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시설 노출 우려한 北, 기자들 탄 열차 창문 가리고 한밤 운행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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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이르면 24일 ‘풍계리 폭파쇼’

南기자들 통신 연결 점검 북한의 함북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현장 취재를 위해 다른 외신 기자들보다 하루 늦은 23일 원산에 도착한 한국 기자들이 프레스센터에 둘러앉아 북한 진행요원들의 도움을 받으며 네트워크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신화통신 트위터 캡처
南기자들 통신 연결 점검 북한의 함북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현장 취재를 위해 다른 외신 기자들보다 하루 늦은 23일 원산에 도착한 한국 기자들이 프레스센터에 둘러앉아 북한 진행요원들의 도움을 받으며 네트워크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신화통신 트위터 캡처
한국 공동취재단이 방북 마지노선으로 여겨진 23일 우여곡절 끝에 북한 원산에 도착했다. 이제 관심은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이벤트를 언제,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지에 집중되고 있다. 5개국(한국 미국 영국 러시아 중국) 기자단은 이날 오후 원산에서 풍계리행 특별열차에 탑승했다. 핵실험장 폐기는 이르면 24일 오후 전문가 없이 기자단 참관 아래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 북한 “열차 이동 중에 블라인드 걷지 말라”


한국 취재단은 23일 낮 12시 반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정부 수송기인 ‘공군 5호기’를 타고 출발해 오후 2시 48분에 원산 갈마비행장에 도착했다. 북측은 공항에서 짐을 꼼꼼히 뒤지며 방사능 측정기, 위성전화기, 블루투스(무선) 마우스를 압수했다. 마우스를 압수한 것은 혹시 있을 전파간섭 우려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 취재단은 갈마호텔에서 외신 기자단과 합류한 뒤 오후 7시경 원산역에서 특별전용열차를 타고 풍계리로 떠났다. 기자들은 왕복 열차표를 사는 데 75달러(약 8만1000원)를 냈고, 열차 내 매끼 식사비는 20달러(약 2만2000원)였다. AP통신은 “취재진에 침대 4개가 놓인 열차 칸이 배정됐는데, 바깥 풍경을 볼 수 없도록 창문엔 블라인드가 쳐져 있었다. 기자들에겐 ‘블라인드를 걷지 말라’란 지시가 내려졌다”고 전했다. 한 정부 소식통은 “열차 출발을 저녁 시간으로 잡은 건 군사시설 노출을 감추려는 의도”라고 전했다.

기자단은 풍계리에 인접한 재덕역에 24일 오전 도착할 것으로 보인다. 원산∼풍계리 현장까지 직선거리는 270km 정도지만 철로와 도로를 통하면 437km에 달한다. 북한은 철로 사정도 좋지 않아 이동 시간만 최소 12시간 이상 걸릴 것으로 알려졌다. 재덕역에 도착해 다시 버스와 도보로 2시간가량을 이동해야 마침내 길주군 시내에서 약 42km 떨어진 만탑산(해발 2205m) 계곡에 위치한 풍계리 핵실험장에 닿을 수 있다.

○ ‘죽음의 땅’에서 야간 폭파쇼 펼쳐지나

풍계리에서 기자단 눈앞에 펼쳐질 첫 번째 광경은 ‘시꺼먼 입’을 벌린 갱도 입구일 것으로 보인다. 기자단은 북한이 마련한 4단짜리 전망대에 서서 풍계리 내 1∼4번 갱도 폭파를 지켜볼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앞서 1차 핵실험을 진행한 1번 갱도와 2∼6차 핵실험이 진행된 2번 갱도는 물론이고 아직 한 번도 핵실험을 하지 않은 3, 4번 갱도까지 모두 폐기하겠다고 공언했다.

핵실험장 폭파는 24일 오후에 시행될 가능성이 높다. 앞서 북한은 23∼25일 중 핵실험장을 폐기하겠다고 했는데 하루 여유를 두고 펼칠 가능성이 크다. 일단 24, 25일 모두 구름만 조금 낄 뿐 대체로 맑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24일 밤부터 25일 새벽 사이 구름이 많고 소나기가 내릴 가능성은 있다.

북한은 3, 4번 갱도의 경우 갱도 맨 안쪽부터 순차적으로 재래식 TNT 폭약 등을 이용해 폭파할 것으로 보인다. 1번 갱도는 1차 핵실험 이후 이미 붕괴된 만큼 별도의 폭파 절차도 필요 없지만 2번 갱도의 경우 폭파 작업이 간단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구조 자체가 구불구불한 데다 기폭실 주변 차단벽이 심각하게 훼손됐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방사성 물질이 누출되지 않게 정교한 사전작업이 요구된다는 얘기다.

북한이 이벤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야간 폭파’를 감행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2008년 영변 냉각탑은 덩치가 커서 무너져 내리는 게 보이는데 이번은 동굴 폭파로 외부로 보이는 시각적 효과가 크지 않다”면서 “유일한 건 폭파로 인한 불꽃인데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야간에 ‘폭죽놀이’를 하듯 폭파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북측이 폭파 전 기자단에 갱도로 들어가는 것을 허용할지도 관전 포인트다.

북한에서 고위급 인사가 함께 참관할지도 관심사다. 방사능 누출 우려가 높은 현장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찾을 가능성은 낮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신진우 niceshin@donga.com·이미지 기자 / 원산=외교부 공동취재단
#풍계리#한국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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