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한의 전쟁史]<8>로마의 몰락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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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와 미켈란젤로가 활약하던 시절, 피렌체는 인구 10만이 안 되는 도시였다. 당시의 인구 수준을 감안하면 작은 도시는 아니었지만, 프랑스 독일 스페인의 왕들과 맞설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래서 메디치가의 성공은 더욱 놀랍다. 이 작은 도시의 금융가였던 메디치가는 여성으로는 프랑스의 왕비 카트린을 배출하고, 남성으로는 교황 레오 10세와 클레멘스 7세를 차례로 배출했다.

당시 교황은 세속군주를 겸해서 로마의 통치자였다. 레오 10세는 사람은 좋았지만 부잣집 귀공자답게 현실감각이 전혀 없었다. 그의 이복동생인 클레멘스는 정반대로 대단한 수완가였다.

그러나 막상 권좌에 오르자 클레멘스의 현실감각은 모략과 술수로 둔갑했다. 그것도 마키아벨리의 말처럼 제대로 사용했으면 모르겠는데, 술수 그 자체가 취미인 것처럼 종잡을 수 없게 일을 벌였다. 큰일과 작은 일을 구분할 줄 몰라 일의 우선순위가 없고, 전략과 전술, 작전을 구분할 줄 몰랐다. 대책 없이 일을 벌였고, 그러다가 위기가 닥치면 천부적인 모략과 술수로 빠져나왔다. 그 능력 하나만은 기가 막혔다.

그는 무모하게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을 조종하겠다고 나섰다가 양측에서 분노를 샀다. 결국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의 군대가 차례로 이탈리아를 침공했다. 최악의 사태는 1527년 5월에 벌어졌다. 배신과 이중계약에 격노한 카를 5세의 군대가 로마에 입성했다. 클레멘스 7세는 산탄젤로 성으로 도망쳤지만, 카를의 군대는 로마를 철저히 약탈하고 파괴했다. 로마의 악몽으로 불리는 이 사태는 로마의 오랜 역사와 문화재, 르네상스의 유산을 초토화시켰다. 이 상황에서도 클레멘스는 또 교묘하게 살아남았다. 그러나 로마는 폐허가 되었다.

로마인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런 일을 벌였냐고 묻는다. 몇 가지 목적이 거론되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이런 위험을 감수할 일은 아니었다. 그가 증명한 것은 술수 정치의 참혹한 결말뿐이었다. 그러나 이것도 역사의 교훈이라고 하기에는 피해가 너무나 어처구니없다.
 
임용한 역사학자
#로마#피렌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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