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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비리 내부고발 했더니… 대학원생 미래가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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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비리 내부고발 했더니… 대학원생 미래가 날아갔다

이지훈기자 , 김자현기자 입력 2018-04-12 03:00수정 2018-04-12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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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 불안에 교수갑질 침묵 일쑤 “내가 경찰에 잡혀가면 너희도 낙동강 오리알 신세야. 너희처럼 멍청한 애들 받아주는 교수가 있겠느냐.”

지난달 서울의 한 사립대 A 교수가 대학원 제자들에게 말했다. 이어 “증거를 없애라”라고 지시했다. A 교수는 이들의 인건비를 가로챈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던 중이었다. 제자를 연구원으로 허위 등록해 정부나 기업의 인건비 지원을 받은 뒤 가로챈 혐의다.

A 교수는 증거 인멸을 지시하며 피해자인 제자들에게 공범이 될 것을 요구했다. 이어진 조사에서 교수는 범행을 부인했지만 구속됐다. 제자들의 진술 덕분이다. 대학원생 서모 씨(29)는 “그분 밑에서 배운 거라곤 사기와 횡령, 증거 인멸뿐이다. 이런 관행이 후배들에게 대물림되는 걸 막기 위해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 ‘공범이 돼라’고 강요받는 학생들

그러나 A 교수의 구속은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이었다. “낙동강 오리알이 될 것”이라는 협박은 현실이 됐다. 학교 측은 법원 판결 전까지 새로운 지도교수 배정 등 후속 조치를 내릴 수 없다고 했다. A 교수와 함께 했던 대학원생의 모든 연구와 학업이 중단됐다. 장학금도 끊겼다. 학생들은 ‘비리 교수의 제자’라는 낙인까지 찍혔다. 정모 씨(29)는 “(진술을) 후회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직장까지 그만두고 어렵게 들어온 대학원인데 진로가 불안해 잠이 안 온다”고 털어놨다.

제자의 인건비를 가로채는 교수의 갑질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지금도 서울지역 사립대 2곳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똑같은 피해가 반복되지만 학생들은 2차 피해를 우려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본보 취재팀은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A 교수와 또 다른 사립대 B 교수의 지도를 받은 재학생과 졸업생 10명을 인터뷰했다. 재학생 6명은 견디다 못해 학업 중단까지 각오한 상태이고 졸업생들은 학위 취득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에야 피해 사실을 수사기관에 알렸다.

두 교수의 수법은 기존에 적발된 교수들과 비슷했다.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연구과제를 따낸 뒤 연구원 수를 부풀려 실제 필요한 액수보다 많은 돈을 받아냈다. 또 학생들 통장으로 지급되는 인건비 중 절반 이상을 추가로 상납받았다. 학생들은 매달 160만∼180만 원을 받았지만 30만∼70만 원을 뺀 나머지를 교수에게 송금했다. 지원 기관에는 전액 수령했다고 거짓으로 서명했다. 교수들은 “내 덕분에 연구에 참여해 그거라도 벌게 된 것 아니냐”며 정당화했다. 학생 김모 씨(39)는 “선배들로부터 내려온 관행이었고 반발하기에는 (학생들의) 힘이 너무 약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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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힘든 건 인격 모독이었다. “너희처럼 멍청한 애들은 밤새 일해야 한다” “내 초등학생 딸보다 영어도 못하면서 잠이 오냐” “내 신발에 먼지만도 못한 것들”이라는 등의 폭언까지 들었다. 한 학생은 “밤새워 만든 보고서를 제출했더니 교수가 책상을 내리치며 ‘가난한 너희들이 나 아니면 다른 데 가서 뭘 하겠느냐. 제대로 하라’고 욕설을 퍼부었다”고 말했다.

○ 폭로와 고발 후 닥친 잔인한 현실

학생들은 참다못해 교수의 비리를 고발했다. 하지만 학생들에겐 더 잔인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횡령 금액이 수십억 원을 넘어서지 않는 이상 대부분의 비리 교수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학교로 복귀한다.

인건비 착취 등 연구비 횡령이 유죄로 인정돼도 대부분 벌금이나 집행유예에 그친다. 학생들이 “더럽고 치사해도 조금만 참자”고 스스로를 달랠 수밖에 없는 이유다. 11일 전국대학원노동조합에 따르면 지난해 학생 연구비 횡령으로 1심 판결이 난 5건 중 실형 선고는 1건에 불과했다. 집행유예가 3건, 벌금형이 1건이었다. 연구비 10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된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연구비 유용이 관행처럼 행해진 점을 참작했다”는 게 이유였다.

대학도 정직 등의 징계를 내린 뒤 강단에 복귀시키는 경우가 많다. 서울의 한 사립대 관계자는 “연구과제로 들어온 금액은 교수가 따온 예산이라는 인식이 많다. 워낙 광범위한 관행이라 해임 등 무거운 처분을 내리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학생 남모 씨(28)는 “교수를 고발하지 않으면 횡령의 공범이 되고, 고발하면 지도교수를 잃고 학위 취득이나 취업 등 진로가 불투명해진다. 출구 없는 지옥과 다름없다”고 털어놨다.

현재 A 교수는 구속돼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B 교수는 학교 자체 감사에서 문제가 드러나 학교 측이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B 교수는 “(혐의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2차 피해 우려 때문에 고발 시기를 ‘안전한’ 졸업 후로 미루기도 한다. 또 다른 대학원에 재학 중인 안모 씨(27·여)는 “인건비 부풀리기를 알고 있지만 학위가 걸려 있어 쉽지 않다. 졸업하고 학위 취소가 불가능한 때가 되면 고발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지훈 easyhoon@donga.com·김자현 기자


#교수비리#내부고발#대학원생#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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