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칼럼] “한국서 과일농사? 땅은 있어요?” 걱정스러운 눈길에…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1일 15시 34분


코멘트
곱슬머리에 키가 크고 내성적으로 보이는 외국남자가 사과밭 사이로 걸어가면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았다. 와서 말을 거는 사람들도 있었다.

“뭐요, 한국에서 과일 농사를 짓겠다고요? 그걸로 와인을 만들 계획이라고요? 와…. 그런데 레돔 씨, 땅은 있습니까?”

다들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뇨, 없습니다. 그럼 돈은 있나요? 일 년 정도 생활비는 있죠. 으허, 큰일 났네….”

프랑스를 떠날 때도 사람들은 우리 앞날을 걱정했는데 한국에 오니 더했다. 1년 뒤 우리는 가진 돈을 모두 탕진하고 거리에 나앉게 될지도 모른다. 아들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나는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곤 했다. 그러나 아침이 되면 태양이 떠올랐고 좀 낙관적인 마음이 되었다. ‘그래, 망해도 좋아. 적어도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했다는 말은 할 수 있겠지.’ 이렇게 마음을 달랬다.

초반 몇 달 동안 우리는 중고 자동차로 온 대한민국의 먼지를 휩쓸고 다녔다. 사과 연구소에도 갔고 포도 작목반에도 갔다. 과일 농사를 잘 짓는 농부들도 만났고 와인 만드는 분들도 만났다. 우리나라 산천은 엉망으로 파헤쳐진 곳도 있었지만 구불구불,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한 깊고 신비로운 곳도 있었다. 그런 풍경을 만나면 우리는 취한 듯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다시 자동차에 올랐다. 지역의 농업기술센터에 가서 우리의 처지와 희망사항을 풀어놓기도 했다.

“이 근처에 농사지을 땅 없을까요? 집도 필요하고, 작업할 창고도 필요합니다. 일단은 땅을 빌려서 농사짓고, 집도 작업장도 모두 임대할 생각입니다만.”

어디를 가든 이렇게 말했지만 반응은 시원찮았다. 나 자신이 현실성 없는 무모한 여자가 된 느낌이 들어 풀이 죽었다. 체계적으로 부동산으로 가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땅 없습니다. 요새 십만 원 이하 땅이 어디 있습니까?”

별로 돈 되지 않을 객이라고 생각했는지 부동산은 시큰둥했다. 레돔은 한국의 땅 값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프랑스의 열 배라고 했다. 사표만 던진다고 새로운 인생이 펼쳐지는 건 아니란다. 그런데 농사지을 땅이 그렇게 비싸니 거기서 황금사과를 키운다 해도 땅값 다 못 갚고 죽겠다. 남편은 한국말도 못하지, 아들 학교도 못 정했지.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겠구나…. 만나는 사람들마다 앞으로 어떻게 살 거냐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그들의 걱정스러운 눈길이 싫었다. 한마디로 ‘왕짜증’이 났다.

밤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면 그제야 내게도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 요즘 어떻게 지내니? 이렇게 안부를 물으면서 너무 미안했다. 이 아이가 잘 지낸다면 다 괜찮은 것이다. 나는 아이의 머리칼을 헝클어뜨리고 이마에 뽀뽀를 하면서 평상심을 되찾았다. 불안정하긴 했지만 지금 이대로의 인생도 꽤 괜찮은 것 같은데 다들 뭘 그리 걱정해주실까.

그나저나 미래 우리의 집은 어디에 있는지. 이 고민은 지금은 이웃이 된, 그때는 초면이었던 말총머리 이재윤 도예가를 만나면서 쉽게 풀려버렸다. 강원도를 거쳐 서울, 충주에 갔을 때였다. 그때 우리는 농사와 술에 관계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찾아갔다. 한국의 과일 품종과 주류 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큰 기대 없이 한마디 해보았다.

“지금 우리는 와인 만들 작업장을 구하는 중이랍니다.”

“그런가요? 저기 우리 옆집 도자기 공방이 비었는데 한 번 보실래요?”

이렇게 우연히, 그토록 고대하던 작업장이 구해졌다. 소나무로 둘러싸인 그 집이 마음에 들었다. 충주, 물이 많은 도시라고 했다. 한 번도 살아본 적 없지만 이사도 하기 전에 이 도시가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신이현 작가

프랑스인 남편 도미니크 에어케 씨와 충북 충주에서 사과와 포도 농사를 짓고 살고 있습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