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m 도로에 시속 30, 40km 고무줄 제한속도… 밤되면 과속 아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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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운전 차보다 사람이 먼저다]<6>생활도로 속도관리 사각지대

지난달 20일 0시 50분경 광주 서구 쌍촌동 도로에서 여대생 A 씨(23)와 B 씨(23)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치였다. A 씨는 숨졌고 B 씨는 부상을 입었다. 사고 직후 장면이 담긴 영상이 온라인에 유포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사고 당시 두 여대생은 왕복 9차로 도로를 막 건너던 중이었다. 문제는 무단횡단이었던 것이다. 일부 누리꾼은 영상 속에서 SUV는 규정 속도를 지킨 것으로 보인다며 두 여대생의 사고 책임을 지적했다. ‘무단횡단 처벌을 강화해 달라’는 청와대 청원까지 등장했다.

그로부터 약 한 달 후 경찰의 조사 결과가 나왔다. 당시 SUV가 시속 80km 이상으로 달린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해당 도로 구간의 제한최고속도인 시속 60km를 20km 이상 초과한 과속이었다. SUV 운전자는 “사고 구간의 가로등 불빛이 약해 도로가 어두웠다. 뒤늦게 A 씨를 발견해 운전대를 돌렸지만 이미 늦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SUV가 규정 속도를 지켰어도 무단횡단 여대생을 피하지 못했을 수 있다. 하지만 시속 60km 이하였다면 피해자가 숨지는 건 막았을지도 모른다.

○ 사고는 못 피해도 사망은 피할 수 있다

서울 강동구에는 둔촌동을 가로지르는 ‘진황도로’가 있다. 왕복 2차로 도로다. 하지만 천호대로와 올림픽로 같은 주요 간선도로와 이어져 낮에 교통량이 많다. 특히 천호대로에서 중앙보훈병원 앞까지 이어지는 484m 구간 주변은 저층 아파트와 다세대주택이 밀집해 있다. 그래서 제한속도가 시속 40km다. 시속 30km로 제한된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도 2곳이나 있다.

교통량이 줄어드는 밤이면 이곳의 제한속도는 무용지물이 된다. 시속 40km는 최저속도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횡단보도 3곳 중 2곳은 신호등이 없다. 120m 간격을 두고 스쿨존 2곳이 있다 보니 제한속도가 시속 30km와 40km를 ‘널뛰기’한다. 운전자가 정확한 제한속도를 알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속도 관리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주민 이수정 씨(29·여)는 “횡단보도에 신호등이 없다 보니 밤에는 빠르게 달리는 차량을 피해 길을 건너는 게 어렵고 무섭다”라고 말했다.

25일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2011년부터 5년간 국내 교통사고의 71.9%, 교통사고 사망자의 48.6%가 도시지역 도로에서 발생했다. 또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 가운데 보행자 비중은 좀처럼 40% 이하로 떨어지지 않고 있다. 도시지역 보행자 보호가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국내 도시의 속도 정책은 보행자보다 차량에 중점을 두고 있다. 진황도로 같은 도로는 보행자 통행이 잦은 생활도로다. 주거지역이라 어린이와 고령자 등 교통약자의 통행이 잦다. 이 같은 보행안전 사각지대는 진황도로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주간에는 교통 정체와 신호 지체로 인해 차량의 통행 속도가 낮아진다. 반면 야간에는 교통량이 적어 평균 통행 속도와 과속 차량 비율이 높아져 사고 위험이 커진다. 2016년 전체 보행 사망자 중 62%인 1062명이 야간에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54%는 차도 폭 9m 미만 도로에서 숨졌다.

○ ‘안전속도 5030’ 본격 추진

서울 강동구 둔촌동 진황도로에서 차들 사이로 사람들이 길을 건너고 있다. 길이 484m인 진황도로 둔촌동 구간에는 제한최고속도 시속 30km인 어린이 보호구역과, 40km구간이 혼재해 차들의 저속 운행을 유도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서울 강동구 둔촌동 진황도로에서 차들 사이로 사람들이 길을 건너고 있다. 길이 484m인 진황도로 둔촌동 구간에는 제한최고속도 시속 30km인 어린이 보호구역과, 40km구간이 혼재해 차들의 저속 운행을 유도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차량과 충돌했을 때 보행자 피해는 차량 속도와 비례해 급증한다. 교통안전공단 실험에서 시속 30km 차량과 보행자가 충돌했을 경우 보행자의 중상 가능성은 15.4%였다. 시속 50km에서는 72.7%, 시속 60km에서는 92.6%로 급격히 증가했다.

반대로 속도를 시속 10km만 줄여도 보행자를 살릴 가능성은 커진다. 지난해 캐나다 위니펙시 경찰의 차량 속도별 제동거리 실험 결과 시속 60km로 달리던 승용차의 제동거리는 27m. 반면 시속 50km에서는 18m에 그쳤다.

한국도 보행자를 보호하기 위해 도시의 차량 속도를 줄이는 정책을 전면 추진하고 있다. 시속 60km이던 도심 간선도로 제한최고속도를 시속 50km으로, 생활도로는 시속 30km로 낮추는 ‘안전속도 5030’ 정책이다.

경찰청은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을 이르면 연말 개정해 도시지역 도로 기본속도를 시속 50km로 낮춘다. 진황도로의 사례에서 드러난 속도 관리 정책의 허점도 개선한다. 국토교통부와 경찰은 12월까지 도시 도로 설계 및 속도 하향에 관한 통합 기준을 마련할 방침이다.

최병호 한국교통안전공단 교통안전연구처장은 “차로 수를 줄이거나 과속 방지 시설을 마련하는 등 속도를 자연스레 줄일 수 있는 도로 설계 기법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형석 skytree08@donga.com / 광주=이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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