장문에서 “KBS 보도는 국정원 대변인실이 개입해 이루어진 것을 확인했다”며 “SBS 보도의 배후에도 국정원이 있다는 심증을 굳히게 됐다”고 주장했다. SBS는 이날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통해 명예를 심대하게 훼손한 데 대해 민형사상 법적 책임을 물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황형준 constant25@donga.com·허동준 기자
#노무현 前대통령#논두렁 시계#이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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