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섬의 무법자, 야생소 20마리… “농작물-약초 먹어치우고 묘지 훼손”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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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법 애매 ‘야생가축’ 처리 골머리

외양간을 뛰쳐나가 산이나 들판에서 살게 된 소는 ‘가축’일까, ‘야생동물’일까?

요즘 전남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 주민들의 고민거리다. 가거도는 목포항에서 136km 떨어진 섬이다. 쾌속선을 타도 4시간을 가야 하는 낙도다. 주민은 508명이다. 섬에는 해발 639m의 독실산이 있다. 주민들의 고민은 독실산에 살고 있는 소 20여 마리다. 좀처럼 보기 드문 ‘야생소’다.

시작은 30여 년 전이다. 외양간 울타리를 나간 소 몇 마리가 야생에 익숙해져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시간이 지나며 야생소는 20마리 넘게 늘어났다. 무게가 400kg 안팎인 소도 많다. 덩치는 크지만 동작은 민첩하다. 멀리서 인기척만 들려도 마치 토끼처럼 잽싸게 숲속으로 사라진다. 외양간에서 키우는 소를 생각하면 큰코다친다. 주민들이 소를 생포할 엄두조차 못 내는 이유다.

야생소 피해는 갈수록 늘고 있다. 가거도 명물인 동백·후박나무는 물론이고 약초와 희귀식물까지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운다. 묘지를 훼손하고 식수원인 계곡물까지 오염시키고 있다. 주민 안전을 위협하기도 한다. 가거도 대풍마을 이장 고모 씨(66)는 “지난해 10월 도로를 가로막은 야생소들을 쫓아내다가 갑자기 소들이 공격 자세를 취해 놀라서 피한 일도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4년 전부터 야생소 포획을 요청했다. 그러나 야생소의 애매한 ‘신분’ 탓에 실제 포획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만약 야생동물로 인정되면 유해야생동물 판정 절차를 거쳐 사냥용 총기를 이용해 포획할 수 있다. 하지만 가축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축산법에 따라 반드시 생포 후 도축장에 끌고 가 처리해야 한다. 총기 사용이 불가능하다. 생포를 위해 20m 정도까지 접근해 마취총을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가거도 독실산의 지형이 워낙 가팔라 생포가 쉽지 않다. 일부 주민이 야생소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도 걸림돌이다.

신안군 관계자는 “관련 법이 여럿이라 어떤 걸 적용할지 결정도 쉽지 않다. 오지인 섬마을이다 보니 인력과 예산 확보도 어려운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신안=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야생가축#야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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