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우영]‘워라밸’을 바라보는 법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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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차 산업혁명의 도래 등은 일의 개념과 방식에서 변화 요구
이제 근로시간을 일의 가치와 행복추구의 방향에서 조명해야
디지털 경제시대의 ‘워라밸’은 시간선택의 자유 허락하되 성과에 대한 책임 역량을 기대

이우영 한국기술교육대 기계공학부 교수
이우영 한국기술교육대 기계공학부 교수
행복하게 살기 위해선 하루 몇 ‘시간’ 일하는 게 적당할까. 우리보다 노동생산성이 2배 가까운 독일에서는 최근 금속노조 IG메탈의 바덴뷔르템베르크 지부와 경영자 단체가 현행 주당 35시간에서 ‘28시간 유연근무제’를 2년간 시범 도입하기로 합의했다. 노조는 임금삭감을 감수하며 자유로운 근로시간을 선택한 것이다. 더욱 부러운 것은 이러한 합의가 생산성에 자신감을 둔 제조업 부문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국회가 최대 근로시간을 주당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근로기준법을 통과시켰고, 3년 후인 2021년 7월부터는 5인 이상 사업장으로 전면 확대된다. 적정 근로시간에 대한 논의는 인간의 ‘일과 삶’의 영역에서 시간과 공간의 주권에 대한 줄곧 있어온 뿌리 깊은 이슈 중 하나이고, ‘근로시간 단축’과 ‘생산성’은 마치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하는 식으로 이어져온 뜨거운 논쟁 이슈이기도 하다.

최근 생산성본부 자료에 의하면 지난 10년간 제조업분야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33%에서 1%로 급감하였고, 2016년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46.8달러에 비해 우리는 31.8달러로 정체되어 있다. 여기에 뿌리산업에 기반을 둔 중소 제조업에서는 숙련인력의 고령화로 신규 또는 대체인력 확보가 어려운 상황에서 급격한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영향을 심각히 우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멕시코 다음으로 오래 일하는 국가 중 하나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노동 관련 법, 제도 및 일하는 방식이 남성 풀타임, 정규직 근로자 중심 그리고 산업화시대의 공장형 제도에 머물고 있는 현실도 한몫하고 있다.

근로시간 선택의 문제는 오늘 우리 사회에서 세대별로 바라는 경제적 필요와 자아성취의 욕구 수준에 따라 인식의 차이가 크다. 노부모 봉양과 미취업 자녀를 둔 장년 세대와 만혼(晩婚)에 아이의 양육비, 비싼 사교육비 등을 부담해야 하는 중간 세대,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보다는 현재의 작은 행복을 위한 여유를 중시하는 밀레니얼 세대 등 이들 각자가 생각하는 시간과 돈 그리고 일의 관점은 확연히 다르고 복잡하다.

그러나 급격한 인구구조의 변화와 고학력화, 여성의 경제활동 증가 그리고 제4차 산업혁명의 급격한 도래 등은 일의 개념과 일하는 방식의 총체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장치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클라우드 워크, 모바일 워크 등 노동환경의 변화가 노동시장 전반으로 확대됨에 따라 노동시간과 휴식시간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어 삶의 기본 여건인 건강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으며, 예상되는 기계와 인간의 공존시대는 일의 가치를 중시하는 인간 존중의 패러다임으로 향하고 있다.

이제는 시야를 넓혀 근로시간의 개념을 물리적 시간 즉, 크로노스 관점에서 벗어나 일의 가치와 행복 추구의 방향에서 조명해볼 필요가 있다. 이는 일과 삶의 균형 즉, 워라밸을 ‘해야 하는 일’에서 ‘내가 얼마나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느냐’로 보는 사회현상과 흐름을 같이한다.

최근 여러 조사에서 신입사원들이 선호하는 기업들을 보면 적당한 급여 수준 외에 직장에서 일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편안히 생각에 잠길 수도 있고, 개인의 생활도 즐길 수 있는 시공간적 자율 환경을 추구하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추세는 이미 몇몇 기업에서 유능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안식월 휴가제, 재택근무와 같은 스마트근무제, 개인이 업무공간을 선택하도록 하는 변동좌석제, 개방형 오피스를 통해 열린 공간과 닫힌 공간의 균형 배치 등 다양한 혁신사례들로 나타나고 있다.

오스트리아 사회학자 노보트니는 “휴식이란 밀도 있는 순간을 말한다. 휴식은 나와,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것 사이의 일치를 뜻한다”로 휴식의 정의를 단순한 시간적 쉼의 여유가 아님을 밝히고 있다. 한편 구글과 같은 성과추구형 기업에서는 ‘유연하지만 자기결정권’이 있는 근로시간을 강조한다. “책임과 자유를 주어라, 그렇게 할 수 있도록 공간과 자유를 주어라. 스스로 통제할 권한을 주어라. 그러면 그들은 대개 어떻게 하면 생활의 균형을 찾을 것인지 알아서 최선의 결정을 내릴 것이다.”

결국은 경제가치의 원천이 인간의 창의성으로 이동하는 디지털 경제시대의 워라밸은 우리에게 일의 가치와 시간 선택의 자유를 허락하되 나타날 성과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제어할 만한 역량이 있는지를 묻고 있다.
 
이우영 한국기술교육대 기계공학부 교수
#워라밸#독일 유연근무제#근로기준법#노동생산성#근로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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