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글 잘 쓰고 싶다면, 품격을 높여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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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산문의 길, 스타일/F.L 루카스 지음/이은경 옮김/480쪽·2만2000원·메멘토


‘문체의 시작은 인격이다.’

책의 서두부터 등장하는 논쟁적인 한 구절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마치 누군가의 패션스타일이나 헤어스타일이 곧 그 사람의 인격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단정 짓는 것만큼이나 논란을 낳을 법하다. 특정 스타일을 고집한다고 해서 ‘인격적’으로 시대 기준에 뒤처진다거나 평균 이하라고 볼 순 없으니까. 문체 역시 그런 유(인격과는 무관한)의 ‘스타일’인 것 아닌가?

하지만 저자는 지금까지 문체에 관한 논의는 대부분 잘못된 지점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단어의 선택, 형용어구 삽입 등 글쓰기 기술에만 초점을 맞춘 건 건물 초석을 무시하고 상부 장식물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과 같기 때문이라는 것. 문체는 일반적인 ‘스타일’과는 다르다. 저자는 “문체는 타인과 인간이 접촉하는 수단”이라고 말한다. 단어라는 옷을 입은 인격이 발화 속에서 구현된 결과물, 즉 ‘인품’이란 것이다.

이 책은 그리스어 라틴어 프랑스어 등 7개 언어에 정통했던 언어학자 겸 문학평론가였던 F.L 루카스(1894∼1967)가 케임브리지대 교수로 재직한 동안 맡았던 글쓰기 강연을 엮었다. 글쓰기에 관한 책이 넘쳐나는 시대지만 작법이나 기법에 대한 논의보다 인격 문제를 먼저 들고 나온다는 점에서 초장부터 범상치 않다.

저자는 좋은 글을 쓰려면 글쓴이의 인격이 겉보기뿐 아니라 ‘실제로도’ 좋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스 철학자 롱기누스는 “문체의 절정은 숭고한 인격의 울림”이라고 말했다. 그럴 듯하게 써도 종국에는 탄로 난다. 품격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수사학 지침이나 제유법, 환유법 공부보다는 차라리 성격을 고치는 게 낫다. 새뮤얼 버틀러는 “조바심, 성급함 같은 결점을 고치는 게 문체에 도움이 된다”고 고백했다.

이렇게 문체의 기초를 우선 인격에 둔 후에는 낙천적 기질, 건강과 활력 등을 바탕으로 ‘좋은 글’이라는 구조물을 완성해가는 방법을 안내한다. 독자에 대한 가장 기본적 예의는 명료성이다. “모호함은 가증스러운 허식”(몽테뉴)이다. 간결성도 중요하다. “글이 지루해지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생략하는 기술”(몽테스키외)이 필요하다.

낙천적 기질과 유쾌함이 좋은 글에 꼭 필요한 요소라고 꼽은 것도 재미있다. 낙천적 기질은 세련성의 일부이며 이것이 부족한 것은 미학적 문학적 결함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가장 나쁜 글은 불편한 심기에서 쓴 글이다. 유쾌하지 않을뿐더러 설득력을 갖지도 못한다. 저자는 “불편한 심기에서 쓴 글의 가장 좋은 배출구는 휴지통”이라고 말한다.

매체 환경이 변하면서 누구나 작가나 저자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됐지만 ‘좋은 글’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다. 분출하듯 올린 글로 온라인이 도배되는 시대, 품격 있는 글을 쓰기 위한 기본을 되새겨 본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책이다. 저자의 기지 넘치는 문체관이 호메로스부터 단테, 셰익스피어 등 시대를 넘나드는 풍부한 고전 예시들과 함께 어우러져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좋은 산문의 길#f.l 루카스#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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