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한파땐 일 못해… 기한 맞추려면 주야 2교대해도 빠듯”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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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2시간 태풍이 온다]<4> 건설 하도급업체 ‘발동동’



“건설현장은 일을 할 수 있을 때 바짝 해야 합니다. 날씨, 주변 민원 등 돌발요소가 수두룩해요. 3개월 안에 주 52시간을 다 맞추려면 턱도 없어요. 시장에 숙련공이 바닥났는데 당장 인력은 또 어떻게 늘려야 할지 막막합니다.”

19일 경기 화성시 서해선(홍성∼송산) 복선전철 터널공사 현장. 김창수 강릉건설 현장소장은 다음 달 1일 시행되는 ‘주 52시간 근무’ 이야기에 한숨부터 내쉬었다. 이 현장의 공사기한은 내년 6월까지다. 공기를 맞추려면 주야 2교대를 해도 빠듯한데 근로가능시간마저 줄어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콘크리트 붓다 말고 나와야 한다는 얘기마저 나온다.

○ 추가 인력 없는데 ‘데드라인’은 그대로

이날 강릉건설 현장에선 터널 굴 파기 작업이 한창이었다. 터널 내 뼈대를 세우고 화약을 다루는 일은 모두 전문성과 숙련도가 요구된다. 교량 건설 현장도 모두 10년 이상 경력이 있는 숙련공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근로시간 단축을 메울 만한 인력을 찾기가 쉽지 않다.

김 소장은 “주 52시간 근무에 맞추려면 사람을 더 뽑아야 한다. 최소 5년 이상 경력이 있는 숙련공이 필요한데 젊은층은 물론이고 50, 60대 숙련공도 모시기 힘들다”고 했다. 현장 인력의 80%는 이미 50대 이상이다. 일이 힘들고 위험해 청년들이 꺼리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기준 건설업의 청년 취업자(15∼29세) 비율은 5.1%에 불과하다.

새 근로제 도입 전에 발주처나 원청업체와 합의한 준공 기일도 큰 고민거리다.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인 현장은 준공일이 계약서에 명시돼 있다.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작업시간이 줄어도 ‘데드라인’은 그대로라는 얘기다.

건설 현장의 경우 일반 제조업과 달리 장마철, 혹서기, 혹한기 등에는 공사를 진행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현장에는 장비와 인원, 시간을 집중 투입해야 한다. “일할 수 있을 때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해저터널 공사는 터널 입구에서 공사 현장에 도착하는 데만 걸어서 1시간 이상 걸린다. 식사하러 외부로 나갈 때 등 안 그래도 길에 버리는 시간이 많은데 근무조를 더 잘게 쪼개면 버리는 시간이 그만큼 늘어난다. 이 때문에 정부가 이날 내놓은 ‘처벌 6개월 유예’ 방안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목소리가 높다.

대한전문건설협회 관계자는 “발주처가 공공기관인 경우에는 정부 지침에 따라 공기가 어느 정도 늘어나겠지만 민간은 반드시 공기를 맞춰야 하는 상황”이라며 “탄력근무제 적용 기간을 건설업의 특수성을 살려 대폭 확대하고 건설업에 5년 유예기간을 준 일본의 사례를 참고해 업계가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 “임금 깎으면 300인 미만 업체로 근로자 이탈”

근로시간 단축으로 줄어드는 임금과 늘어나는 본사 부담도 큰 고민거리다. 건설 현장 인력 운영은 시공사가 아닌 하청업체의 몫이다. 대부분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근로시간에 맞춰 임금을 삭감할 수밖에 없다. 한 중견건설사 관계자는 “인건비가 30% 이상 추가로 들기 때문에 임금을 깎을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인부들이 주 52시간 근무 도입이 내년으로 미뤄진 300인 미만 공사 현장으로 이탈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영세업체들은 도산의 위험에까지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발간한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에 따른 건설정책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새 근무제가 시행되면 총공사비가 평균 4.3%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현장은 최대 14.5%까지 공사비 부담이 늘어나는 것으로 분석됐다. 건설 인부의 월급은 평균 8.9%, 작업 현장의 사무원, 경비원, 감독관 등에 드는 비용은 평균 12.3%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연구원의 분석이다. 비용 증가를 최소화하기 위해 삭감해야 하는 비용은 관리직이 13.0%, 기능 인력은 8.8%로 추산됐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한 관계자는 “건설 현장 일용직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휴식보다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 많다”면서 “임금이 삭감되면 오히려 생계의 위협을 받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화성=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
#주 52시간제#건설#근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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