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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스포츠] ‘배구 코트의 포청천’ 이 말하는 대한민국 심판계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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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스포츠] ‘배구 코트의 포청천’ 이 말하는 대한민국 심판계 현주소

안영식 전문기자입력 2018-04-20 16:42수정 2018-04-20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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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아시아배구연맹 심판위원은 국가대표 출신이다. 배구 국제심판 1000여 명 중 10명 안팎인 ‘심판의 심판’으로 불리는 국제배구연맹(FIVB) 심판을 한국인으론 유일하게 1998~2010년까지 역임했다. “심판은 선수 못지않은 자기관리와 체력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그는 지금도 현역 선수 때와 똑같은 체형(190cm, 87kg)을 유지하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국내 스포츠계의 오심 논란, 판정 시비는 끊이질 않는다. 신임 총재나 협회장의 취임사 단골 항목은 ‘심판 개혁과 처우개선’이지만 말 뿐이다. 해가 바뀌어도 4대 프로 종목(야구, 축구, 농구, 배구)의 각종 게시판에는 심판 자질에 대한 원성이 빼곡하다.

특히 지난 시즌 남자 프로배구는 심각한 오심으로 해당 경기의 주심과 부심은 무기한 출장정지, 경기감독관과 심판감독관은 무기한 자격 정지의 중징계를 받을 정도의 홍역을 치렀다. 비디오 판독에서 확연히 구분됐는데, 거꾸로 판정했으니 명백한 인재(人災)다. 프로야구와 농구, 축구에서도 판정 관련 불미스러운 일들이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배구 코트의 포청천’ 김건태 아시아배구연맹 심판위원(63)을 만났다. 그는 대한체육회 클린심판 아카데미에서 산하 57개 종목 심판 2700여 명을 대상으로 ‘좋은 심판의 조건과 판정’이라는 주제로 5년째 강의를 하고 있다. 콧대 높은 프로야구 심판들을 대상으로 특강도 했다. 그에게 ‘대한민국 심판의 현주소와 과제’를 들어봤다.

-좋은 심판이란?

“3C가 필수다. 클린(Clean·청렴), 클리어(Clear·명쾌), 커렉트(Correct·정확). 요즘 우리 사회 화두가 클린인데, 세탁소만 클린이 중요한 게 아니다. 청렴하지 못한 심판이 진행한 경기 결과는 뻔하다. 3C로 물 흐르듯 경기를 진행하는 게 좋은 심판이다. 관중은 심판의 시도 때도 없는 휘슬 소리 들으러 온 게 아니다. 경기의 주인공은 선수와 감독이다. 심판은 조력자일 뿐이다. ‘경기가 끝났을 때 심판이 누구였는지 기억나지 않아야 한다’는 야구 격언도 있다.”

-올바른 판정을 저해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학연, 지연, 팀 관계자와의 유착 등 문제점이 수두룩하다. 전국체전 등 시도대항전은 이겨야 팀이 지자체의 지원금을 받기 때문에 유혹이 많다. 한편 프로 종목 심판은 총재나 협회장 눈치 보기가 심각하다. 생사여탈권을 그들이 쥐고 있으니 ‘무언의 압력’을 받은 판정이 종종 나오고 있다. 지난 시즌 프로농구에서 시끄러웠던 홈 콜(홈 팀에 유리한 판정), 스폰서 콜(타이틀 스폰서 팀에 유리한 판정)은 바로 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보상 콜도 문제다. 그것은 결코 공평한 것이 아니다. 오심은 한번으로 끝내야 한다.”
김건태 아시아배구연맹 심판위원은 국가대표 출신이다. 배구 국제심판 1000여 명 중 10명 안팎인 ‘심판의 심판’으로 불리는 국제배구연맹(FIVB) 심판을 한국인으론 유일하게 1998~2010년까지 역임했다. “심판은 선수 못지않은 자기관리와 체력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그는 지금도 현역 선수 때와 똑같은 체형(190cm, 87kg)을 유지하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권위 있는 심판이 배출되지 못하는 또 다른 원인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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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우가 열악하다보니 심판을 하겠다는 자원자의 자질 자체가 떨어진다. 심판도 타고난 재능이 중요하다. 그런 사람을 심판으로 발굴해 양성해야 하는데, 지금 우리나라에 그런 시스템을 갖춘 종목은 프로, 아마를 막론하고 없다. 심판을 업그레이드 시킬 인스트럭터가 없다. 심판위원장이 심판 출신이 아닌 프로 종목도 있다. 어처구니가 없다. 훌륭한 심판이 나오는 게 개천에서 용 나는 것처럼 힘든 게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스타플레이어 출신 감독과 무명선수 또는 비선수 출신 심판 사이의 우월감과 자격지심이 감정싸움을 낳고 판정에 영향을 미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 프로 종목 심판들의 연봉 등 처우는…?

“프로야구 심판을 제외하면 나머지 종목은 무늬만 프로다. 프로야구 심판은 4대 보험 혜택을 받고 고참 심판은 연봉 1억 원이 넘는다. 나머지 종목은 4대 보험은 고사하고 퇴직금도 없다. 프로배구 심판의 경우 전임심판이 연봉 4000만 원, 선심은 연봉 2000만 원 정도다.”
김건태 아시아배구연맹 심판위원은 국가대표 출신이다. 배구 국제심판 1000여 명 중 10명 안팎인 ‘심판의 심판’으로 불리는 국제배구연맹(FIVB) 심판을 한국인으론 유일하게 1998~2010년까지 역임했다. “심판은 선수 못지않은 자기관리와 체력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그는 지금도 현역 선수 때와 똑같은 체형(190cm, 87kg)을 유지하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능력이 떨어지는 심판은 단호히 퇴출시켜야 한다고 독한 말씀을 하셨는데….

“오심의 종류는 3가지다. 기량 미달로 인한 판정 미숙, 편파 판정, 인간 한계를 뛰어넘는 상황에 대한 판정 등이다. 앞의 두 가지는 용서받을 수 없다. 몇 번 기회를 줘서 향상이 없으면 바로 잘라내야 한다. 오심은 게임의 흐름은 물론 승패를 바꾼다. 결국은 팬들을 떠나게 만든다. 얼마 전 남자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4차전 종료 17초를 남기고 DB 이상범 감독에게 테크니컬 파울을 준 것은 너무나도 미숙한 경기 운영이었다.”

김건태 심판위원(오른쪽)이 2010년 12월 카타르(도하) 세계클럽배구선수권대회 결승전에 앞서 국제배구연맹(FIVB) 공로상을 받고 있다.
-스포츠 외교력 강화가 절실하다고 역설하시는데….

“대표적인 예로 한국 축구심판은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월드컵 무대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도 일본과 중동 심판은 가는데 한국은 못 간다. 각종 국제스포츠연맹이나 협회의 수장을 맡은 한국인이 없으니 그렇다. 올림픽 각 종목에서 한국을 대표할만한 눈에 띄는 국제심판이 없다. 한국 심판이 참가해야 우리선수들이 적어도 판정 불이익은 면할 수 있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말이 있는데….

“변명일 뿐이다. 오심이 경기의 일부인 시대는 지나갔다. 현대 스포츠는 비디오 판독, 호크아이 등 판정에 첨단 장비의 도움을 받고 있다. ‘비디오 판독 제한 횟수 이후 발생한 오심’ 등은 제도적으로 보완하면 될 일이다. 지난 시즌 프로배구 한국전력-KB손해보험 경기의 연속 오심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내 유일의 국제배구연맹(FIVB) 심판 시절 김건태 심판이 국내 프로배구 주심을 보며 공이 아웃됐다는 수신호를 하고 있는 모습.

-목격한 오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013년 국내 남자프로배구 대한항공-러시앤캐시 경기 3세트에서 56-54라는 농구 스코어같은 진기록이 나왔다. 이것이 ‘오심에 의한 명승부였다’는 것을 아는 팬들은 많지 않다. 당시 40-41로 뒤지고 있던 대한항공 김종민 감독은 판정에 항의하다 두 번째 옐로카드를 받았다. 경황이 없던 주심은 러시앤캐시에 1점 주는 것을 깜빡했다. 제대로 심판을 봤다면 3세트는 러시앤캐시의 42-40 승리로 끝났어야 했다.”
-본인이 주심 본 경기 중 평생 잊지 못할 경기는?

“2003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브라질과 유고슬라비아의 월드리그 결승전이다. 1만3000여 명의 관객이 모였고 세계 47개국에 생중계됐다. 브라질이 최종 5세트에서 듀스 접전 끝에 31-29로 이겼다. 국제배구연맹(FIVB) 100년 역사에 최고의 명승부로 꼽히는 경기다.”
김건태 심판이 2013년 자신의 현역 심판 은퇴 경기인 프로배구 우리카드와 한국전력의 경기에 주심으로 나와 경기 시작을 알리는 휘슬을 불고 있다.

-배구뿐만 아니라 다른 종목에도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야구, 농구, 축구 등의 주요 경기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경기도 새벽에 일어나 생중계로 본다. 성악을 하는 사람이 피아노, 바이올린 연주회에 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시야를 넓혀야 실력이 는다. 스포츠는 종목 마다 규칙만 다를 뿐 경기운영 요령은 똑같다. 심판 입장에서 보면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가 세계 최고의 스포츠다. 국내 프로야구는 들쑥날쑥한 스트라이크 존 때문에 잡음이 많은데, 판정의 편차를 최대한 좁히는 건 심판의 의무다.”

안영식 전문기자ysa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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