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어린이 600명 이상 구한 네덜란드 헐스트 씨, 107세 일기로 타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9일 22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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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반 헐스트.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요한 반 헐스트.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1943년 6월 19일 아침. 요한 반 헐스트 씨가 운영하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교사양성소에 교육부 감사관이 들이닥쳤다. 독일 나치 친위대(SS)를 대동한 감사관은 건물에 아이들이 있는 걸 발견하고는 물었다. “이 아이들이 유대인인가?” 헐스트 씨는 오랜 침묵 끝에 입을 뗐다. “내가 정말 그 질문에 대답할 거라 기대하는 건 아니겠지?” 감사관은 헐스트 씨에게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신의 이름으로, 조심하기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600명 이상 유대인 어린이의 생명을 구한 네덜란드 교육자 겸 정치인 헐스트 씨가 22일 107세를 일기로 타계했다고 28일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했다.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1940년 네덜란드를 침공했던 나치 독일은 1942년 여름부터 2년 간 네덜란드 내 유대인들을 유대인 수용소로 보내는 작업을 했다. 유대인들이 수용소로 이송되기 전 기착지로 이용된 극장이 헐스트 씨가 운영하던 교사양성소 길 맞은편에 있었다. 극장에 소집된 유대인 중 12세 이하 아이들은 교사양성소와 담벼락을 함께 쓰던 유대인 유치원에 수용됐다.

증언자들에 따르면 헐스트 씨는 극장 관리자였던 독일계 유대인 발터 쥐스킨트 씨, 유치원 원장 헨리에트 피멘텔 씨와 함께 유대인 어린이들을 구하기 위한 묘안을 짜냈다. 극장 내 유대인 명단을 작성해 당국에 제출하는 업무를 맡았던 쥐스킨트 씨는 자신들의 아이를 구하고 싶어했던 부모의 동의를 받아 일부러 유대인 아이들의 이름을 명단에서 지웠다.

기록에서 사라진 아이들은 유치원에서 교사양성소로 옮겨졌다. 헐스트 씨는 길 건너편 극장에 서있는 나치 군인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전차가 극장과 유치원 건물 사이에 정차하는 짧은 시간을 틈타 어린이들을 바구니와 자루에 담아 구출했다. 교사양성소에 숨어있던 아이들은 이후 네덜란드 내 안전한 지하 대피소로 옮겨졌다.

이렇게 헐스트 씨가 목숨을 구한 아이들이 600명 이상이다. 하지만 그는 생전 언론 인터뷰에서 “영웅이 되고 싶지 않다”며 이렇게 말했다. “저는 제가 구하지 못했던 수천 명의 아이들을 늘 떠올립니다.”

위은지 기자 wiz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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