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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 아닌 이해…” 예멘 난민 ‘파더’된 호텔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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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 아닌 이해…” 예멘 난민 ‘파더’된 호텔 사장님

뉴스1입력 2018-06-22 14:14수정 2018-06-22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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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운영 호텔서 예멘 난민 100여 명 숙식 지원
반값 숙박료에 시설도 개방…온정 손길도 이어져
“컴 온(Come On)!”

21일 늦은 오후 제주시 삼도1동의 한 호텔 앞.

저녁식사를 위해 속속 호텔로 돌아오는 예멘 난민들 틈에서 짧은 영어를 하며 나타난 이는 다름 아닌 이 호텔 대표인 김우준씨(54)였다.

엊그제 조카가 운영하는 공장에 취업시킨 예멘 난민들을 데리고 오는 길. 그는 호텔에 도착한 뒤에도 고된 노동 현장에서 돌아온 예멘 난민들을 돌보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멀찍이 이를 지켜보던 예멘 난민 막디(Magdi·25)는 “전쟁 때문에 학업도 마치지 못하고 떠돌다 제주에 오게 됐다. 정말 슬프고 외롭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막막한데, 김씨 도움이 큰 위로가 되고 있다”고 기자를 붙잡고 말했다.

같은 처지인 바쌈(Bassam·32)도 “우리들 때문에 김씨가 많이 고생하고 있다. 미안하면서도 고맙다. 난 예멘에서 엔지니어였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훗날 신세를 갚을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소망을 전하기도 했다.

김씨는 지난달 1일 예멘 난민들을 처음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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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난민 2~3명에게 방을 내준 적은 있었어도, 예멘 난민 20~30명을 한 번에 수용하게 된 것은 그에게도 매우 쉽지 않은 일이었다.

처음엔 외국인 관광객인줄로만 알았다고 했다. 주변 호텔보다 비교적 값이 저렴해 종종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려올 때가 있었던 탓이다. 그는 며칠 뒤 관련 언론보도를 접하고 대화를 나누고 나서야 이들이 예멘 난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김씨는 이들에 대한 숙박료를 반값으로 내리고, 지하 구내식당을 완전 개방했다. 2인 1실에 1~2명 더 끼어 지내는 일도 부지기수였지만 그는 그저 눈감아줬다. 넉넉지 못한 예멘 난민들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한 배려였다.

소식을 접한 예멘 난민들이 하나둘씩 몰려들면서 지난달 말에는 호텔 13개층 가운데 무려 6개층이 모두 예멘 난민들의 보금자리가 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이 곳에서 동료들이 만든 음식을 포장해 모처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예멘 난민들도 늘고 있다. 도와준 김씨가 고마운지 몇몇 예멘 난민들은 김씨를 ‘파더(Father·아빠)’라고 부르기도 했다.

여름철 성수기를 앞두고 눈살을 찌푸릴 법도 했지만 그는 “도와주는 이들이 많아 그렇게 힘들지 않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알음알음 이를 알게 된 동네 주민들이 할랄푸드 등을 들고 찾아오는가 하면, 한 캐나다인은 80만원에 달하는 숙박료를 대신 내고 가기도 했다. 최근에는 대한적십자사 제주지사도 세 번이나 호텔을 찾아 식재료와 구급약 등을 전달하고 갔다.

최근에는 산으로 바다로 취업해 호텔을 떠나는 예멘 난민들이 많은데, 김씨는 그때마다 서울에 있는 두 대학생 아들이 생각나 매번 울컥한다고 했다. 해 줄 말은 많지만 ‘테이크 케어(Take Care·잘 지내)!’ 한마디로 등을 두드려줄 뿐이라고.

김씨는 예멘 난민의 60~70%가 중산층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온 데다 직업군도 셰프, 엔지니어, 공예가, 유학생 등으로 다양했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같이 지내면서 문제를 일으키거나 서로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면서 “오히려 주변의 도움에 식사를 대접하고 소일거리를 돕는 정 많고 순수한 친구들”이라고 자신이 본 예멘 난민들을 소개했다.

다만 그는 그간 예멘 난민들에게 우리나라 기초 질서를 가르치느라 꽤 애를 먹었다고 했다. 호텔 특성상 큰 소리로 코란(이슬람 경전)을 낭독하는 이들을 다그치고, 인사 예절이나 쓰레기 분리수거법 등을 일일이 알려줘야 해서다.

김씨는 “문화가 많이 다르잖나. 우리가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예멘 난민들의 모습은 대부분 몰라서 그러는 것”이라며 “행정에서 먼저 집합 소양교육이나 기초질서 매뉴얼을 준비하는 소소한 노력을 기울이면 더 좋을 것 같다”고 조언키도 했다.

마지막으로 김씨는 예멘 난민들에 대해 “나라를, 부모를, 형제를, 친구를 잃은 불쌍한 이들”이라며 “나는 지금 봉사를 하는 게 아니라 이해를 하는 거다. 우리나라도 불과 60여 년 전에 6·25를 겪었잖나. 지금이야말로 고난과 역경에 처했던 우리의 지난날을 돌아볼 때”라고 전했다.

(제주=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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