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납북→재결합…최은희 “신상옥, 지옥까지도 나를 따라올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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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년 4월 17일 11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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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986년 북한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뒤 미국 워싱턴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울먹이는 최은희 씨와 신상옥 감독. 동아일보 DB
사진=1986년 북한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뒤 미국 워싱턴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울먹이는 최은희 씨와 신상옥 감독. 동아일보 DB
“그가 저를 찾기 위해 온갖 위험을 무릅썼다는 사실이 고마웠어요. 지옥까지도 나를 따라올 사람…”

16일 원로배우 최은희 씨(본명 최경순)의 별세 소식이 전해진 가운데, 파란만장한 삶을 함께 한 최은희 씨와 그의 남편 신상옥 감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2007년 최 씨의 여성동아 인터뷰에 따르면, 최 씨와 신 감독의 인연은 1953년 신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코리아’를 통해 시작됐다. 이후 신 감독은 최 씨가 하는 공연을 빠짐없이 보러 왔고 두 사람 사이는 점점 가까워졌다.

하지만 당시 최 씨는 영화 촬영감독 김학성 씨와 사실혼 관계였다. 최 씨에게 폭력을 일삼던 김 씨는 최 씨와 신 감독이 만남을 이어오고 있음을 알게 됐고, 두 사람을 간통죄로 고소해 언론에 두 사람 사이가 공개됐다.

김 씨와 최 씨는 사실혼 관계에 불과했기 때문에 간통죄는 성립되지 않았지만, 최 씨는 남편을 버리고 젊은 남자에게 간 여자가 됐고 신 감독은 불행한 처지에 있는 영화계 선배의 부인을 빼앗은 파렴치한 인간 취급을 받았다.

이후 최 씨와 신 감독은 1954년 3월 허름한 여인숙에서 둘만의 결혼식을 올린 후 영화만을 위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결혼하고도 한참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신 감독은 ‘우리에겐 영화가 자식이나 다름없다’며 병원에 가보자는 최 씨를 만류했다. 결국 두 사람은 3년 터울의 딸과 아들을 입양했다.

그러던 중 최 씨는 신 감독이 젊은 여배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다는 걸 알게 됐다. 신 감독은 ‘아이가 없어도 행복하다’고 말해왔기에 최 씨의 배신감을 더욱 컸다. 결국 최 씨는 1976년 신 감독과 20여 년의 결혼생활을 끝낸다.

두 사람은 1983년 북한 다시 만나게 됐다. 1978년 최 씨가 홍콩에서 강제 납북된 뒤 그 사실을 알게 된 신 감독이 그를 찾기 위해 홍콩에 갔다가 역시 납북됐던 것이다. 신 감독은 5년여 동안 감옥에 갇혀 갖은 고생을 한 후 최 씨를 만날 수 있게 됐다.

최 씨는 여성동아를 통해 “그를 다시 만난 날, 저를 찾기 위해 온갖 위험을 무릅썼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지옥까지도 나를 따라올 사람…. 그 앞에서 인간사의 잘잘못을 따지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분노와 원망, 섭섭했던 마음이 모두 다 사라지더라”라며 당시 심경을 밝혔다.

그들은 북한에서 다시 인연을 맺고 영화를 만들었다. 1985년 완성한 작품 ‘소금’으로 최 씨는 그해 모스크바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1986년 베를린영화제 참석을 핑계로 두 사람이 함께 외국에 나간 뒤 미국으로 망명해 탈출에 성공했다. 이듬해 다시 혼인신고를 했고 1989년 귀국했다.

2006년 신 감독은 C형 간염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지만, 최 씨는 이후에도 신상옥청년영화제와 기념사업회 등의 활동을 하면서 신 감독을 기억했다.

윤우열 동아닷컴 기자 cloudanc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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