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과학이 ‘프랑켄슈타인’ 다시 만든다면… 꽃미남?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1일 03시 00분


코멘트

국내 연구진, 인간과 흡사한 새로운 인공조직 연이어 내놔


“나는 시체 안치소에서 유골을 수집했고, 속된 손으로 인간 신체의 유장한 비밀을 어지럽혔다.”(프랑켄슈타인, 제1권 3장)

올해는 과학기술에 대한 비판적 공상과학소설(SF)의 효시로 꼽히는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이 탄생 200주년을 맞는 해다. 프랑켄슈타인은 화학에 정통한 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생명을 창조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힌 나머지, 시체로부터 각종 생체재료를 조합해 살아 움직이는 거인을 만든 이야기다.

하지만 21세기에 프랑켄슈타인이 다시 쓰인다면 시체 안치소가 아니라 공대 연구실을 배경으로 하고, 분위기도 훨씬 밝아져야 할 것 같다. 최근 국내 연구팀이 인공 보철이나 기계 장기의 성능을 극대화할 새로운 인공 조직과 장기를 연이어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질병이나 장애 극복에도 한 걸음 더 다가가고 있다.

먼저 인공 신경. 이태우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와 김영인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 공동연구팀은 생물의 촉각신경을 모방한 유기물 반도체 인공 신경을 개발해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6월 1일자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압력을 감지하는 작은 센서를 배열한 뒤 뇌신경망을 흉내 낸 트랜지스터를 연결시켰다. 이는 촉각 센서와 인공 뉴런, 인공 시냅스로 정보를 연이어 전달, 처리하기 위해서다. 연구팀은 인공 신경으로 시각장애인용 점자 정보와 물체의 울퉁불퉁함 등 촉각 정보, 대상의 움직임 방향 정보를 읽고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또 실제 곤충 다리를 연결해 운동신경을 제어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이 교수는 “생물체처럼 행동하는 로봇을 개발하거나, 생물체와 호환성이 높은 신경 보철 장치에 응용해 장애를 극복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살갗은 그 아래 비치는 근육과 혈관을 제대로 가리지도 못했다.”(1권 4장)

프랑켄슈타인은 거인에게 제대로 된 피부를 만들어 주지 못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21세기라면 다르다. 피부를 대체할 인공 피부가 다양하게 연구되고 있다. 전경용 고려대 미래융합기계시스템사업단 교수와 한창수 기계공학부 교수팀은 전원 없이 미세한 촉감을 감지할 수 있는 인공 피부를 개발해 재료 분야 국제학술지 ‘어드밴스트 머티리얼스’ 2월 9일자에 발표했다. 깃털이 닿는 순간적인 느낌은 물론 물체의 거칠기처럼 지속적으로 느껴지는 질감도 감지할 수 있어 인간의 피부와 대단히 비슷하다. 변정환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박사와 이윤택 연구원팀은 두께가 1mm 이하로 얇고 무게도 0.8g으로 가벼운 전자피부를 개발했다. 이 피부는 유연하고 능동적으로 움직인다. 통신 장비 등 딱딱한 부품까지 부드러운 재료 안에 일체형으로 넣어 잘 휘고, 실제 피부처럼 늘어나기도 한다. 원격 움직임 제어가 가능해 동작이 복잡한 소프트로봇(부드러운 물질로 움직임을 만들고 제어하는 로봇)을 제어할 때 응용할 수 있다. 연구 결과는 로봇 분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로보틱스’ 5월 30일자에 발표됐다.

“허여멀건 눈구멍과 별로 색깔 차이가 없는 희번덕거리는 두 눈.”(1권 4장)

소설에서 거인의 눈은 탁한 괴물의 눈처럼 묘사된다. 하지만 현실에서 개발 중인 인공 눈은 시각장애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할 예정이다. 박병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센서시스템연구센터 연구원(연세대 기계공학과 연구원)과 양희홍 목암생명과학연구소 연구원팀은 눈에서 이미지를 인식하는 기관인 망막에 주목했다. 손상되면 시각장애를 일으키는 대표적인 부위이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망막을 대체할 인공 망막의 핵심인 광(빛) 수용체를 개발해 어드밴스트 머티리얼스 5월 18일자에 발표했다. 이 인공 망막은 실제 눈의 빛 수용 단백질을 이용한 게 특징이다. 망막의 광(빛) 수용 단백질 세 종류를 세포를 이용해 인공 생산한 뒤, 전기가 통하며 잘 휘어지는 얇은 탄소계 신소재인 ‘그래핀’과 결합시켰다. 박 연구원은 “인간의 눈과 비슷하게 빛의 3원색(빨녹파)과 밝기(명암)를 정확히 구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경과 눈, 피부를 완성했다 해도, 이들을 기존의 신체나 기관과 접목하지 못하면 쓸모가 없다. 김성민 광주과학기술원(GIST) 신소재공학부 연구원과 김나라 스웨덴 린셰핑대 박사팀은 몸의 세포를 자극하거나, 반대로 기관의 신호를 읽을 수 있는 전극을 개발해 재료 분야 국제학술지 ‘NPG 아시아 머티리얼스’ 4월 16일자에 발표했다. 핵심은 인체 내부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안정적으로 전기 신호를 전달할 수 있는 새로운 고분자 물질이었다. 이 물질로 전극을 만들자, 작은 건전지 하나보다 작은 1V의 낮은 전압으로 심근세포의 박동수를 조절할 수 있었다. 연구 책임자인 윤명한 GIST 신소재공학부 교수는 “심장과 신경을 자극하거나 신호를 읽는 데 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1월 ‘사이언스’는 프랑켄슈타인 특집기사를 통해 21세기 과학을 통해 구현할 수 있는 인체 대체 기술을 네 가지 유형으로 정리했다. △인공 심장 등 기계 장기 △다른 동물의 장기를 인체에 이식하는 바이오 장기 △세포를 이용해 실험실에서 키운 미니 장기(오가노이드) △인공 팔, 인공 눈 등 인공 보철이다. 21세기판 ‘프랑켄슈타인’이 쓰인다면, 거인은 200년 전보다는 훨씬 복잡한 재료와 기술을 한 몸에 지닌 존재일 것이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프랑켄슈타인#인공조직#바이오 장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