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극본-배우까지… 연극계 女어벤져스 뭉쳤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24일 03시 00분


코멘트

연극 ‘엘렉트라’의 두 주인공 배우 장영남-서이숙

장영남(왼쪽)은 다소 소심한 반면 서이숙은 호탕한 편이다. 서이숙은 “영남이가 7년 만에 무대에 서다 보니 가끔 조바심을 낸다. 그럴 때면 ‘이번에 한 번 망한다고 해서 너 안 죽어’라고 달랜다”고 했다. 장영남은 “묘하게 선배의 이 말에 힘을 얻는다”며 웃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장영남(왼쪽)은 다소 소심한 반면 서이숙은 호탕한 편이다. 서이숙은 “영남이가 7년 만에 무대에 서다 보니 가끔 조바심을 낸다. 그럴 때면 ‘이번에 한 번 망한다고 해서 너 안 죽어’라고 달랜다”고 했다. 장영남은 “묘하게 선배의 이 말에 힘을 얻는다”며 웃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올 초 연극계에 불거진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 이후 ‘거장’이라 불리던 일부 남성 연극인들이 하나둘 무대에서 퇴출당했다. 성추행 가해자들의 잘못은 같은 작품에 참여한 연극인 전체에 피해로 돌아왔다. 공연이 취소된 작품도 부지기수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연극계에선 농담 반 진담 반 “여성 연극인 모시기에 경쟁이 붙었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래서일까. 26일 서울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르는 연극 ‘엘렉트라’는 여성 중견 연출가 한태숙, 각종 희곡상을 휩쓴 고연옥 작가, 7년 만에 연극계에 복귀한 배우 장영남,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선보이는 서이숙이 참여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연극계의 여성 어벤져스 팀’이란 평가가 나올 정도다.

극 중에서 모녀지간으로 나오는 배우 장영남(45)과 서이숙(50)을 12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두 배우는 활동 반경을 TV와 영화 쪽으로 넓히기 전 대학로를 주름잡았다. 극단 ‘목화’ 출신의 장영남은 ‘대학로의 이영애’로 통했고, 서이숙은 극단 ‘미추’의 대표 여배우였다. 장영남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어머니를 살해하는 딸 엘렉트라 역을, 서이숙은 남편을 죽음에 이르게 한 클리타임네스트라 역을 맡았다.

“영남이랑은 2009년 연극 ‘갈매기’에 함께 출연한 뒤 9년 만이에요. 다섯 살 터울인데 글쎄 이번에 모녀지간으로 나와요. 제가 약간 억울하지만…. 워낙 캐릭터가 매력적이라 받아들였죠.”(서이숙)

두 사람이 ‘엘렉트라’ 출연을 결심한 데에는 연출가 한태숙(68)의 힘이 컸다. 장영남은 2011년 연극 ‘산불’ 이후 7년 만의 무대 복귀작이라 작품 선택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는 “연극에서 여배우는 주체가 되기보다 치고 빠지는 캐릭터들을 주로 맡기 때문에 소진되는 느낌이 많았는데, 이 작품은 달랐다”며 “무엇보다 한태숙 연출가에 대한 믿음이 가장 컸다”고 했다.

“한 선생님은 극중 인물의 정상적 관계를 지극히 싫어해요. 항상 삐뚤어진 상태의 인물이 만나길 바라죠. 근데 자세히 보면 인간의 내면을 누구보다 치밀하게 다뤄요. 배우 입장에선 상당히 매력 있는 연출가죠.”(서이숙)

이들뿐만 아니다. 1000만 영화 ‘신과 함께’에서 자홍(차태현 역)의 어머니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 예수정도 출연을 자처하며 단역을 맡았다. “캐스팅이 거의 마무리될 시점에 예수정 선배가 ‘나도 맡을 게 없느냐’며 출연을 자처하셨어요. 내공 있는 선배 배우가 ‘게릴라’의 일원으로 참여하시는 걸 보고 배우들이 다시 한번 전의를 다졌죠.”(서이숙)

연극 포스터. LG아트센터 제공
연극 포스터. LG아트센터 제공
연극 ‘엘렉트라’의 키워드는 복수다. “복수와 용서, 이 두 단어에 얼마나 많은 감정들이 겹쳐 있겠어요. 어머니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는 엘렉트라의 캐릭터가 연기할수록 어려운 이유입니다.”(장영남)

“과연 누가 누구에게 복수하고, 용서할 자격이 있을까요. 작품이 관객에게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이기도 합니다.”(서이숙)

26일부터 5월 5일까지. 3만5000∼5만5000원. 02-2005-0114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엘렉트라#장영남#서이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