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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전 1980년 5월 광주에서 행방불명된 7살 이창현 군 사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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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전 1980년 5월 광주에서 행방불명된 7살 이창현 군 사연은…

뉴시스입력 2018-05-16 14:13수정 2018-05-16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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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8일 제38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거행될 예정인 가운데 1980년 5월 광주에서 행방불명된 이창현(당시 7살) 군의 사연이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16일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에 따르면 1980년 당시 이 군은 광주 양동초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이 군은 어머니와 누나·동생과 함께 광주 양동에서 지냈다. 건축업을 하던 아버지 이귀복(당시 44세) 씨는 전남 완도에서 생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5·18 민주화운동으로 광주 지역 학교에는 휴교령이 내려졌다.

이 군은 5월 19일 화장품 외판원을 하던 어머니가 외출한 사이에 집을 나섰다.

일을 마치고 온 어머니는 저녁 때까지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 광주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아들을 애타게 찾았다.

길을 헤메던 어머니는 도청 앞에서 만난 군인들에게 아들의 인상착의를 설명하며 행방을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냉담했다. 군인들은 “집 나간 아이는 찾을 생각말고 집에 있는 자식관리나 잘하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어머니는 두려움에 떨며 집 밖을 나서지 못하고 남은 자식들을 보살폈다.


뒤늦게 완도에서 광주에 돌아온 아버지 이 씨는 부인을 질책한 뒤 아이를 찾아 나섰다.

이 군이 행방불명된 뒤 이 씨의 가정에는 불화가 찾아왔다. 이듬해 어머니는 남은 자식들을 데리고 인천으로 이사했다.

광주에 남아있으면 또래 아이들만 봐도 잃어버린 아들이 자꾸 생각이 나 괴롭다는 이유에서였다.

아버지 이 씨는 아들을 찾고자 광주에 남았다. 1989년 이 씨는 5·18 유족회가 발간한 ‘광주민중항쟁 비망록’이라는 책을 구매했다.

이 책 1면에 실린 한 장의 사진 속에서 이 씨는 한눈에 창현이를 알아봤다.

사진 속 아이는 총상을 입은 채 숨져 있는 모습이었다. 이 씨는 책을 들고 국민운동본부로 달려가 사진감정 의뢰 신청방법을 수소문했다.

사진감정을 맡은 검사는 시신사진과 제출서류를 비교해 가며 이 씨에게 몇 가지를 물었다.

이 씨는 ‘아이 엄마도 사진을 보고 한눈에 창현임을 알아봤다. 부모가 어찌 자식을 몰라 보겠느냐’ 며 소리쳤다.

검사는 유골을 찾아 감정해봐야 한다며 이 씨를 돌려보냈다. 그 날 이후 검사는 다시 이 씨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이 씨는 수차례 사진감정을 요구했지만 그 때마다 돌아온 것은 ‘서류를 분실했다’ 등의 변명뿐이었다.

1994년 이 군은 뒤늦게 5·18 민주화운동 행방불명자로 인정됐지만 끝내 이 군의 시신은 찾지 못했다.

1997년 5월4일 국립 5·18 민주묘지 내 행불자 묘역에 이 군의 묘비가 세워졌다. 묘비에는 시신을 찾지 못한 이 군의 넋을 위로하는 ‘이창현 군의 령’이라는 글자가 새겨졌다.

묘비 뒷면에는 ‘7세의 나이로 학교를 다닌 지 2개월 만에 M16 총상·공수부대·내 아들 창현이를 아버지 가슴에 묻는다’ 가 쓰여져 있다.

오는 18일 거행될 5·18 민주화운동 38주년 기념식에서는 이창현 군과 그의 아버지 이귀복(82) 씨의 안타까운 사연이 영화와 드라마를 결합한 장르인 ‘시네라마 형식’으로 18분 동안 펼쳐진다.

‘못다 핀 꽃 한송이’ 노래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이 군의 아버지가 공연에 직접 참여해 사연을 공개한다.


【광주=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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