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 할매 천사’ 남모르게 뒷바라지… 故 구본무 회장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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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구본무 회장
고 구본무 회장
20일 타계한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소록도 할매 천사’로 알려진 오스트리아 간호사들에게 LG복지재단을 통해 매달 수백만 원의 생활비를 지원해 온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소록도 할매 천사로 알려진 이들은 전남 고흥군 소록도병원에서 약 40년 동안 한센병 환자를 돌본 마리아네 스퇴거 간호사(84), 마르가리타 피사레크 간호사(83)다. 고인은 소록도 할매 천사들이 고향으로 돌아간 뒤 최저 수준의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먼저 제안한 뒤 현재까지 매달 생활비를 지원해 오고 있다.

LG그룹 관계자는 “2016년 2월경 소록도병원 개원 100주년 기념식을 앞두고 스퇴거 간호사가 한국을 다시 찾으면서 그들의 사연과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사실이 외부로 알려졌다. 구 회장은 동아일보 기사를 읽은 뒤 평생 소록도에서 환자들을 위해 봉사했던 두 간호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고, LG복지재단을 통해 평생 생활비를 지원하기로 약속했다”고 말했다.

‘소록도 할매 천사’로 알려져 있는 마리아네 스퇴거 간호사(왼쪽)와 마르가리타 피사레크 간호사. 20일 타계한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2016년 초부터 이들에게 생활비를 지원해 왔다. 동아일보DB
‘소록도 할매 천사’로 알려져 있는 마리아네 스퇴거 간호사(왼쪽)와 마르가리타 피사레크 간호사. 20일 타계한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2016년 초부터 이들에게 생활비를 지원해 왔다. 동아일보DB
스퇴거, 피사레크 두 간호사는 각각 43년 9개월, 39년 1개월 동안 소록도에 머물며 한센병 환자를 돌봤다. 국내에서는 수녀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간호사다. 간호사를 직업으로 삼고 종교인의 생활 및 정신을 실천하는 ‘재속회’ 소속이다. 이 때문에 고국으로 돌아간 뒤 수녀원의 도움을 받지 못했고, 사실상 연금이 생활비의 전부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생활비 지원은 고인이 먼저 제안했다. 두 간호사는 “그렇게 많은 돈은 필요 없다”며 수차례 고사했지만 구 회장이 거듭 설득해 지원받기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스퇴거 간호사는 대장암 수술을 수차례 받았고, 피사레크 간호사는 현재 경증 치매 증상을 앓아 요양원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의사마저 접촉을 꺼리던 한센인을 밤낮으로 돌본 두 간호사의 봉사정신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스퇴거 간호사는 오스트리아의 한 간호대를 졸업한 뒤 1962년 “소록도에 간호 인력이 부족하다”는 소식을 듣고 소록도를 찾았다. 피사레크 간호사 역시 4년 뒤 소록도에 도착했다. 이후 맨손으로 한센인의 상처에 소독약을 바르고 함께 식사를 했다. 그러다 40여 년이 흐른 2005년 ‘건강이 악화돼 환자들을 돌볼 수 없어 부담만 주는 것이 미안하다’는 내용의 편지를 남기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고인은 평생 기업인으로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실천하려 애썼다. 기업이 사회적 의인(義人)에게 위로금을 전달하면 그 행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개인 혹은 기업이 힘을 보탤 수 있는 그 나름의 방법을 찾은 셈이다.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구본무#lg그룹#소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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