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저를 찾기 위해 온갖 위험을 무릅썼다는 사실이 고마웠어요. 지옥까지도 나를 따라올 사람…”
16일 원로배우 최은희 씨(본명 최경순)의 별세 소식이 전해진 가운데, 파란만장한 삶을 함께 한 최은희 씨와 그의 남편 신상옥 감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2007년 최 씨의 여성동아 인터뷰에 따르면, 최 씨와 신 감독의 인연은 1953년 신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코리아’를 통해 시작됐다. 이후 신 감독은 최 씨가 하는 공연을 빠짐없이 보러 왔고 두 사람 사이는 점점 가까워졌다.
하지만 당시 최 씨는 영화 촬영감독 김학성 씨와 사실혼 관계였다. 최 씨에게 폭력을 일삼던 김 씨는 최 씨와 신 감독이 만남을 이어오고 있음을 알게 됐고, 두 사람을 간통죄로 고소해 언론에 두 사람 사이가 공개됐다.
김 씨와 최 씨는 사실혼 관계에 불과했기 때문에 간통죄는 성립되지 않았지만, 최 씨는 남편을 버리고 젊은 남자에게 간 여자가 됐고 신 감독은 불행한 처지에 있는 영화계 선배의 부인을 빼앗은 파렴치한 인간 취급을 받았다.
이후 최 씨와 신 감독은 1954년 3월 허름한 여인숙에서 둘만의 결혼식을 올린 후 영화만을 위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결혼하고도 한참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신 감독은 ‘우리에겐 영화가 자식이나 다름없다’며 병원에 가보자는 최 씨를 만류했다. 결국 두 사람은 3년 터울의 딸과 아들을 입양했다.
그러던 중 최 씨는 신 감독이 젊은 여배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다는 걸 알게 됐다. 신 감독은 ‘아이가 없어도 행복하다’고 말해왔기에 최 씨의 배신감을 더욱 컸다. 결국 최 씨는 1976년 신 감독과 20여 년의 결혼생활을 끝낸다.
두 사람은 1983년 북한 다시 만나게 됐다. 1978년 최 씨가 홍콩에서 강제 납북된 뒤 그 사실을 알게 된 신 감독이 그를 찾기 위해 홍콩에 갔다가 역시 납북됐던 것이다. 신 감독은 5년여 동안 감옥에 갇혀 갖은 고생을 한 후 최 씨를 만날 수 있게 됐다.
최 씨는 여성동아를 통해 “그를 다시 만난 날, 저를 찾기 위해 온갖 위험을 무릅썼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지옥까지도 나를 따라올 사람…. 그 앞에서 인간사의 잘잘못을 따지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분노와 원망, 섭섭했던 마음이 모두 다 사라지더라”라며 당시 심경을 밝혔다.
그들은 북한에서 다시 인연을 맺고 영화를 만들었다. 1985년 완성한 작품 ‘소금’으로 최 씨는 그해 모스크바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1986년 베를린영화제 참석을 핑계로 두 사람이 함께 외국에 나간 뒤 미국으로 망명해 탈출에 성공했다. 이듬해 다시 혼인신고를 했고 1989년 귀국했다.
2006년 신 감독은 C형 간염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지만, 최 씨는 이후에도 신상옥청년영화제와 기념사업회 등의 활동을 하면서 신 감독을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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