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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항산이면 무항심… 김종필 前총리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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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항산이면 무항심… 김종필 前총리 타계

정원수 기자 입력 2018-06-25 03:00수정 2018-06-25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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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산업화 後민주화 신념으로 5·16 가담했던 ‘마지막 3김’ 떠나다JP가 직접 쓴 묘비명

思無邪(생각에 사악함이 없다)를 인생의 도리로 삼고, 한평생 어기지 않았으며 無恒産而無恒心(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없다)을 치국의 근본으로 삼아 國利民福과 國泰民安을 구현하기 위하여 獻身盡力하였거늘 만년에 이르러 ‘年九十而知 八十九非’(아흔 살을 살았지만 지난 89년이 헛된 것 같다)라고 嘆하며 數多한 물음에는 ‘笑而不答’(웃으며 답하지 않는다)하던 자- 내조의 德을 베풀어준 永世伴侶와 함께 이곳에 누웠노라
 
미리 써둔 자신의 묘비명이 ‘맹자’의 ‘무항산이무항심(無恒産而無恒心·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없다)’이었다. 그만큼 산업화를 이룬 뒤 민주화가 가능하다고 믿었고, 삶의 궤적도 그러했다. 한국 현대 정치사의 1세대인 ‘3김’의 마지막이었던 운정(雲庭)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23일 타계했다. 향년 92세.

JP의 정치인생 전반부는 산업화시대의 2인자였다. 35세이던 1961년 처삼촌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5·16군사정변에 가담한 뒤 초대 중앙정보부장(현 국가정보원장)과 국무총리, 집권당인 민주공화당 총재 등을 거쳤다.

JP는 1987년 민주화 이후엔 내각제 개헌을 연결고리로 민주화의 상징인 김영삼(YS)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잇달아 손을 잡으며 2인자로 나섰다. ‘킹메이커’로서는 여한이 없었지만 끝내 대권엔 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대통령 하면 뭐 하나. 다 거품 같은 거지. 미운 사람 죽는 걸 확인하고 편안히 숨 거두는 사람이 승자”라고 말했다.

2009년 DJ, 2015년 YS에 이은 JP의 퇴장으로 이제 3김으로 상징되는 한국 정치의 한 세대가 완전히 마감됐다. 정파와 이념을 넘나들던 3김 정치보다 각박해지고 존재감이 사라졌다는 평가를 받는 우리 정치가 이들의 유산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남은 사람들의 몫이 됐다.

JP는 ‘구름 속 정원(운정)’이란 아호처럼 정치권의 마지막 로맨티시스트였다. 평생의 반려였던 부인 박영옥 여사가 2015년 별세했을 때 “곧 따라가겠다. 마누라와 함께 눕겠다”며 121자의 비명을 직접 지었다. 그는 27일 오전 8시 서울아산병원에서 영결식을 한 뒤 국립현충원 대신 충남 부여군 가족묘의 부인 곁에 묻힌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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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전 총리 타계#산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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