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한반도] 트럼프를 화나게 한 결정적 ‘3가지 요인’ 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5일 17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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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발대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북한 사람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정상회담 준비 작업은 발이 묶였다. 그들(북한)이 전화를 받게 하거나 ‘통신 침묵(radio silence)’을 멈추게 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9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두 번째 방북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난 뒤 북-미는 다음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릴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실무 접촉을 하기로 했다. 양측 실무진은 지난주 싱가포르에서 만나 물자 수송 등을 논의할 예정이었으나 북한 측은 감감무소식이었다.

24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한 직후 백악관 고위 관리는 비공개 브리핑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린 북한의 ‘약속 위반 행적(a trail of broken promises)’을 공개했다.

●북한의 비방, “인내 한계 넘었다”

백악관 고위 관리는 “(실무접촉 무산 이후) 1주일 만에 북한과의 첫 소통은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공격하고 ‘핵 대 핵의 대결’을 경고한 어젯밤 성명”이라고 지적했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전날 밤 8시경 트럼프 행정부의 2인자 펜스 부통령을 “정치적으로 아둔한 얼뜨기”라고 조롱하고 “핵 대 핵의 대결”로 위협하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한 것이 정상회담 취소의 기폭제가 됐다는 지적이다.

워싱턴포스트와 NBC, CNN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최선희 담화’ 두 시간 뒤인 밤 10시경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통해 내용을 보고 받고 분노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보고를 받은 지 12시간도 안 돼 정상회담을 취소하기로 하고 관련 내용을 담은 서한을 24일 오전 9시43분 북측에 전달했다. 정상회담 취소를 논의하는 회의에는 펜스 부통령, 폼페이오 국무장관, 볼턴 보좌관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한은 트럼프 대통령의 구술로 작성됐다. 백악관의 다른 관계자는 로이터통신에 “펜스 부통령에 대한 북한의 대응이 ‘인내의 한계’였다”고 말했다.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량살상무기 조정관도 미국의소리(VOA) 방송과 인터뷰에서 “북한이 명백하게 선을 넘었다. 펜스 부통령을 ‘정치적 얼뜨기’라고 부른 건 현명한 행동이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 믿을 수 없는 북 ‘CVID’ 의지

트럼프 행정부는 줄곧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최단시간 내에 완성할 것을 북한에 요구해왔다. 하지만 ‘단계적, 동시적’ 조치를 강조하는 북한이 화답하지 않자 판을 깼다는 분석도 나온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이날 의회 청문회에 나와 “회담 성공 가능성을 낮게 봤다”며 회담 취소 배경을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직후 회담 취소를 발표한 것에 대해서도 핵실험장 폭파를 의미 있는 비핵화 조치로 보지 않는다는 해석이 나온다. 북한이 전문가들이 핵실험장 폐기를 참관하고 검증할 수 있게 하겠다고 폼페이오 장관과 한국에 약속해 놓고 이를 어겼다는 게 백악관의 불만이다.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우리는 (핵실험장 폐기) 실행을 감식할 증거를 갖지 못할 것”이라며 “터널이 향후 다시 사용될 수 있는 방법으로 폭파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비핵화가 아닌 ‘핵군축’을 언급한 것도 미국의 심기를 건드렸을 것으로 분석된다.

● “김정은, 다롄 방문 이후 달라져” 중국 배후설

북-미 정상회담에 입김을 불어넣고 있는 중국에 대한 불만도 정상회담 취소의 원인으로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을 두 번째 방문한 뒤에 태도 변화가 있었다”며 ‘시진핑(習近平) 배후설’을 여러 차례 거론했다. 7일 김 위원장이 중국 랴오닝성 다롄(大連)시에서 1박 2일간 머물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난 뒤 북한의 태도가 돌변했다는 것이다. 해리 카지아니스 국가이익센터(CNI) 국방연구소장은 “미중 무역 분쟁에서 중국이 북한을 지렛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을 다시 협상테이블로 끌어오기 위해 무역협상 카드를 활용해 중국에 최대한의 대북 제재 압박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북-미 회담 취소되기 까지

●북한 담화
△5월 16일/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비난하며 북-미 정상회담을 재고려하겠다고 발표
△5월 24일/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 “북-미 정상회담 재고 최고지도부에 건의하겠다” 담화 발표
△5월 24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정상회담 취소 발표

●다롄 회동
△5월 7~8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2차 중국 방문. 다롄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회동.
△5월 17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시 주석이 김정은에게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며 중국 배후설 제기
△5월 22일/ 트럼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두 번째 중국을 방문 이후 북한 태도에 변화가 있었다”며 재차 중국 배후설 제기

●비핵화 조건
△5월 8일/ 김정은, 시 주석과 회동 후 “단계적이고 동시적인 조치를 통해 궁극적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바란다”고 발표
△5월 13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북 핵무기 미국 테네시로 가져갈 것, 대량살상무기와 핵능력 폐기” 등 ‘리비아식 핵 폐기’ 공식화

뉴욕=박용특파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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